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욱 실종 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은 이상열 중정 프랑스 공사와 단독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79년 11월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수사내용을 발표하는 전두환 합수본부장. <80년 보도사진연감> | ||
그런데 79년 10월 당시 이 전 공사의 행적과 그 이후 5공 정권에서의 외교관으로의 변신 과정을 여전히 의심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10·26 사건이 일어나고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새 권력자로 부상한 직후 이 공사는 10월28일 급거 귀국했다. 김 전 의원은 “당시 이 공사는 파리에 가족을 남겨둔 채 혼자 들어왔는데 남겨진 가족들이 눈물바람을 지을 정도로 상당히 불안해 했다더라”고 전하고 있다.
이 전 공사는 이날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합수부로 가서 조사를 받았다. 거기서 그는 전 장군과 단독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전 공사는 “전 본부장과 단독으로 면담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친분 관계를 잘 아는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만났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 전 공사는 한국전쟁의 와중에 종합간부 15기로 소위로 임관했다. 그는 보안부대장 등 군내 정보통으로 지내다 74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비육사 출신이라는 한계 때문에 장군 진급이 안되자 옷을 벗었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보안부대 근무 인연으로 ‘군 후배’인 전두환 노태우씨 등과도 꽤 절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무튼 김씨 실종 사건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주목되었던 이 전 공사는 그 이후 5공 정권에서 외교관으로 변신했다.
김경재 전 의원은 “당시 합수부에서는 김씨 실종 사건을 관심있게 지켜 봤을 것이고, 그 배후 인물이 김재규 부장이라면 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남기기 위해 이를 한껏 부각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 공사의 면담을 통해 이 사건의 진실은 사실상 덮혀버렸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 합수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가 익명을 전제로 한 언론 인터뷰에서 “김씨 실종 사건은 깊이 파헤치면 국가에 해가 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전 장군은 이 공사로부터 중요한 국가 기밀을 보고 받았을 것”이라고 증언한 것도 주목해볼 부분이다. 즉 당시 수사권을 휘두르며 군과 관의 정보를 독점했던 전두환 본부장은 최소한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주변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특히 김형욱 실종 당시 전씨가 보안사령관을 맡고 있었던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많다. ‘양자’로 알려질 정도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했던 전씨가 ‘대통령의 적’ 김형욱 전 부장에 대해 이전부터 따로 안테나를 세워놨을 개연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김재규 전 부장을 국가내란을 일으킨 수괴로 사형대에 올린 전씨는 당시 김형욱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왜 침묵을 지켰을까. 최소한 핵심 배후 인물이 김 전 부장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반증해주는 대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