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한 소식통은 “국회법 개정안이 여당 지도부의 승리로 끝날 경우엔 당시에도 그랬듯 힘의 큰 축은 완전히 여당으로 옮겨가게 된다. 당시 박 대통령이 ‘여의도 대통령’이 됐듯 그렇게 말이다”라고 했다.
‘정부가 틀렸고 국회가 맞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흐른다는 점도 닮았다. 행정부가 모법을 위반한 시행령을 만드는 것을 국회가 고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상식인데 이를 ‘국정마비’로까지 비화한 것은 판단착오라는 이야기가 많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효율성을 들어 경제도시로 바꾸려 했으나 박 대통령은 특유의 ‘약속론’으로 돌파했다. 그 뒤로 매 사안 정부는 국회의 의중을 물어야 했다. 또 야당이 여당 편을 든 점도 같다. 세종시 수정안 정국에선 당시 민주당이 한나라당 친박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평행이론의 해석에는 허점도 녹아 있다. 하나는 축을 형성한 주인공의 비중이다. 전 정권에서 박 대통령은 고정 지지율 30%대를 형성한 유력한 대권 후보였다. 하지만 현재의 김무성-유승민 체제를 그 반열에 올리기는 부담스럽다. 특히 박 대통령의 당시 비중은 이완구 충남도지사가 그 직을 던지고 충청권과 수도권이 지역싸움을 일으킬 정도로 빅매치였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김무성 대표 본인이 일단 소극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서는 “마땅한 차기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현재의 김무성과 유승민 파워와 가능성은 세종시 정국의 박근혜 만큼 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번 국회법 개정안 파문은 데드라인이 정해진 시한부 싸움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본회의 처리까지는 종결시점이 정해져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조기 레임덕 위기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큰 결단을 내렸다. 이번 파문도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지만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그때만큼 적대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시에는 ‘세종시 총리’로 불린 정운찬이란 구원투수가 이 전 대통령을 대신한 대리전을 펼쳤다. 지금은 총리가 부재한 상황으로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는 점도 다르다. 정운찬 대 박근혜 대결구도였는데 지금은 박근혜 대 유승민 구도란 점은 큰 차이점이다. 파워면에서만 보면 격이 맞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이다.
여권 내부에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덕에 김무성-유승민 체제가 시간을 벌었다는 분위기다. 친박계가 자꾸 싸움을 걸어오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메르스 해결에 총력태세로 빠져 나갈 구멍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또한 청와대로서는 메르스 여파 등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명분이 점점 희석돼 가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