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영웅시대>의 한 장면. 왼쪽부터 독고영재(박정희 대통령 역) 최불암(정주영 역) 유동근(이명박 역). | ||
하지만 야당과 일부 신문에선 정치적 음모설을 제기했다. 이 드라마 이환경 작가는 “여권 고위관계자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여당은 “실체 없는 외압설”이라며 강하게 반박한다. 이처럼 현존하든 작고하든 정치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파문을 일으키는 단골 프로그램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언론계와 정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영웅시대> 조기 종영 사태를 따라가 봤다.
<영웅시대>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최불암 역)과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정욱 역)의 성장사를 골격으로 한 ‘경제 드라마’로 시작됐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독고영재 역)과 이명박 서울시장(유동근 역) 등이 등장하면서 ‘정치 드라마’로 카메라가 이동했다.
그러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이명박 시장을 지나치게 미화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여기에 이환경 작가가 여권의 외압까지 ‘폭로’하면서 정치권이 술렁거렸다.
지난 17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은 <영웅시대> 조기 종영을 놓고 여권의 외압설을 강하게 제기했다. 한나라당 김병호 의원은 이해찬 총리에게 “<영웅시대> 작가가 ‘여권 고위관계자로부터 주의하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고, 6월말 종영 예정이었던 드라마가 2월에 종영하게 됐다”며 “누군가 정치적 의도로 그 프로그램을 조기 종영하게 한 게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에 이 총리는 “정부와는 관계없다”며 “방송사가 정부의 말을 듣는 시대는 지났다”며 외압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여권 관계자가 이 작가에게 전화 걸어 압력을 행사했다는 설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며 “(여권 관계자가) 누군지는 모르겠고, 혹시 누가 했는지 확인된다면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만 답변했다.
지난 14일엔 최불암 정욱 유동근 등 이 드라마 연기자 20여 명은 소원영 담당PD의 인사위원회 회부에 반발, 촬영거부를 선언했다가 복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소 PD가 드라마 한 편당 방영시간인 70분을 지키지 않고서 3~5분 더 길게 제작했다는 게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까닭. 이에 유동근씨는 “정치적 외압설과 조기종영으로 작가와 PD, 연기자 모두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데 담당 PD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연기자들이 뭉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1월 박종 제작본부장이 “시청률이 20% 넘을 경우 예정대로 1백회까지 방영하겠다”고 약속한 것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첫 방송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서서히 반등했다. 그리고 지난 15일 현재, TNS미디어 조사결과 21.0%의 시청률을 보이며 20%대 시청률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MBC는 지난 20일 박 본부장 등이 <영웅시대> 출연진을 찾아가 사과했고 이를 연기자들이 수용함으로써 양측 갈등은 해소됐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 대해 신문사마다 시각차를 드러냈다. <동아일보>는 16일자 사설 ‘<영웅시대> 연기자 반발 이유 있다’에서 “<영웅시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서울시장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조기 종영된다는 ‘정치적 외압설’이 파다했던 드라마”라 적시하면서 “작가가 시사했던 대로 ‘여권으로부터 조심해서 쓰라’는 외압이 있었다면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성을 띤 드라마가 외압설과 함께 조기 종영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끝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동아>는 ‘정치적 외압설’에 무게를 실었다.
이에 비해 <중앙일보>는 같은 날 사설 ‘MBC <영웅시대> 조기종영 진실은 뭔가’를 통해 “MBC의 모호한 처신은 오히려 정치적 공방만 키웠다. 시청자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지 못한 부분도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특정인물에 대한 지나친 미화나 과도한 띄워주기를 지적하는 일부 여론이 있었으나 묵살하고 더 부풀리는 쪽으로 나아간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드라마의 특정인물 미화와 MBC의 처신을 비판했다.
여권에선 일부 신문들이 정치권의 외압 실체가 불명확한 것을 놓고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문광위 소속 한 의원은 “실제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했다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심각한 문제”라면서도 “방송 작가의 외압 발언으로 촉발됐지만,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의혹만으로 몇몇 신문이 부풀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외압의 실체는 있는 것일까. 이환경 작가는 지난 1월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방송이 시작되기 전 여권 고위 관계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정치권 차세대 주자를 다룰 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이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상당히 여러 번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발언으로 여권의 외압설이 제기된 이후에는 가타부타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렇다면 이 작가가 털어놨던 여권 고위관계자는 누구일까. 정치권에선 몇몇 인사들의 실명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완강히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우리당은 외압설에 대해 실체 없는 의혹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있다. 김현미 대변인은 “<영웅시대>에 대한 여권 외압설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실제 외압이 있었다면 근거를 대야하지 않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