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14일 광주에서 간담회를 갖고 있는 이해찬 총리. 전남일보 | ||
이와 함께 비공식적으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문건으로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호남 의원들이 이 총리를 무시한 채 대통령과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그렇게 된다면 ‘한솥밥’ 먹는 이 총리와 호남 의원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4월1일, 경부·호남 고속철이 공식 운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호남선의 경우 고속철도가 아닌 기존 선로를 복선화해서 KTX가 달릴 수 있도록 한 것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호남 고속철도사업은 계획과 예산 등 어느 것 하나 확정된 게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난해 개통식은 호남 소외감을 달래기 위한 방책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호남지역 의원을 중심으로 호남 고속철도 조기 착공을 그동안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하지만 정부의 화답은 싸늘했다. 연두순시에 나섰던 이해찬 총리는 지난 1월14일, 광주 지역 인사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총리는 “이해찬이 총리로 있는 한 (호남 고속철도) 조기착공은 못 한다”고 강한 어조로 못 박았다. 당시 이 총리가 ‘호남 고속철도 조기 착공 불가 방침’을 밝힌 이유는 이렇다. “당초에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 (하루 동안) 22만 명이 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7만 명이 타고 있어 연간 적자가 수천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호남 고속철도 운영도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조기에 착공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 지난해 3월24일 전남 목포역에서 열린 고속철도 개통식에서 ‘풍선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 ||
이 같은 이 총리의 불가론에 대해 해당 부처인 건교부뿐만 아니라 호남지역 인사들도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정치권에서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여당인 열린우리당 광주광역시당(위원장 양형일 의원)은 “총리의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호남 고속철도 조기 착공을 관철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양형일 의원은 “이 총리가 호남 지역의 민심에 찬물을 뿌리고 ‘제2의 비 내리는 호남선’을 만들려 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단기간 수익만 노리지 말고, 장기적 안목으로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경제 파급효과를 고려해서 조기에 착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 1일엔 국회 과반이 훨씬 넘는 여야 의원 2백5명(열린우리당 1백19명)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호남고속철도의 조기착공을 정부에 촉구하면서 대정부건의안을 제출했다. 이 건의안에는 ‘2005년 조사와 설계 완료→2006년 착공→2010년 완공’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과거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에도 경제성이 없다고 평가됐으나 건설 후 한국경제의 성장 동맥으로 기능했던 교훈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며 이 총리의 ‘조기착공 불가론’을 반박했다. 특히 “호남권 낙후의 극복과 서남권 개발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호남고속철도 조기완공을 위한 호남지역 열린우리당 의원 모임’의 간사를 맡고 있는 김동철 의원은 “정부마저 경부고속철도의 운영 적자와 이용 저조 등 경제성 논리를 내세워 호남고속철도 건설 사업 자체를 미루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는데, 이런 인식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속철도가 부분적으로 개통되고, 운행기간이 채 1년이 안 된 상황에서 운영수지를 따진다는 것은 너무나 단견이 아닐 수 없다”며 이 총리의 조기 착공 불가론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심지어 여당의 호남 의원들은 앞으로 이 총리와의 대립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14일부터 시작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총리를 압박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 2005년 2월1일 열린우리당 김동철 의원 등이‘호남고속철도 조기착공 촉구 대정부건의안’ 제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그렇다면 이 총리가 조기착공 불가론의 역설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총리는 경제성을 우선시했지만, 여권 일각에선 이와는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 고속철도 공사의 첫 삽을 뜰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호남 고속철 공사를 시작, 충청·호남권의 ‘표심’을 얻겠다는 포석이 깔린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총리가 강경한 어조로 ‘조기 착공 불가론’을 설파한 상황이어서, 실제로 이 총리 재임 중에 고속철 착공이 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까닭에 이 총리-호남 의원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 대립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게 여권의 대체적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