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가에서 은밀히 회자되고 있는 신용카드를 이용한 탈세 수법은 이렇다. 은행 직원이 자사와 연결된 신용카드를 사용하다가,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해야 할 시기에 신용카드 담당직원에게 실제 사용액보다 부풀려서 세액공제용 자료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다는 것. 이처럼 신용카드 직원의 도움이 없이는 내역서 위조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국세청은 지난 3월 초 일부 은행원의 연말정산 관련 세액공제 자료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했다. 지난해 신용카드의 실제 사용액보다 많은 액수를 사용한 것처럼 위조된 자료가 제출된 사실을 적발했던 것.
이에 국세청은 ‘미심쩍은 은행’의 다른 행원들에 대한 실제 신용카드 사용 내역서를 카드사로부터 건네받아 대조작업을 벌인 결과, 예상보다 많은 행원들이 카드 사용 내역서를 위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론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서, 그보다 많이 사용했던 것처럼 위조해 세액공제를 받았던 셈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세청은 지난 3월 중순 금감원에 이 같은 사실을 통보하며, 조사 협조를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금감원은 해당 은행의 검사부장들에게 자체적으로 조사해서 그 결과를 보고토록 했다. 금감원은 지난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 동안 은행원 몇 명이 얼마나 탈세했는지 집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현재까지 보고된 내용을 보면 탈세액이 ‘미미한’ 수준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체 조사해서 보고한 한 은행의 탈세액을 보면 수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면서 “다른 은행의 보고 내용은 불충분해서 다시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A은행에선 검사부장이 자체 조사를 벌여 행원 한 명만 카드 사용 내역을 위조했다고 금감원에 보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은행권 일각에선 이번에 적발된 은행들이 향후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금감원에 축소보고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은행권의 핵심 관계자는 “규모가 크지 않은 지방의 B은행이 자체 조사한 결과 행원들이 수백억원을 탈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 적발된 은행 전체로 계산했을 때 수천억원은 족히 탈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재까지 금감원에 보고된 탈세액만 놓고 추정해 보면 행원의 탈세액은 수십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행가에선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 보고 내용과 은행가에서 회자되는 탈세 규모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현재까지 탈세 혐의가 드러난 행원에 대해선 은행마다 자체 규정에 따라 징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국세청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은행원 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이 뒤따를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탈세와 사문서 위조 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탈세 규모에 따라 해당 은행에 대해서도 과태료가 부과될 공산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해석이다.
국세청 조사 결과가 나온 이후 신용카드 내역서를 위조하는 데 동참했던 신용카드 직원들에 대한 법적 조치도 뒤따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금융권에 몰아닥칠 후폭풍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란 얘기다. 특히 은행원들의 ‘조직적인’ 탈세 여부도 큰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