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시장에서 말하는 ‘5대 스펙’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갖춰져야 대기업 입사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진다는 얘기다. 여기에 ‘봉사, 인턴경험, 수상경력’ 세 가지를 더해 ‘8대 스펙’을 갖추면 금상첨화다. 대학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렇게 많은 요소를 갖추기 위해 학기, 방학 할 것 없이 매진해야 한다.
취업준비생들이 기업들의 ‘탈스펙’ 채용 선언에 대해 혼란을 느끼고 있다. 사진은 잡페스티벌로 기사내 특정사실과 관계 없음. 일요신문DB
그런데 최근 8대 스펙을 갖춘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이 울상이다. 지난해 하반기 채용부터 주요 대기업과 공기업에서 ‘탈 스펙’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스펙이 실상 업무능력과 큰 연관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기업이 ‘실무 능력이 있는 인재를 뽑겠다’고 발표한 것. 이런 변화를 앞에 두고 ‘취업 사교육’ 시장은 더 활기를 띠고 있다.
“스펙 높은 사람 찾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혼란만 주는지 모르겠다.”
올해 처음에 도전하는 임 아무개 씨(29)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금융관련 자격증을 4개나 따고, 영어성적과 학점 등 높은 스펙을 유지하려 대학시절 내내 노력했지만 본격적으로 입사지원서를 내는 때에 기업들이 탈 스펙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공공기관과 공기업은 올 상반기 전형부터 실무에 강한 인재를 뽑기 위해 NCS(직무능력표준)를 도입한다고 선언했다. 주요 대기업 역시 이력서에서 스펙을 쓰는 칸을 대폭 삭제했다.
롯데그룹은 상반기 공채 중 일부 인원을 ‘스펙 태클(spec-tackle)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직무에 관한 질문을 주고, 에세이를 쓰고 인턴기간을 보낸 뒤 합격자를 가리는 전형이다. 현대차그룹은 동아리, 봉사활동 입력란을 삭제하고 직무와 연관된 경력사항을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다. SK는 탈 스펙 전형인 ‘SK바이킹 챌린지’ 선발 비중을 10%에서 20%로 확대했다.
이처럼 채용방식이 변화하는 것을 두고 취준생들은 “8대 스펙도 모자라 9대 스펙을 만들라는 얘기냐”고 불만이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취준생은 “스펙은 기본이고 그 외에 직무 관련 경험을 묻는 게 탈 스펙 전형이 아니냐”며 기업의 달라진 채용방식에 불신을 표했다. 앞서의 임 씨 역시 “주변에서 스펙 낮은데 취직 잘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취준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합격 스펙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괜히 불안감만 키우지 말고 차라리 스펙을 본다고 말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가 지난 4월 취업준비생 10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향후 탈 스펙 채용방식 제대로 시행하는 기업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이 전체 의견의 83.9%에 달했다.
달라진 채용 전형에 취업 사교육 업체들은 오히려 호황이다. 탈 스펙이라는 단어에 불안감을 느낀 취준생들이 ‘쪽집게 과외’ 형식의 강의를 하는 취업학원으로 몰리고 있는 것. 한 시간 강의에 적게는 2만~3만 원, 많게는 10만 원도 넘는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울며 겨자 먹기로 강사를 찾는다.
취업학원들의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합격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요 대기업의 공채가 열리는 즉시 자소서(자기소개서) 문항별 분석과 작성 방안 강의가 열린다. 한 취업학원은 기업당 1만 원을 받고 자기소개서 문항을 분석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대 기업 맞춤 자소서 전략’, ‘삼성에 특화된 에세이 작성 비법’ 등 주요 기업을 타깃으로 한 강의를 열기도 한다.
강사 중에는 전직 인사팀 직원뿐만 아니라 현직 직원도 포함돼 있다. 취업학원 사이트에는 강사 소개와 함께 “현직자인 관계로 부득이하게 사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기자가 수강생을 가장해 문의를 하자 취업학원 관계자는 “현직에 계신 분들이 강사로 있으니 인적 네트워크를 기를 수도 있고, 기업의 최신 인사 트렌드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현직자들은 이 같은 학원의 상술에 속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기업 직원 김 아무개 씨(29)는 “학원에서 강의하는 면접 비법이나 직무관련 내용은 몇 번 면접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또 현직자 네트워크를 강조하지만 회사 모르게 하는 강사가 무슨 현직자를 연결해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2년차 회사원 이 아무개 씨(27) 역시 “중요한 건 기업과의 ‘궁합’인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인성과 스펙을 갖춘 사람이라면 그 다음은 면접관, 회사와 스타일이 맞는지가 중요하다. 이건 학원에서 가르쳐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고 조언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생스…캠스…신종 스터디 외롭고 우울할 땐 ‘밥터디’로 달래요 요즘 취준생의 최신 트렌드는 ‘캠스터디’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영상통화를 켜두고 공부하는 방식이다. 카메라를 손과 책상에 맞춰두고 일정 시간 동안 함께 공부를 한다. 다른 사람의 손이 바쁘게 필기하는 모습을 보며 서로 자극받자는 취지로 만드는 모임이다. ‘생활스터디’도 취준생과 고시생 사이에 많이 퍼지고 있다. 그룹 대화창을 만들어 한 주의 공부목표를 정하고, 일과를 실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노트 필기 등의 ‘인증샷’을 보낸다. 지키지 못 했을 때를 대비한 벌금제도를 두기도 한다. 현금으로 벌금을 거둘 수는 없으니 팀원들에게 적은 금액의 기프티콘을 보낸다. 노량진 고시생들 사이에는 ‘밥터디’를 하는 이들도 많다.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에 불규칙한 식습관 때문에 몸을 망치기 일쑤다. 또 혼자 지내다 보면 하루 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아 우울증이 오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일정 시간에 밥만 먹기 위해 모이는 밥터디를 결성해 건강을 챙기고, 식사 시간동안 대화를 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