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폐지 이후 기혼자 만남 사이트가 더욱 활성화돼 논란이 되고 있다. 기혼자닷컴 홈페이지(위)와 애슐리 메디슨 사이트 대화창.
애슐리 메디슨에서 만난 남성(36·프리랜서)은 꽤 적극적이었다. 반복해서 “이런 대화는 처음이다”라고 어필했지만 노련하게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결혼 1년 반 됐는데 와이프가 부부관계에 너무 소극적이다. 그래서 편하게 즐길 상대를 찾아 들어오게 됐다”고 했다. 어느 정도 대화가 이어지자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가자며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모바일 메신저로 실제 대화를 이어갔다면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애슐리 메디슨은 지난해 3월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불륜과 간통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이트를 폐쇄했지만 지난 2월 26일 간통죄 폐지 판결 이후 열흘 만에 영업을 재개했다. 전 세계 36개국에서 2500만 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에서만도 수만 명의 기·미혼 남녀가 가입해 데이트 상대를 찾고 있다.
한국의 애슐리 메디슨을 표방하는 기혼자닷컴도 문을 열었다. 사이트 이름만으로 그 취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기혼자닷컴은 “기혼자도 때론 외롭다. 외로움엔 기혼과 미혼이 따로 없다”라는 문구를 메인화면에 걸어놓고 가입자를 모으고 있다. 3월 25일 서비스를 시작했고, 2주 만에 3000여 명의 남성이 이 사이트에 가입했다.
두 사이트 모두 가입 절차는 아주 간단했다. 아이핀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성인인증만 하면 된다.
방문자들의 ‘목표’는 같았지만 두 사이트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랐다. 애슐리 메디슨은 노골적이다. 가입을 하면 프로필과 함께 성적 취향(본디지, 페티시, 지배적 등)과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것’에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체크하게 한다. 이용자들 역시 상반신 누드를 올려놓거나, 자신의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썼다. “아내가 있지만 3개월째 못 하고 있다”, “곧 결혼하지만 즐길 상대 찾아요” 등의 상태 메시지가 달릴 정도다.
애슐리 메디슨에 비하면 기혼자닷컴은 비교적 점잖은 편이었다. 기혼자닷컴의 경우 노출이 많은 사진이나, 성적 표현을 사용하지 않도록 관리했다. 때문인지 남성들의 프로필은 풍경이나 정물 사진이 많았고, 소개 문구 역시 “외로워요”, “마음이 맞는 상대를 찾습니다”는 등의 비교적 평범한 글을 써뒀다. 원하는 만남의 종류를 묻는 질문에는 ‘함께 드라이브’, ‘밤샘 대화’, ‘여행 동반자’ 등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기자가 가명과 가짜 사진을 이용해 두 사이트에 가입하자 기혼 남성들의 관심 표현이 쇄도했다. 기혼자닷컴의 경우 가입한 지 하루가 채 안 돼 200명의 남성이 기자의 가짜 프로필을 확인했다. 쪽지를 보내 대시를 한 사람도 80명이 넘었다.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40대 남성이 가장 많았다. 쪽지를 보내온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은 62세였다. 기자의 프로필과 20세도 넘게 차이가 나지만 “좋은 만남이었으면 좋겠다. 많은 분들에게 연락이 오겠지만 한 번이라도 연락해 보고 싶다”는 내용의 쪽지를 보내왔다. 자신을 중소기업 사장이라고 밝힌 한 남성(42)은 “좀 더 친해지면 명품 아울렛에 가서 쇼핑하자”며 30분 간격으로 쪽지를 보내왔다.
애슐리 메디슨의 남성들은 더 노골적이었다. 대놓고 자신의 나체 사진을 보내 “만나자”고 쪽지를 보내는가 하면, 사이트에 접속해 있는 동안에는 채팅창을 통해 계속 말을 걸어왔다.
두 사이트 모두 여성에게 말을 걸거나 쪽지를 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돈을 내야 한다. 기혼자닷컴의 경우 5만 원짜리 ‘자유이용권’을 사야 이성의 프로필을 확인하고, 쪽지를 보낼 수 있다. 여성 회원은 쪽지를 받으면 무료로 답장을 할 수 있다. 애슐리 메디슨은 여성은 무료인 반면, 남성은 기본 7만 9000원의 패키지를 구입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 1분에 790원꼴로 계산돼 여성과 30분만 대화를 하려 해도 2만 3700원을 결제해야 한다. 기자와 대화를 이어가던 한 남성은 “30분 더 연장했다. 비싸긴 해도 인연을 만날 수만 있다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사이트에서 만난 남성 10명 중 9명은 기혼자거나 ‘돌싱(돌아온 싱글·이혼남)’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기혼여성을 상대로 찾고 있었다. 한 남성은 결혼 여부를 물으며 “같은 처지의 기혼자를 찾고 있다. 미혼은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사이트에 가입한 여성들 역시 상당수가 기혼이었다. 하지만 기혼자닷컴의 경우 여성 가입자가 200명 정도에 그쳐, 남녀 편차가 상당했다. 애슐리 메디슨은 상대적으로 편차가 적었다. 기자가 남성으로 가입해 로그인하자 3시간 만에 세 명의 여성이 관심을 표하고, 두 명의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기혼자 연애 사이트를 제재할 법적 근거(간통죄)는 사라졌지만, 두 사이트를 두고 국회에서도 새로운 규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민홍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3월 11일 “간통죄 폐지로 법적 단속 근거가 사라져 가정 해체를 조장하는 내용의 정보가 정보통신망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대해 기혼자닷컴의 윤석민 대표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뿐이다. 법안이 실제 통과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반박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