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김혁규 한국배구연맹 총재, 김한길 대한핸드볼협회장 | ||
현재 대한체육회 산하 53개 가맹 경기단체 중 정치인 출신이 수장을 맡고 있는 곳은 모두 7개. 우선 여권 인사로는 대한태권도협회장 김 고문을 비롯, 열린우리당 김한길 의원이 대한핸드볼협회장, 이종걸 의원은 대한농구협회장을 맡고 있고 김덕배 국회의장 비서실장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재임중이다. 대한근대5종연맹 한행수 회장(대한주택공사 사장)도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을 지낸데다, 비례대표 승계 순번에 랭크돼 있다는 점에서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이들은 대부분 1년 이내에 해당 자리를 맡아 체육계의 ‘정치인 단체장’ 흐름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김정길 태권도협회장이 2004년 2월 말 선출된 것을 시작으로 이종걸 농구협회장(2004년 5월)→한행수 근대5종회장(2004년 10월)→김한길 핸드볼협회장(2005년 2월) 등이 뒤를 이었다. 김덕배 아이스하키협회장도 이들보다 1년여 앞섰지만 역시 노무현 정권 출범 뒤인 2003년 2월에 취임했다.
여기에 대한체육회 가맹단체는 아니지만 프로배구의 운영주체인 한국 배구연맹 초대 총재에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2004년 9월에 선출됐고, 노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인 이철 전 의원은 올해 1월 느닷없이 실업테니스연맹 회장 자리를 맡아 한때 대한체육회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야당 소속 단체장으론 5선 중진(무소속)인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 93년 제 47대 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은 한때 거취를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지난 1월 4연임에 무난히 성공한 바 있다. 정 회장은 또 83년 3월에는 대한양궁협회 초대 회장에 추대돼 2년여 협회를 이끌다가 형인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에 자리를 물려준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기도.
한나라당 인사로는 올해 1월26일 한국사이클연맹 회장에 선출된 임인배 의원(3선)이 주목을 끈다. 임 의원은 자민련 소속인 조희욱 전 의원의 뒤를 이어 4년 동안 연맹을 이끌게 됐다. 2002년 대선 직전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던 김원길 전 의원은 99년 12월 이래 정치적 부침에 관계없이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직을 꿋꿋이 맡아오고 있다.
이밖에 정치권의 ‘마당발’ 김상현 전 민주당 의원은 98년 1월부터 14대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맡아 오고 있다. 김 전 의원에 앞서 연맹을 이끌었던 이들도 각각 11~13대 의원인 오한구씨(9~10대), 11~12대 의원인 임철순씨(11~14대)로 정치인 출신이다.
현 정권보다는 적지만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정치인 출신 경기-체육단체장 배출이 꽤 있었다. 김원길 전 의원 외에 문희상 의원이 2000년 7월 제 17대 대한아이스하키협회장에 선출돼 2003년 2월까지 재임했고, 박광태 광주광역시장은 국회의원 시절이던 2000년 6월부터 2002년 2월까지 19대 대한핸드볼협회장을 지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자리도 정치인 출신들이 적지않게 거쳐간 자리다. 이웅희 전 의원(3~4대)과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8대), 열린우리당 홍재형 의원(9~10대)에다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도 잠시지만 11대 총재를 지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오명 과학기술부총리(6대)도 같은 자리를 거쳤다.
경기-체육단체들이 이처럼 정치인들을 회장으로 ‘모시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무엇보다 예산 배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다, 풍부한 인맥과 후원자들을 통해 유-무형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굵직한 국제대회 유치나 어려운 일이 생길 경우 문제를 푸는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아무래로 정치인, 특히 여권 실세라면 최상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치권과 체육계의 ‘끈끈한’ 관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한체육회를 비롯, 대부분 경기-체육단체가 오늘날 제 자리를 잡는 데 정치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88서울올림픽 유치 분위기 때문에 대거 경제인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던 80년 초-중반 이전까지 체육계는 정치권을 인큐베이터 삼아 성장했다는 평가다.
대한체육회의 경우만 하더라도 1920년 창립 이래 배출한 29명 회장들 중 정계 거물들이 즐비했다. 8·15 해방~이승만 정권 시절엔 11대 회장을 맡았던 몽양 여운형 선생을 비롯해 해공 신익희 전 국회의장(14대), 유석 조병옥 박사(16대), 이기붕 전 국회의장(17대) 등이 거쳐갔다.
4·19 혁명 뒤 민주당 정권 시절엔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이 61년 1월부터 5월까지 체육회를 이끌었으나, 5·16 쿠데타 후 곧장 이른바 ‘주체세력’인 김동하 전 해병대 사령관에게 자리가 넘어갔다. 이후 박정희 정권 시대엔 이주일 전 감사원장(20대)-민관식 전 국회부의장(22대)-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24대)-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25대) 등 여권 실력자들이 체육계를 호령했다.
그러나 5공화국 들어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80년 7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조상호씨가 26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래 34대인 전임 이연택 회장에 이르기까지 비정치인들이 역할을 맡았다. 중간에 노태우 전 대통령(28대)이 84년 10월~85년 4월까지 6개월여 회장을 지냈지만 그도 당시엔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이었다.
개별 경기-체육단체의 경우도 정치인들이 ‘섭렵’했던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대한골프협회의 경우 65년 창립 당시 초대 회장은 박두병 두산그룹 창업자가 맡았지만 얼마 안가 김종락 코리아 타코마 사장(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형, 2대)-김성곤 전 공화당 재정위원장(3대)-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4대)-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5대) 등이 박정희 정권의 거물들이 줄줄이 회장직을 맡았다.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엔 정치인들 중 특히 국회의장단 출신이 많아 최순주 전 국회부의장(4대)과 백두진 전 국회의장(5대), 윤치영(7대)-민관식 전 국회부의장(12대)를 배출했다.
대한근대5종연맹의 경우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회장을 맡는 관례가 정착돼 김동규 전 의원(7대)-조부영 전 국회부의장(8대)-오시덕 전 의원(9대)-권해옥 전 의원(10대) 등에 이어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3년 선배인 지금의 한행수 회장(12대)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