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그렇다면 왜 대학이 이렇게까지 힘들여 ‘연예인 모시기’에 나서고 있는 것일까.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지금의 위치를 확보한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친 교육열에서 비롯된 대입 방식에 있다. 명문대의 위상 역시 대학 본연의 활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라는 막연한 개념에 더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대학이 유독 연예인에게만 높은 문턱을 낮추고 있다. 아니 문턱을 낮추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문을 떼어 스타에게 가져가 들어와 달라고 읍소하는 상황이다. 대학이 최후의 자존심까지 내던지고 ‘스타권력화의 첨병’이 되어버린 까닭은 무얼까.
“요즘 얘가 연예인이 되겠다며 난리다. 대학 들어간 뒤 연예인이 돼도 늦지 않는다며 달래도 보고 혼도 내봤지만 말을 안 듣는다. 그 녀석 대학가는 게 내 꿈이었는데….”
누군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오히려 연예인 데뷔를 권장해야 할 판이다. 진정 대학 입학이 꿈이라면 연예인이 되는 것만큼 쉬운 방법도 없기 때문. 각 대학의 수시 모집 전형 유형을 살펴보면 그 ‘정답’이 나온다.
동국대학교 2006학년도 수시 1학기 전형을 살펴보면 ‘연기재능 우수자전형’이라는 항목을 발견할 수 있다. 지원 자격은 ‘국내외 연극 영화 TV 관련 분야 대회에서 개인상을 수상한 자’ 내지는 ‘연극 영화 TV 관련분야에서 주조연급 경력자’다. 게다가 ‘연기재능 우수자 선발위원회에서 인정할 만한 경력을 소유한 자’도 지원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연예인’이라는 이름표만 달고 있으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난 3년간 수시 전형으로 동국대에 입학한 연예인을 살펴보면 조인성 신민아(이상 03학번) 정다빈 정다혜 김영아(이상 04학번) 이승기(05학번) 등이 있고 최근 박하선이 수시 전형에 합격해 내년에 입학할 예정이다.
경희대 수시 전형 유형에는 ‘연극영화 및 음악 특기자 전형’ 항목이 있다. 자격기준은 동국대와 거의 비슷하다. 연예인 관련 협회 회원이면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고 가수의 경우는 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으면 된다. 이런 이유로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학과로 가수들이 몰려들고 있다. 03학번 박효신을 비롯해 박탐희 한은정 린 등이 05학번이다. 올해 수시에서도 SG워너비의 김진호, 버즈의 민경훈, 슈가의 박수진, 동방신기의 최강창민, 김옥빈 등 여러 명의 연예인이 대거 경희대 수시 전형에 합격했다.
한양대 수시에는 ‘재능우수자’ 항목 ‘연기’ 부분이 눈에 띈다. 지원 자격은 ‘각종 시상식 수상자’와 ‘드라마나 영화에 일정 횟수 이상 출연한 자’로 그 한계를 연예인으로 분명히하고 있다. 건국대 동덕여대 등 대부분의 대학이 비슷한 수준의 지원 자격을 정해놓고 연예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 합격률도 매우 높다. 연예인 가운데 수시 전형에 응시했다 떨어진 스타는 지난 2004학년도 한양대학교 수시 모집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은 하리수가 유일하다. 이는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탓으로 한동안 한양대를 비난에 휩싸이게 만든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문턱을 낮췄다고 무조건 연예인이 몰려드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이 비슷한 수준으로 문턱을 낮춘 터라 무언가 더 큰 당근이 필요해진 상황. 이를 위해 대학 관계자와 연예인측 인사 사이에서 치열한 물밑 접촉이 벌어진다.
▲ 멤버들이 명지대와 경희대에 입학·합격한 동방신기(위). 멤버 김진호가 경희대에 합격한 SG워너비(가운데). 멤버 박수진이 경희대에 합격한 슈가(아래). | ||
물론 이 같은 ‘연예인 특혜설’에 대해 각 대학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예인일지라도 대학이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합격이 가능하며 철저한 학사 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각 대학 입시 관계자들의 입장이다. 물밑접촉을 통한 특혜 제공은 전혀 없다는 얘기. 배용준 최지우 송혜교 등 톱스타들이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자퇴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런데 학교에서 만난 재학생들은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심지어 “같은 과 동기 가운데 연예인이 있으나 함께 수업을 받아본 기억이 전혀 없다”는 학생도 있을 정도. 대부분의 경우 자퇴생은 재입학이 가능하다. 당장 대학을 졸업할 필요성이 없는 연예인들이 여유롭게 ‘자퇴’라는 카드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반면 군 문제가 걸려 있는 남자 연예인이 자퇴하거나 제적당한 경우는 전무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대학이 연예인에게 매달리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홍보효과에 있다. 우선 학교 지명도를 높이는 데에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한 입시전문가는 K대학을 예로 들며 “지방대학이었던 K 대학은 발 빠른 연예인 유치에 나서 이미지 제고에 성공했다”면서 “매년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연예인 재학생이 신입생 유치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광고보다 연예인 입학이 훨씬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얘기.
지방대학은 더욱 적극적이다. 다만 한정된 고3 연예인을 두고 서울 소재의 대학과 쟁탈전을 벌여 지방대가 이들을 차지할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따라서 지방대는 주로 다소 나이가 많은 연예인들을 목표로 영입경쟁을 벌이고 있다. 채민서(대덕대) 이재인(건양대) 여현수 이동욱(이상 중부대) 강성연(한남대) 최수지(대수예술대) 등이 최근 몇 년 새 지방대에 입학한 연예인. 만학도가 된 이들은 대학 입학의 기회를 얻었고 대학은 이들을 활용한 홍보에 성공한 것이다.
이런 무형의 홍보효과 외에 유형의 ‘수익 모델’(?)로서도 연예인은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다. 입시철마다 대학에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대박’을 안겨주는 ‘전형료 수입’에 스타 연예인이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동국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이왕이면 강타 오빠가 있는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동국대에 지원했다는 답변자가 절반 이상이었다. HOT에 열광하며 고교시절을 보낸 이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스타의 존재를 하나의 지원 기준으로 삼았다는 얘기로 당시 커다란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런 경향은 근래 들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경쟁률은 곧 지원자의 수를 의미하고 대학측으로서는 전형료와 직결된다. 가령 대학 정원이 3천 명가량이면 1인당 전형료가 7만원이니 경쟁률 1.0마다 대학의 수익은 2억원 이상 움직인다. 스타 연예인 신입생이나 재학생으로 인해 지원자가 늘어 경쟁률이 높아진다면 대학은 그만큼 짭짤한 전형료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올해 정시에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학교는 명지대와 경희대다. 명지대의 경우 동방신기의 시아준수와 유노윤호가 재학중이며 경희대는 동방신기의 최강창민을 비롯해 김진호 민경훈 등 고교생에게 인기가 높은 연예인들이 입학할 예정이다. 또한 올해 최대어로 손꼽히는 문근영이 성균관대 수시 2차 전형에서 합격할 경우 성균관대의 경쟁률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듯 ‘연예인 특례입학’은 연예인과 대학 모두에게 윈윈(win-win)게임이다. 다만 아쉬운 부분은 그 사이에서 일반 수험생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각 대학 연예 관련 학과는 하나같이 10: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관련 공부에 뜻이 있어 실기까지 준비한 고3 수험생들이 과연 ‘연예인 동료 응시생’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