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조재현-혜정 부녀. 사진제공=SBS
대한민국 ‘딸 바보’ 아빠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딸과 함께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으며, 함께 식사하는 횟수도 매우 적었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다보니 딸과의 대화는 자꾸 엇나간다. ‘딸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하지만, 살가운 말은 듣지 못하고, 함께하고 싶은 일은 지극히 소박하다.
통계를 통해 본 아빠들은 한편으론 딸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반면, 일로 몸과 마음이 바빠 딸과 사이가 멀어진 모습이었다. 반면 딸에 대해 바라는 점은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했다.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가장 원했고, 딸과 함께하는 여행을 꿈꾼다. 자신에 대한 딸의 무관심에 상처 받았으며, 조금 더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 바람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아빠와 딸의 ‘동상이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질문은 ‘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였다. 전체 응답자의 73.7%가 ‘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라고 답했다. ‘잘 모르는 편이다’는 응답은 24.5%였다. 딸과의 대화 시간이 하루 평균 10분이 채 되지 않는데 불구하고 아빠들은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현장설문조사에서 만난 딸들의 답은 그 반대였다. 딸의 모든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빠가 딸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부녀 양쪽의 설문조사를 진행하며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리얼미터 조사 / 40세 이상 60세 미만 20대 미혼 딸 가진 남성 340명 /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5.3%
부녀관계 친밀도를 확인해보기 위해 최근 일주일간 함께 식사한 횟수와 대화한 시간을 물었다. 식사 횟수에 대한 물음에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1~3회’라고 응답했다(48.4%). 이어 ‘4~6회’라는 응답이 24.7%를 차지했고, 한 번도 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8.9%로 집계됐다. 일주일에 7회 미만 식사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82%를 차지해, 대부분의 부녀가 하루에 한 끼도 함께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화시간에 대한 성적표는 더 초라하다. ‘최근 일주일 동안 얼마나 대화를 했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분의 1이 ‘30분 이상~1시간 미만’을 택해, 하루 단위로 쪼개면 평균 10분도 대화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10~30분’(27.6%)으로 1일 평균 5분 미만이라는 응답이 2위를 차지했다. 하루에 5분도 대화하지 않은 부녀가 네 쌍 중 한 쌍 꼴이다. 심지어 ‘10분 미만’이라는 응답도 11%에 달했다. 하루에 겨우 인사만 하는 수준인 셈이다.
부녀의 친밀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아빠의 나이와 둘의 동거 여부였다. 따로 사는 부녀의 60%가량이 지난 일주일간 30분도 채 대화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령별로는 40~44세 아빠의 16%가 딸과 일주일에 적어도 2시간 이상 대화한다고 응답한 반면, 55~59세는 절반 수준(9.4%)에 그쳤다.
50대 후반 응답자의 20%가 ‘일주일간 딸과 한 번도 식사를 안 했다’고 답했지만 40대 초반에서 이렇게 응답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딸과 최근 일주일간 10분도 대화하지 않았다’는 응답 역시 50대 후반에서 월등히 높았다. 딸이 직장을 가지며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요인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질문에서 50대 후반과 40대 초반 응답자 사이에서 많은 차이가 나타나, 일종의 ‘부녀관계 세대차’로 읽을 수 있다.
친밀도에 대한 성적표가 초라하다는 점을 아빠들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딸과 함께하는 시간이 충분한가’에 대한 질문에 절반(50.2%)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역시 ‘일이 너무 많아서’(45.9%)를 꼽았다. ‘딸이 바빠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아빠는 26%였고, ‘딸의 무관심’을 사유로 꼽은 슬픈 아빠들도 19%나 됐다.
더 서글픈 응답은 ‘함께 있는 시간이 어색해서’라는 응답(7.5%)이었다. 특히 50~54세 아빠들이 딸과 보내는 시간을 어색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9.5%). 또 ‘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아빠 4명 중 1명은 ‘딸의 무관심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적다’고 응답해 ‘딸바라기’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딸은 아빠는 무뚝뚝하고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아빠들도 딸에게 서운한 점은 있었다. ‘딸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나’라는 질문에 ‘상처받은 경험 없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지만(33.2%), 0.1%포인트의 차이로 ‘딸이 무관심할 때’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특히 40대 아빠들은 딸의 무관심을 첫 순위로 꼽았다. ‘경제력을 타박할 때’(17.3%)가 뒤를 이었고, 딸의 이성교제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응답 역시 높았다(14.5%). 이밖에 ‘다 컸다고 대들 때’, ‘말을 듣지 않을 때’, ‘거짓말할 때’, ‘귀가시간이 늦어서’ 등 딸의 의도치 않은 ‘공격’을 아빠들은 가슴 깊이 담아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처받은 아빠들의 마음을 달래줄 딸들의 한마디는 뭘까. ‘아빠 사랑해요’, ‘앞으로 용돈 많이 드릴게요’, ‘존경해요’,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기타응답’ 다섯 가지의 보기가 주어졌다. 아빠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생각보다 소박하고 단순했다. ‘아빠 사랑해요’라는 응답이 56.4%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특히 40대 초반 아빠들의 61.2%가 이 보기를 선택했다.
다음은 ‘용돈 많이 드릴게요’라는 응답은 24.4%로 2위를 차지했다. ‘용돈’에 대한 기대는 나이와 반비례했다. 딸이 취직을 하면서 딸이 용돈을 주는 일이 실제 가능해져 50대 후반의 아빠들이 딸에게 든든함을 느끼는 까닭으로 분석된다.
딸과 가장 하고 싶은 것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국내 또는 해외여행’(36.3%), ‘영화 공연 등 문화생활’(29.5%), ‘진솔한 대화 나누기’(21.9%), ‘취미생활 함께하기’(12.1%) 순으로 조사됐다. 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아빠들은 ‘여행’을 꼽은 응답이 많은 반면, ‘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응답한 아빠들은 ‘문화생활’을 1순위로 꼽았다. 또 ‘진솔한 대화’에 대한 응답률도 23.2%와 18.4%로 차이를 보였다. 많은 대화와 긴 시간을 요하는 여행이나 대화보다는 함께 말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나 공연을 선호하는 성향의 차이가 드러났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