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이 인기를 끌면서 농업을 배우러 전문대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채상헌 천안연암대학교 교수가 한 학생과 식물을 살펴보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14년에만 4만 4500여 가구가 도시를 버리고 시골마을을 찾아갔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리턴족’ 비중이 해마다 5% 정도로 집계된다. 한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떠도는 ‘철새족’을 포함하면 시골살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구 비율은 더욱 늘어난다. 막연하게 푸근하고 넉넉한 시골생활만을 생각했다가 돈 버리고, 마음 상해서 돌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잦다.
귀촌을 한 이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장벽은 바로 ‘사람’이다. 귀농·귀촌인에 대한 토박이의 텃세는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주도 서귀포로 귀농한 박 아무개 씨(30)는 “정이 많고 친절한 시골 인심을 기대하고 내려오면 곤란하다. 처음에는 마을사람들의 말투와 행동이 많이 거칠어서 애를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작정하고 귀촌인을 ‘왕따’시키거나, 앞서 A 씨의 경우처럼 이장이나 일부 마을주민이 작정하고 괴롭히는 일도 있다. 땅 주인이 “내 땅은 밟지도 말라”며 생떼를 놓는가 하면, 귀촌인의 논밭에 쓰레기를 버리기도 한다.
지역민들과 어울리기 어려우면 귀촌인들끼리 뭉치면 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 오산이다. 새로 터를 잡은 귀촌인 사이의 갈등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귀농·귀촌 전문가 채상헌 천안연암대학교 교수(친환경원예과)는 “귀촌인끼리 상부상조하면 좋지만 묘한 경쟁관계가 생겨 사이를 망치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한 귀촌인이 먼저 정착한 다른 귀촌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도 봤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을 비싼 값으로 샀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 귀촌인에게 되파는 식이다”고 밝혔다.
시골의 생활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일도 적잖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옆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아는 지역민의 관계는 그 자체로 문화충격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동계, 공동작업, 단체여행 등의 반복되는 행사와, 이웃의 시시콜콜한 잔소리까지 귀농·귀촌인에겐 버거운 짐이 될 수 있다. 한 30대 여성 귀촌인은 “시어머니를 서른 명쯤 모시고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밭에 풀 뽑는 것부터, 집에서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까지 동네 어르신들의 입길에 오른다”고 전했다.
귀농·귀촌 관련 카페에는 마을행사 참여에 관한 귀촌인들의 고민이 많이 올라온다. 한 귀촌인은 “마을행사에 계속 빠지니 하루는 마을 추진위원장이 집에까지 찾아와 ‘마을 행사 참여 안 하면 집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반 귀촌인’에게 마을행사는 여러모로 골치 아프다”고 경험담을 올렸다. 시골살이운동본부 김유신 대표는 “마을 공동일에 나 몰라라 하며 개인주의적 도시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는 건 귀촌 실패의 지름길이다”고 조언했다.
한 시골 마을의 농촌체험행사(위)와 천안연암대학 학생이 트랙터로 밭을 가는 모습.
마을발전기금은 지역에 따라 거두는 금액과 운용방식이 천차만별이다. 마을의 경조사나 공동사업을 할 때 쓰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관리되는지 전혀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심지어 일부 지역의 이장이 ‘민원해소비’ 명목으로 귀촌인에게 수백만 원씩 개인적으로 착복해 문제가 된 일도 있었다. 또 농어촌 조합비 명목으로 적정수준 이상의 돈을 요구하고, 마을공동사업의 수익금 배분에서는 쏙 빼버리는 일도 귀촌인이 심심찮게 겪는 일이다.
땅을 구할 때 말 그대로 ‘호구 잡히는’ 일도 다반사다. 지역 사정을 잘 모르는 귀촌인에게 비싸게 땅을 팔아넘기거나, 지역 특유의 거래방식을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2011년 제주도 서귀포시에 터를 잡은 정 아무개 씨(30)는 “부동산에서는 나쁜 땅이더라도 일단 팔아넘기기 바빴다. 맹지를 비싼 값에 팔려고 드는 중개업자도 겪어봤다”고 말했다. 김유신 대표는 “땅을 고르고 사는 부분은 책으로 공부해서 될 게 아니다. 직접 찾아가보고,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듣고 현장에서 부딪쳐봐야 답이 나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자급자족을 목표로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많지만 이 역시 ‘로망’에 불과하다. 채상헌 교수는 “귀농의 경우 초기 3년은 수입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농삿일에 서툰 귀농인에게 첫 해 수확물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둘째 해 역시 내다 팔 만한 수확물을 거둘 가능성은 매우 적다.
반면 기본 생활비는 꾸준히 들기 때문에 충분한 경제적 여유 없이 귀촌했다가는 ‘귀촌 난민’이 되어 도시로 돌아갈 수도, 시골에 계속 남아있기도 힘든 상태에 빠져버린다. 채 교수는 “시골에서의 생활비는 도시 생활비의 70% 정도다. 난방비, 차량유지비 등 도시에서보다 오히려 지출이 늘어나는 부분이 생긴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