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서청원 최고위원도 최근 청와대의 리더십 부재를 질타했다. 사진은 지난 8일 박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추진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최근 새누리당 내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를 대비, 많은 의원들이 각자의 루트를 통해 ‘차기 행동 요령’을 여기저기 묻고 다닌다는 전언이다. 거부권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열릴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어떤 주장을 펼치면 좋겠느냐는 것이 요지다. 여권이 ‘한 몸이냐 두 몸이냐’로 갈릴 중차대한 시기에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 어필하는 것이 차기 공천에 유리할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다.
한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돼 재의결되면 현 정부는 곧바로 레임덕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만약 본회의에 부결되거나, 상정조차 되지 못하면 당내 지도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된다”며 “판이 흔들리는 시기에 의원들은 자기의 충성심 내지는 진정성을 어필하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 때문에 방미를 연기한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서도 여당 내부가 시끄럽다. 잘했다와 실기했다는 이야기가 교차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의심 사항이다. 방미 연기를 제2의 부재로 시국을 시끄럽게 하지 않은 것이 잘했다는 쪽의 논리다. 반면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미국에서 만나되 ‘공항 회담’의 급박한 형식으로 독대하고, 곧바로 귀국하는 것이 어땠는가 하는 지적도 있다. 미국이 우방임을 강조하면서도 나라의 위기상황에서 외교적 성과를 올려 추락한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미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방미 연기로 당청 간 불통은 재확인됐다. 방미가 결정되기 전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선 김태호 최고위원은 “당초 계획대로 미국을 방문하시는 것이 옳다”고 했고, 이인제 최고위원도 “대통령께서 비행기 안에 계시거나 미국에 계시거나 한국 메르스 사태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장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하는데 무슨 장애가 있나. 아무 장애도 없다”며 방미를 재촉구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만에 청와대는 귀를 닫았다는 듯 당의 요청을 엎어버렸다. 일각에선 방미를 연기해 국내 메르스 사태의 심각성을 과도하게 왜곡해서 해외에 알린 꼴이라고 비아냥댔다.
공공기관장 인사 문제로 ‘적대적 박’으로 돌아선 인사들이 최근 여의도 주변부를 배회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를 ‘험담하고’ 다니기 위해서다.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일부 중엔 정부 출범 3년차가 되도록 제대로 인사를 받지 못했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정가 한 인사는 “친박 핵심이 천거해도 자리가 안 난다고 한다. 대통령 결재가 안 떨어지고 있는데 대통령이 직접 사람을 챙기고 있어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며 “지금 자리를 잡아도 2년이다. 아군을 완전한 적으로 돌려세우고 차기 대선을 치르기가 쉽지 않다. 친박의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언제 제2, 제3의 성완종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레임덕이 오면 대통령을 팔던 이런 자들이 대통령을 욕하면서 야비한 짓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청와대 한 인사로부터는 당에서부터가 아닌 청와대 내, 정부 내에서 레임덕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사석에서 그는 “도대체 공무원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귀 닫고 입 닫고 이 정부 지나가라 주문만 외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현재 정부에서 공무원을 장악한 부처는 기획재정부, 교육부, 해양수산부 정도다. 즉, 정치인이 국무위원이 된 경우엔 공무원들이 말을 따른다,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교수나 연구원, 기업인 출신을 대거 기용했다. 이런 부처는 쇠 귀에 경 읽기다.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공무원을 ‘국민의 적’으로 만든 것도 싫은데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정책만 되풀이하니 한마디로 일하기 싫다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최근 새누리당 친박계 일각에서 ‘권력 갈아타기’가 시도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만약 그렇다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에 몰린다. 지난 8일 친박계의 좌장이자 맏형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정부의 내각에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인물이 없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메르스가 확산됐다.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다”라고 했다.
실제 지난 공무원연금 개혁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임명한 청와대 정무특보는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주호영 의원은 국회 예결위원장 출마를 선언하며 직을 던진 상태였고, 윤상현 김재원 정무특보는 청와대의 뜻을 당 지도부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무원연금 개혁과 국회법 개정안을 세트로 처리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당 지도부에 전달한 과정도 진실공방이 한창이다. 증세와 개헌, 복지 구조조정 등 여권에선 국회법 개정안 정국 이후에도 당청 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메르스 정국 대응 미숙으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큰 상처가 났다. 내년 총선을 앞둔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며 차기 주자 밑으로 모여들 기세다. 이래저래 박근혜 정권도 점점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