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파격적인 내용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은 4·29 재보선 공약발표회 후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유 원내대표 모습. 이종현 기자
유 원내대표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처리할 원내부대표단과 정책위의장단을 지정했고, 할당(?)을 받은 각 의원은 각자의 보좌진들과 함께 자료 수집 연구, 각 입장의 정리, 전문가 좌담회 및 결과 도출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 원내대표 연설문의 뿌리는 ‘유승민의 생각’이었고 줄기는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만들어졌으며, 가지는 유 원내대표가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맡긴 셈이다. 참여했던 한 초선 의원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연설문은 유 원내대표의 초심, 그리고 작금의 현실이 반영된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입장을 정리한 뒤 유 원내대표 방이나 우리들 방에서, 혹은 밥을 먹으면서 토론하고 조율했다. ‘이런 이런 의견이 있다’ ‘이런 것도 반영해야 한다’ ‘이런 기조로 가야 한다’ 등등 각양각색의 의견이 개진되면 일부 큰 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고민과 선택은 유 원내대표에게 맡겼다. 앞으로 유 원내대표가 이끄는 원내지도부는 연설문을 일종의 스케치라고 생각하고 우리 각자는 그것에 색깔을 칠하게 될 것이다. 논리는 변함이 없고 예측도 가능해진 셈이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제대로 보좌해야 한다”며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의원들이 집권당의 유능한 원내대표가 될 수 있도록 보필하겠다는 긍정적 자세를 보인 것은 최근 여의도에서 찾기 힘든 풍경이다. 한 의원은 “맛있는 음식은 호객행위를 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레 알려진다”며 “이번 연설을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글은 철저히 유 원내대표가 썼다고 한다. 기존의 지도부처럼 대필문을 읽어서는 자기만의 표현을 쓸 수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구성에 대한 구상이 끝나고 초고가 완성되면 여러 의원이 모여 돌려 읽은 뒤 의견을 내고, 이렇게 수차례 회의가 이뤄졌다. 알려졌다시피 유 원내대표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경제 분야를 맡길 전문가로 정치권으로 불렀고,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땐 정책메시지를 총괄했다. 정치권 내에선 꽤 알려진 전략가이자 ‘글쟁이’란 얘기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 이후 반응은 네 가지 방향으로 요약된다. 여권 내에선 수도권 출신, 초선 지역구 의원들, 비례대표 의원들이 크게 환영했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표의 확장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선택 옵션을 늘릴 필요가 있는데 유 원내대표가 이념 스펙트럼을 중원으로 넓혔다는 것이다. 경제에서만큼은 극보수(김무성)에서 보수적 진보(유승민)까지 당 지도부에 있다는 점, 하지만 둘 다 안보에서만큼은 철저히 보수라는 점이 집토끼(보수) 가두기와 산토끼(중도층) 사냥에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권 내 친박에선 불쾌감을, 보수 우호적인 영남권에선 마뜩찮은 반응이 나왔다. 친박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에둘러 겨눈 것을 못마땅해 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불렸던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당내 조율이 안 된 사안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것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대중적 인기에 집착해 자기 개인의 인기를 올리는 느낌이다. 당의 입장을 고려해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최고위원의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발언은 일종의 협박조로, 홍 의원의 ‘개인 인기’ 언급은 폄하조로 들린다.
반대로 수도권의 정두언 의원은 정치부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본회의에서 대표연설이 끝나고 ‘당의 방침이 아니다’ ‘개인 의견이다’ 이런 말이 나온 적이 없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우리가 뽑은 대표가 아니냐”며 “우리 새누리당이 가야 할 중도개혁을 통한 보수혁신의 좌표를 시의적절하게 보여줬다”고 했다. 대구의 한 초선 의원은 “우리 지역에는 노년층이 많지만 잘 설명하고 설득하면 오히려 환영하실 것”이라고 했다.
“명연설”이라고 평가한 새정치민주연합에선 “우리 기조를 유 원내대표가 따라왔다”며 박수치는 쪽과 “이러다 야권 이슈를 모두 뺏기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는 쪽으로 나뉘고 있다. 보수의 파격으로 쳐다만 보기에 진보의 파이가 침해당할 위험이 더 크다는 우려다.
유 원내대표의 이번 연설을 두고 정가의 한 관계자는 “위치 선정은 좋았지만 슈팅 타이밍이 부적절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특히 “사회적 경제 도입 필요성, 법인세 인상 가능성 시사 등 경제 좌클릭 선점은 적절했으나, 박 대통령의 공약가계부에 대한 사과,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단기부양책에 대한 평가는 적절했느냐는 논란이 있다”며 “청와대가 이렇다 할 반응을 못 내는 것은 일부 사실을 인정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지만 그만큼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집권 3년차에서 동력을 걸어야 할 이때 당과 청이 부드럽게 갈 필요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권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모두에게 박수받을 수는 없다. 유 원내대표가 칼을 뺐다면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자신의 전략전술대로 당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성장이 공격적 복지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한마디로 요약한 한 의원은 “총론은 나왔다. 앞으로는 각론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이냐의 문제”라며 “당론으로서의 설득과정이 충분히 있다면 여권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까지 나서 “당내에서 합의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말한 것은 유 원내대표에겐 뼈아픈 것이다. 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그간 대표연설도 당내 조율이 없었다는 점은 마찬가지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