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친박’의 대표주자 강재섭 의원이 장기적으로 박근혜 대표(왼쪽)와 경쟁관계로 들어설 것이라는 시각이 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박근혜 대표와 같은 대구출신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강 대표가 결선 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1차 투표에서 비교적 쉽게 당선된 것은 당 내분사태의 빠른 해결을 바라는 상당수 의원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원내대표 경선 기간 동안 강 대표는 줄곧 ‘친 박근혜’성향으로 분류돼 왔다. 그러나 일각에선 강 대표가 박 대표 체제를 지원하는 성향의 당내 2인자보다는 박 대표와 경쟁구도를 연출하는 스탠스를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강 대표가 그동안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자리 잡아 온 점이나 박 대표와 같이 대구·경북(TK)지역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박근혜-강재섭 체제의 ‘숙명적 대립’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강 대표는 ‘친 박근혜’ 성향의 대외 행보를 보여 왔다. 지난해 3월 탄핵정국 당시 박근혜 대안론을 설파해 오늘날 박 대표 체제 산파 역할을 했으며 행정도시법에 찬성표를 던져 박 대표와 뜻을 같이 하는 모습을 보였다. 원내대표직 당선 직후 당내 조기전대론에 대해 “박 대표를 흔들기 위해 전대를 새로 하자는 것은 당 체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박 대표를 옹호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내부에선 강 대표가 결국 장기적으로 박 대표와 경쟁관계에 들어설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강 대표는 원내대표 선거운동 기간 동안 ‘대권주자’ 이미지를 풍기며 득표활동을 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강 대표가 동료의원들에게 ‘이번이 큰 뜻을 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역설하고 다녔다”고 밝힌다. 원내대표 경선 다음날인 지난 12일 강 대표는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내대표직에 대한 정열을 언급하면서 “잘한다고 평가받으면 다른 희망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라 밝히기도 했다. 최종 목표점이 대권에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지난해 말부터 강 대표 주변엔 대권행보와 관련한 여러 소문이 나돌았다. 그동안 부총재직과 최고위원직 출마를 위해 사용해온 여의도 모처의 사무실을 확장개편 했는가 하면 외부인사 영입과 자서전 출간 계획 소식도 들려왔다. 김덕룡 전 원내대표의 갑작스러운 사퇴로 시기가 다소 당겨졌지만 5월 원내대표 경선에 맞춰 출마를 준비해왔다.
지난해 말엔 몇몇 대학을 다니며 자신의 현 정치권에 대한 분석과 정치철학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인터넷 홈페이지와 팬클럽 관리에도 정성을 쏟아왔다. 5선 중진의 강 대표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젊은 층에 대해 ‘인지도 넓히기’작업을 해온 셈이다.
오랫동안 잠룡으로 평가받아왔음에도 결정적 순간에 뒤로 물러났던 강 대표가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이번 대선에서 두각을 나타내기가 당장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박 대표를 비롯해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의 벽이 아직은 높다.
그러나 강 대표를 지지했던 중진그룹은 ‘박근혜 대표와의 라이벌 구도 형성을 통해 치고 올라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 대표를 지원했던 한 중진의원측은 “한나라당은 아직도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 3선의 맹형규 의원이 당내 최대계파 국민생각의 수장임에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3선 이상 중진들은 ‘3선 정도에게 중책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보법 처리과정에서 중진들의 불만을 샀던 박 대표 역시 3선이다”라 밝혔다. 지난 17대 총선 당시 상품성이 박 대표를 지금까지 지탱해줬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시장에게 추격당하고 있는 것처럼 리더십에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강 대표는 지난 13일 ‘국보법 기본틀을 유지해야 하며 대체입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보법에 문제가 있다면 몇 개 조항만 고치면 된다는 것이다. 행정도시법 통과와 과거사법 처리 연기가 연계됐다는 ‘빅딜설’ 근거를 제공해 5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하면 소송 취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를 어려움에 처하게 했던 국보법 문제와 ‘빅딜설’에 대해 자신이 총대를 메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지금은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박 대표가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사안들을 강 대표가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시점이다. 잘만 해낸다면 박 대표에게 불만을 갖고 있던 당내 중진그룹이 강 대표를 적극 밀어줄 것이며 TK 기반으로 강 대표가 부각된다면 박 대표를 밀어낼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필요에 따라 박 대표에게 ‘날을 세우는’ 스탠스가 필요할 것이란 지적이다.
경선 과정에서 강 대표의 주 득표층은 중진그룹이었다. 한 당직자는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 대해 “민정계 5·6공 세력을 중심으로 한 구주류와 당내 중도세력을 기반으로 신주류의 대결에서 구주류가 승리한 것”이라 의미를 둔다. 국보법 문제 처리 과정에서 박 대표에 불만을 표시해왔던 김용갑 이방호 의원 등 당내 보수인사들이 강 대표에 힘을 실어줄 분위기다. 국가보안법 상정을 막기 위해 이들 보수파 의원들이 법사위장을 점거했을 때 강 대표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휴일도 마다 않고 출근해 농성중인 의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유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 중진의원은 “중진들은 강 대표가 박근혜 대표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되기를 원할 것”이라 밝히기도 한다.
원내대표직 입성 이후 보이는 행보도 주목받는다. 강 대표 취임 이후 당 지도부는 수도권 지역구 의원인 맹형규 의원을 정책위의장직에, 임태희 의원을 원내부대표직에 임명했다. 수도 이전에 반대했던 인사들을 중용하는 일종의 ‘탕평책’을 쓴 셈이다. 박 대표 측근인 김무성 사무총장, 유승민 대표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 등의 재신임 과정에도 강 대표가 적극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박 대표가 얼마 전 독도 문제와 관련해 ‘울릉군 차원에서 해결할 일’이란 식으로 발언한 것에 대해 강 대표가 “오해가 있었다”며 진화에 나섰다. 동시에 강 대표는 독도 방문 의지를 표출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박 대표보다 강한 지도자상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강재섭 원내대표 체제 등장으로 한나라당은 이제 ‘영남당’의 색채를 더욱 띄게 됐다. 당내에선 당이 보수화되면 될수록 여·여간 합리적 해결을 우선시해온 박 대표보다는 법조 출신 5선 강 대표에게 반사이익이 돌아갈 것이란 평이 나온다. 한 중진의원은 “강 대표가 조기전대론에 맞서 박근혜 체제를 옹호했는데 이는 박 대표가 대표직을 지키고 있는 상태에서 강 대표가 원내대표직을 기대이상으로 수행했을 때 ‘당대표보다 낫다’라는 찬사를 얻을 수 있기 때문 아닐까…”란 평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