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드라마 <영웅시대>가 조기종영된 뒤에도 이명박 시장(왼쪽) 미화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른쪽은 극중 박대철로 나온 유동근씨. | ||
이환경 작가는 이런 논란에 대해 “박대철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60~70년대 샐러리맨들의 상징을 나타낸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일부 시청자들은 ‘이명박 시장을 너무 미화한다’며 드라마 홈페이지를 통해 제작진을 비난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또 다른 시청자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며 실제로 이명박 시장이 현대건설 초기 많은 신화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라며 반박하고 있다.
과연 이명박 시장을 묘사한 박대철의 ‘신화’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이 시장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와 비교해 판단해보았다.
장면#1 훌륭한 경영인 박대철
이명박 미화 논쟁은 사실 지난해 7월5일 <영웅시대> 첫 회가 방영되자마자 시작되었다. 당시 1~2회에서 박대철(유동근 분)의 역할을 두고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을 미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띄우기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박대철 의원이 천태산 회장(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최불암 분)의 넷째 아들로 그룹의 후계자가 된 사국(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김갑수 분)의 자살사건에서부터 청문회까지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심인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박대철은 냉정하고 현명한 관찰자이자 세기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온 훌륭한 경영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그는 마치 현대와 한국의 미래를 모두 예견했던 인물로 나오고 있다”는 등의 비판성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신호균 책임 프로듀서는 “현대라는 기업을 가장 객관적으로 회상할 수 있는 인물이 이 시장이기 때문에 화자로 등장했고, 이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허구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방송비평가 A씨는 “<영웅시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고 박정희 이후락 등 일부 인물은 실명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배우들의 이미지가 최대한 실존 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캐스팅한 것이라든지, 말버릇이나 행동도 실제와 흡사하게 묘사하려 했다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허구’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말한다. 이로 볼 때 특정 인물에 대한 미화 논란은 처음부터 피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면#2 민주투사 박대철
박대철은 드라마 50회에서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권총까지 빼든 사복경찰에게 체포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도 사실이 아니다.
자서전 설명에 따르면 이명박은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주동한 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었다. 그는 도피 중 둘째 형(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둘째 형은 서울시경에 아는 고향사람이 있으니 찾아가 자수하라고 권유한다. 이 시장은 자수가 아니라 “당당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면서 서울시경의 그 고향 형사를 찾아간다. 이를 보면 극중 박대철은 경찰에 붙잡힌 것이 아니고 실제로는 자수한 것이다.
또한 박대철이 극중에서 전기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도 사실이 아니다. 이 시장은 자서전에서 “군 조사관은 내가 여간해서 입을 열지 않으니까 갖은 협박을 다 했다. 잠을 안 재우는 것은 기본이었다”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극중에서는 박대철이 전기고문 때문에 실신하는 장면이 나오는 등 민주화 투사의 이미지를 ‘주입’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장면#3 권력 핵심과의 담판
드라마 53회에서는 박대철이 현대건설에 입사하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묘사된다. 먼저 박대철이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필기시험 성적이 우수했지만 신원조회에서 걸려 탈락할 운명에 처했다. 이는 자서전에 나온 그대로다. 또한 ‘한번 부딪혀 보자는 심정’으로 수신인은 박정희 대통령으로 해서 청와대에 ‘항의성’ 편지를 쓴 것도 맞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 담당 비서관 이낙선씨가 이 시장의 편지를 받고 “국영기업체나 해외로 유학 갈 생각은 없느냐”며 ‘회유’를 했던 것으로 돼 있다. 또한 이낙선 비서관은 이 시장이 자신의 유학 제의를 거부하자 “청와대 수석회의를 다시 열어 아무 짓도 안하고 일만 하는 조건으로 현대 입사를 허락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중에서는 박대철의 입사 문제를 두고 박정희 대통령과 이후락 공보실장, 그리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모두 도와준 것으로 묘사된다. 이후락 공보실장이 박대철의 편지 사실을 박 대통령에게 알리자 대통령은 “천태산 사장의 보증이 있으니 입사를 허락하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자서전 어디에도 없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과 박대철이 입사 조건을 위한 담판을 벌이는 다방 신은 더더욱 사실이 아니다.
