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대선후보 합동토론회에 나온 노무현 이회창 후보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따라서 이번 대선도 결국 영원한 ‘캐스팅 보트’인 충청권(대전, 충남, 충북)에서 결판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양당은 모두 인정하고 있다. 충청권 유권자는 3백47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 3천5백1만 명의 약 9.9%다. 이•노 두 후보가 팽팽한 접전을 벌일 경우 충청권 유권자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난다.
각 여론조사 기관의 비공개 조사내용을 보면 현재 충청권은 부동표 25% 내외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유권자 4명 중 1명이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보단일화로 노 후보가 앞서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그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지기도 해 도무지 표심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과거에도 충청권은 여론조사가 가장 힘든 지역이었고, 때로는 출구조사마저 틀리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올 대선에도 그같은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다 충청권은 92년 대선 때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97년 대선 때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를 선택했다.
선택의 기준은 딱 한가지. 바로 JP가 미는 후보를 찍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 대선은 형편이 달라졌다. JP가 특정후보를 공개지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JP가 이회창 또는 노무현 후보 지지를 표명한다 해도 과거와는 사정이 다르다. 90년 JP의 3당합당 참여에 따른 92년 민자당 위력이나 97년 DJP연대와 같은 파괴력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무주공산, 예측불허, 오리무중…. 이것들이 투표 일주일을 앞둔 충청권의 표심을 표현하는 단어들일 뿐이다.
일단 JP와 이인제 자민련 총재대행의 선택은 충남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나라당 충남도지부 관계자는 “JP가 움직이면 충북과 대전은 몰라도 충남에 표심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청원 대표와 김영일 총장은 JP와 이인제 총재대행과 물밑접촉을 계속하면서 이들의 지원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역풍도 만만찮다.
민주당은 JP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순간 ‘낡은정치 대 새정치’라는 노무현 후보의 선거전략이 수도권 전체로 확산돼 불리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JP의 간접적인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지난 주말 자민련이 갑자기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나서 한때 성사될 것으로 보이던 ‘한-자공조’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충청권 표심이 노 후보에 유리한 쪽으로 흐르는 것을 감지한 JP가 노 후보와의 연대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JP가 한나라당에 향후 지분 등의 요구를 하고 있다는 설도 파다하다. 이회창 후보의 한 측근은 “도무지 JP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면서 “민주당의 김원기 김영배 의원 등이 최근 JP와의 접촉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혹을 던졌다.
▲ 지난 6일 자민련 신임 이인제 총재대행이 취임사를 마치 고 김종필 총재에게 인사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 ||
이처럼 자민련은 이•노 두 후보에게는 집어삼킬 수도, 내뱉을 수도 없는 ‘계륵’이다. 문제는 이인제 총재대행. 이 대행은 JP와 달리 이회창 후보 지지에 생각이 있는 것 같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한나라당도 JP보다는 이 대행의 지원유세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민주당은 정몽준 대표의 지원유세가 시작되면 충청권은 확실한 우세를 점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정 대표가 후보단일화 이전 여론조사 결과에서 충청권 1위였던 만큼 ‘단풍’(단일화 바람)을 상승시킬 최대 호재라는 것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박근혜 공동선대위원장을 긴급투입시켜 단풍 차단에 나섰다. 정몽준과 박근혜의 충청권 간접 지원유세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즐길 수 있는 흥미거리 가운데 백미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정 대표가 끝까지 중립을 지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JP, 이인제, 정몽준, 박근혜 등의 변수 보다는 오히려 한나라당의 조직과 민주당의 바람 대결이 결국 충청권 표심을 최종 결정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정몽준 대 박근혜 영향 실제로 한나라당은 조직을 풀가동, 밑바닥 표심을 파고 들고 있다.
충남도지부의 한 관계자는 “당원들의 집에 있는 빗자루까지 나섰다”고 말했다. 충북은 원래 조직이 탄탄했고, 충남은 김용환 함석재 이완구 전용학 등 입당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조직에서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다.
대전은 민주당 조직이 와해상태여서 강창희 의원이 조직복원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김용환 의원측은 “수도권이나 부산•경남과는 달리 충청권은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다”면서 “결국 조직력이 승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조직 열세를 자인하고 있다.
하지만 대전 청주 천안 등 도시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젊은층의 노풍이 시골로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가 이 후보를 앞서고 있는 것은 바람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조차 노 후보가 충청 출신도 아니고, 조직도 없으면서 충남 예산 출신의 이 후보를 앞서가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분석해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의 바람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노 후보의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의외로 잘 먹혀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 후보는 8일 대전에서 행정수도는 물론 국회까지 충청권으로 옮기고, 취임 1년 이내에 착공하겠다고 선언, 행정수도 이전 공약의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충청권 표심은 인접지역인 경기 남부, 충청 출신 인구가 많은 인천에도 파급효과가 크다. 과거의 예로 보면 충청표심은 투표를 4∼5일 정도 앞둔 이번 주말쯤 조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드러나지 않는 표심’을 향한 이회창, 노무현 두 후보의 ‘중원 혈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김일송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