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신촌 젊음의거리에서 20대 여성 300여 명을 대상으로 ‘아빠와 딸’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박은숙 기자
딸이 성인이 되면서 책임감에서는 어느 정도 놓여났지만, 가정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줄어들었다. 성인 딸과 엄마의 관계는 친구 같지만, 아빠와 딸은 그만큼 돈독하지 못하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를 벗어난 아빠들은 한 차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마음은 있지만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 대화는 5분 이상 이어질 수 없다. ‘아빠와 딸, 그 동상이몽에 대하여’ 특집은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서로 가까워지고는 싶지만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부녀의 속마음을 듣고자 했다.
비록 서면으로 진행했지만 아빠들의 고민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관심을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고,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딸들의 표정은 더 복잡했다. 부녀관계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딸이 있는 반면, 아빠라는 단어 하나에 만면에 웃음을 짓는 행복한 딸도 있었다. 돈독한 부녀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이 다수였지만, 설문에 응하면서도 맺힌 게 많은 듯 취재진에게 아빠에 대한 독설을 하고 가는 딸들도 적지 않았다.
한 여성은 “아빠의 모든 게 싫다. 도대체 왜 저러고 사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며 차갑게 말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응답자는 “아빠가 나한테 해준 게 없어서 스티커 못 붙이겠다”며 질문지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단지 열 개 남짓한 질문을 갖고 부녀관계의 모든 것을 알기란 역부족이었다. 다만 ‘부녀 모두 더 많이 대화하고 마주하는 기회를 원한다’는 답은 얻을 수 있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아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딸들은 대부분 대화시간이 길고, 아빠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또 가족 모두의 관계가 돈독할 때 부녀관계는 더욱 친밀했다.
아빠들은 더 용기를 가져도 될 듯하다. 딸들은 아빠와 하고 싶은 게 많았고, 서로 더 알아가길 원했다. ‘딸의 무관심에 상처받았다’는 아빠들의 생각과는 달리, 많은 딸들이 아빠가 자신을 위해 힘들 게 일하고 있다는 걸 분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대화시간을 늘려가는 게 당장은 어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 십 분만 더 딸과 얘기를 나눈다면 그 ‘동상이몽’은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