이 시장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던” 이낙선 민정 담당 비서관의 배려로 ‘운 좋게’ 현대건설에 입사하게 되었을 뿐 박정희 대통령 등 정권 실세의 도움을 실제로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장면#4 박종규를 제압하다
중기 공장과 레미콘 회사 사이의 분진 공방도 사실과 조금 다르다. 레미콘 회사가 청와대와의 약속을 핑계로 분진 방지 시설 설치를 미루자 박대철이 불도저로 회사 진입로를 밀어버렸다. 이에 극중에서는 박종규 경호실장이 “그놈 데모하던 놈, 잘라버려”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박대철은 박 실장과의 통화에서 계속 버틸 것이라고 하자 박 실장은 권총까지 뽑아들며 “너 죽고 싶어”라고 하지만 “청와대 골재 납품이 중요한지 고속도로 공사가 중요한지 대통령에게 물어 보라”고 전화를 끊어버린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자초지종을 알고 있다가 웃으면서 “이번 일은 종규가 양보해… 박대철이라… 처음부터 재밌는 친구였어. 천 사장이 물건 하난 제대로 건진 것 같구만”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이 시장은 청와대 ‘누군가’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고 당시 상황을 해명하는 것으로 설명될 뿐이다. 그리고 이 시장은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더 이상 윽박지르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장면#5 경부고속도로 해결사
66~67회에서는 경부고속도로 당제터널 공사를 둘러싼 박대철의 ‘해결사’ 이미지가 그려진다. 천태산 회장은 굴착작업이 애로를 겪자 박대철을 불러오라고 긴급 지시한다. 박대철은 영문도 모르고 현장으로 간 뒤 사태를 파악하고 천태산에게 “주판알 모두 뒤엎어야 한다. 공기라도 맞춰 체면을 세우자. 그렇게 하기 위해선 빨리 마르는 조강시멘트를 써야 한다”고 제안한다. 박대철의 기발한 제안으로 공기는 대폭 단축되고 제 날짜에 개통식을 거행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그의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에서 이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건설부에서 터널공사를 체크하고 있던 이문옥 박사가 도저히 연내에는 완공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현장 소장 양봉웅이 터널 박사의 절망적인 진단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공기 내에 끝내는 방법은 조강시멘트를 쓰는 방법밖에 없다는 건의를 했다.”
이를 보면 공사 난관 극복의 결정적 아이디어는 이명박 시장이 아니라 당시 현장소장이었던 양봉웅씨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이 아이디어를 실행한 것도 정주영 회장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장 자서전 어디에도 경부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그가 ‘해결사’로 긴급 투입돼 조강시멘트를 쓰자고 주장했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한편 이런 논란에 대해 <영웅시대> 제작진들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먼저 총연출을 하고 있는 소원영 PD는 이 시장 미화설에 대해 “특정 인물을 띄운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편집 때문에 밤샘 작업중이라 통화하기가 곤란하다”며 짧게 해명했다. 또한 이환경 작가는 최근 거듭되는 외압 논란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 수신정지를 해놓아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없었다.
다만 박대철 역을 맡았던 유동근씨는 이런 논란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작가의 의도된 이명박 띄우기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한 이 시장과의 친분설에 대해서도 “이 작가는 ‘이 시장과 영웅시대 기획단계에서 자료수집을 위해 한 차례 만남을 가졌을 뿐 특별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물론 이 자리에는 연출자 소원영 PD 등 <영웅시대> 관계자들이 동석했다”고 밝혔다.
한평 이명박 시장은 최근 ‘<영웅시대>의 몇몇 장면이 사실이냐’는 물음에 “현장방문 등 상황은 맞지만 대사는 정확하게 내가 한 말이 아니다”라면서 “보통 작가들이 극화하기 전에 실제 인물을 만나는 게 상례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밝혀 이 작가가 극화에 앞서 이 시장을 한번 만났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이 시장은 “극중 탤런트 유동근의 이미지가 맞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드라마 안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환경 작가는 “<영웅시대>도 보통 드라마처럼 그저 드라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시청자가 알고 사극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상 시청자들이 현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의 ‘부탁’이 실제로 시청자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