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부탁해> 이경규-예림 부녀. 사진제공=SBS
“나는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말문이 트이고 들은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을 수도 있겠다. 평생 나만 볼 것 같았던 딸이 자라서 남자친구를 데려오고, 결혼 얘기를 꺼내는 것만큼 아빠들에게 서운한 일이 또 있을까. 어린 시절 아빠바라기였던 딸들은 커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나는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라는 질문 앞에서 많은 응답자들이 머뭇거렸다. 결국 ‘NO’라는 응답에 스티커를 붙이며 “아빠 미안해요”라며 도망가는 딸도 있었고, 고민의 여지없이 ‘YES’에 손을 뻗으며 “스티커 10개 붙이고 싶다. 아빠는 나한테 정말 잘 한다”고 말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이 질문에 응답한 319명의 딸 중 182명(57.1%)이 ‘NO’를 선택했다. 6 대 4의 비율로 “나는 아빠와는 다른 스타일의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쪽이 앞서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설문에 응하던 한 여성은 “아빠는 좋지만 사실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은 싫다”며 “내 이상형은 과묵한 사람이지만 아빤 너무 수다쟁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또 다른 응답자는 “아빠같이 능력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내 목표다”라며 당찬 포부를 말하는 딸도 있었다.
딸과 나들이를 나온 엄마들은 설문을 흥미로운 눈길로 지켜봤다. ‘YES’에 스티커를 붙이는 딸을 눈을 흘겨 바라보며 “난 네 아빠 같은 사위는 싫다”며 못마땅한 기색을 비쳤다. 또 다른 엄마 역시 “니가 잘 몰라서 그렇다”며 딸의 선택에 고개를 저었다.
아빠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은 딸을 성적 또는 취직으로 타박하는 일이다. ‘아빠가 가장 미워 보일 때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 3명 중 1명이 ‘성적 또는 취직으로 타박할 때’ 가장 미워 보인다고 응답했다. ‘다른 집 아이랑 비교할 때’ 가장 미워 보인다는 응답이 22.9%로 그 뒤를 이었다.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응답하던 한 20대 초반의 여성은 “연애사에 제발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남자친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또 다른 여성은 친구에게 “아빠가 그만 돼지라고 놀렸으면 좋겠다. 자기 뱃살은 생각도 안 하고…”라며 서운한 감정을 표출했다.
‘언제 아빠가 미워 보이냐’는 질문은 여섯 개의 질문 중 가장 응답률이 저조했다. 총 293명이 응답했고, 선택지 밖에 스티커를 붙인 ‘기권표’도 57표나 됐다. 질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던 응답자들은 “아빠가 별로 미워 보일 때가 없다”며 곤란한 표정을 보였다. 개중에는 “보기에 주어진 행동을 아빠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만점 아빠’를 둔 응답자도 있었고, “그냥 좋지도 싫지도 않다”며 아빠와 관계가 시큰둥한 딸들도 있었다. 선택지에 원하는 답이 없다며 “엄마 속 썩일 때”가 밉다는 응답을 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이외에 “술 담배 할 때”, “술 먹고 늦게 와서 깨울 때”라는 새로운 보기를 주기도 했다.
반면 ‘아빠가 가장 좋을 때’에 대한 질문에서는 속 깊은 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날 위해 힘들게 일하고 있다고 느낄 때’라는 보기가 115표(35.3%)로 가장 많았다. ‘늦은 밤 데리러 나올 때’가 80표(24.5%)로 뒤를 이었다. 자신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때 딸들은 아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느끼고 있었다. ‘용돈 줄 때’라는 응답은 38표(14%)에 그쳤고, ‘엄마랑 싸우는데 내 편 들 때’가 마지막 순위였다(10.7%). 한 여성은 “엄마랑 싸우면 절대 내 편을 들지 않는다. 서운할 때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아빠가 잘 하는 일 같다”고 답했다.
‘아빠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선 ‘나는 항상 네 편이다’라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총 162표를 얻어 절반이 넘는 딸이 선호하는 말로 드러났다. ‘잘 커줘서 고맙다’는 답이 35.3%(79표)로 뒤를 이었고, ‘사랑한다’가 3위를 차지했다. 기자가 “아빠와 자주 대화하느냐”고 묻자 한 20대 후반의 여성은 “서로 바빠서 짧고 얕은 얘기밖에 하지 못한다”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또 다른 여성은 “아빠가 지방에 있어 전화통화를 자주한다. 나라도 살가운 말을 해보려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