▲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영화 속 곳곳에 등장하는 혼령과 가슴을 죄어오는 공포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비명소리를 연발하게 만든다. 음산한 영상과 가슴을 파고드는 괴기한 효과음뿐 아니라 여성관객들의 톤 높은 비명소리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한몫할 정도. 관객들의 비명소리가 특히 귓가를 찔렀던 장면들만을 골라 당시 촬영 뒷 얘기를 들어보았다.
고전 속 장화와 홍련은 영화 <장화, 홍련>에서 수미(임수정 분)와 수연(문근영 분) 자매로 다시 태어났다. 남편에게 새 여자가 생긴 것에 충격을 받은 친엄마가 자살한 이후 이들 자매는 새엄마(염정아 분)를 맞게 된다.
이와 같은 전체적 구도는 원작과 다름이 없지만, 세세한 스토리와 장면묘사는 제목에서 장화와 홍련 사이에 추가된 ‘,(쉼표)’처럼 새롭게 각색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결과물에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김지운 감독의 생각대로 두 감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럼에도 공포영화의 압권이라면, 뭐니뭐니해도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 아닐까. 물론 <장화, 홍련>에도 제각각의 모습을 한 귀신이 등장해 관객의 가슴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그 순간 그만 눈을 감아버려 ‘중요 장면’을 놓친 이들이라면 지금부터 주목하자!
제작진들이 가장 압권으로 꼽는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침대를 따라 다가오는 ‘친엄마 귀신’의 모습. 수연의 방 옷장에서 목을 매달아 죽은 이후 내내 혼령으로만 나타나는 친엄마 역은 <오!수정>에도 출연했던 박미현씨가 맡았다.
모서리를 돌아서는 순간 옆모습이 보이지만, 머리에 가려진 얼굴은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서서히 일어서며 얼굴을 돌리는 그 잠깐의 사이, 객석 여기저기에선 신음소리(?)가 들린다. 몸서리치면서도 이 혼령을 똑바로 바라보는 수연에게 죽은 친엄마는 더 가까이 다가간다.(이후 생략)
영화 속에서는 이 ‘친엄마 귀신’의 얼굴을 대부분 알아볼 수 없지만, 실제 친엄마 역을 맡은 박미현씨가 직접 연기한 것이라고 한다. 박씨는 침대 끝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모습을 찍기 위해 수도 없이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고. 침대에서 붕 뜨는 장면에서는 박씨가 몸에 와이어를 묶고 직접 ‘와이어 액션’을 펼쳐 보였다. 단 하룻만에 촬영은 끝났지만 이 장면에서는 무엇보다 박씨의 열연이 돋보였다는 후문.
또한 부엌 싱크대 아래의 여자귀신도 만만치 않다. 새엄마의 남동생 부부가 놀러와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다. 초대받고 싶지 않은 저녁식사에 응한 남동생(상규) 부부는 내내 우울한 표정이다. 잠시 후 갑자기 올케가 발작을 일으키며 바닥을 뒹군다. 그리고 언뜻 무언가를 보게 되는데…(염정아의 올케인 상규 처 역은 연극배우 출신 이승비씨가 맡았는데 발작연기를 너무나 실감나게 소화했다).
상규 처가 목격한 싱크대 밑의 ‘무언가’는 바로 여자아이 귀신이다(이 귀신의 정체는 영화 후반부에 밝혀진다). 이 소녀귀신 역은 연극배우 출신의 배우가 대역을 했는데, 온몸에 분장을 한 채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연기했다고 한다. 연기자가 비좁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버텨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던 점. 이어 녹색원피스를 입은 소녀귀신이 식탁에 앉아있는 장면까지 3∼4일의 촬영기간이 소요됐을 만큼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 핏자국을 그리고 있는 김지운 감독. | ||
그런데 죽은 새가 수연의 침대 속에 감춰져 있는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었다. 제작진이 촬영을 위해 준비한 새들이 촬영장의 열악한 환경 탓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었던 것. 그 중 한 마리가 바로 영화 속에 등장했던 새다. 제작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장식하기 위해 장렬히(?) 전사한 새들을 땅에 묻어주고 명복을 빌어주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후반부에 나오는 시체가 담긴 자루를 끄는 장면은 김지운 감독이 특히 공을 들인 장면이다.
김 감독은 피로 뒤범벅이 된 자루를 따라 바닥에 그려진 핏자국을 일일이 손으로 그렸다.
그리고 NG가 날 때마다 온 스태프들이 달려들어 물걸레와 마른 종이로 닦고 다시 핏자국을 그리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 장면을 물들인 ‘가짜 피’는 빨간 색소와 물엿 성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를 보며 드는 궁금증 하나. 이 자루 속에 과연 ‘무엇’이 담겨 있을까? 귀띔하자면, 바닥에서 수연이가 끄는 자루는 이불 등의 잡동사니가 담겨져 있던 것이고, 옷장 안에서 꿈틀거리는 자루에는 현장 스태프 중 한 명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