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믹연기가 돋보이는 배우 박상면은 요즘 대학로에서 연극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에 출연하고 있다. 우태윤 기자 | ||
그가 이런 사람인 줄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전에 촬영장에서 몇 차례 만났던 박상면은 너무나 소탈하고 격의 없는 사람이었다. 스쳐 지나가면 그가 연예인인지도 몰라봤을 것이다. 만약 정면으로 마주한다고 해도 거리낌 없는 박상면의 말 한 마디는 한순간에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위력을 발휘한다. 가까이 앉은 기자 앞에서 그는 기대대로 ‘평소 모습 그대로인’ 털털하고 편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신의 이미지를 ‘동네 오빠’라는 단 한마디로 표현하는 그는 앞으로도 ‘동네 아저씨’, 그리고 ‘동네 할아버지’로 오랫동안 편하고 친근감 있는 연기자로 팬들에게 남을 것이다.
“수녀님, 이 무인도에 수녀님과 저 단 둘밖에 없는데 뭐 어떻습니까. 어차피 죽을 건데 그냥 한번 하시죠.”
그의 감정과 표정연기, 그리고 애드리브까지 더해진 이 대사를 단 한 줄의 문장만으로 표현하기엔 모자람이 너무 크다. 글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코믹함과 생생함이 무대 위에 선 박상면에게서 손에 잡힐 듯 느껴진다.
박상면은 요즘 대학로 무대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코미디극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에서 병사역을 맡아 열연중인 것. “어차피 땀 때문에 다 지워진다”며 분장도 하지 않은 채 온몸을 던져 연기하고 있는 박상면은 퍽 행복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은 ‘병사와 수녀’를 영화감독 김상진이 ‘2006 New Version’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어느날 갑자기 무인도에 떨어진 병사와 수녀 사이에 벌어지는 해프닝이 주된 스토리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욕’을 둘러싼 남녀 간의 갈등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김상진 감독은 영화‘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 특사’ ‘귀신이 산다’ 등 코미디 장르에서 두각을 보여 온 스타 감독. 박상면은 김상진 감독과 이전부터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번 작품에서 연출자와 배우로 만날 수 있기까지엔 박상면의 남다른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김상진 감독님과는 ‘투캅스3’라는 작품을 할 때 처음 만나서 알게 됐어요. 이후에 감독님도 하는 영화마다 승승장구하시고, 저는 저대로 열심히 연기해 왔죠. 간혹 전화통화하며 지내다가 근래 한 2년 동안 자주 만나서 급격히 친해졌어요. 우리끼리 흔히 말하는 ‘베스트프렌드’라고 불러요. 영화 쪽에 제작자나 감독님들하고 이렇게 몇 명 같이 어울리는 멤버들이 있어요. 늘 김상진 감독님하고 ‘기회 되면 한번 뭉쳐보자’고 그래오다가 이번에 기회가 온 거죠. 근데 제가 거의 억지로 매달렸어요, 진짜 한번만 부탁한다고.(웃음) 제가 이거 같이 하려고 호치민까지 쫓아갔잖아요. 골프 치러 간 사람한테 무조건 하자고 우겼죠. 하하.”
뭔가 될 거라는 필이 왔던 걸까.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은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다. 기자가 공연장을 찾았던 일요일에도 평일 못지 않은 인파가 객석을 메우고 있었다. 마침 이날엔 박상면과 평소 친하게 지내고 있는 유재석과 노홍철도 공연장을 찾아 분위기를 돋웠다. 박상면도 “아는 동생들이라 오늘 또 응원한다고 와줬다”며 한마디 거든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박상면은 애초 배우가 아닌 개그맨 시험에 도전했었다. 서울예대 연극과 87학번인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웃기는 데엔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고 한다. 서울예대 재학시절에 그는 표인봉 백재현 이휘재 신동엽 김한석 등의 스타를 배출한 동아리 ‘개그클럽’에서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사실은 개그맨 시험을 두 번이나 봤다가 떨어졌어요. 꼭 개그맨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끼를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탤런트 시험도 여러 번 봤는데 떨어지고. 아참, 대학가요제에도 나갔었어요. 어릴 때 한동안은 대학가요제에 나가 상을 받는 꿈을 꾼 적도 있었는데 아쉽게 3차에서 탈락했죠(웃음).”
개그와 연기와 노래를 모두 좋아했던 그가 첫발을 내딛은 곳은 바로 연극무대였다. 90년 극장 ‘광장’을 통해 연극배우를 시작하게 된 그는 ‘아가씨와 건달들’ ‘레미제라블’ ‘귀족놀이’ 등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져갔다. 하지만 대학로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배고픈 연극배우 시절 포스터 붙이는 일에 신물이 나자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취직하게 된 것. 하지만 2년 동안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동안 늘어난 것은 카드빚뿐이었다고 한다. 동료들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퍼부은’ 결과였다.
▲ 영화 <넘버3>의 ‘재떨이’(오른쪽)로 유명해졌다.시트콤 <세친구>의 정웅인 윤다훈 박상면. <안녕하십니까! 수녀님?>의 한 장면.(위에서부터) | ||
‘반칙왕’ ‘달마야 놀자’ ‘조폭마누라’ 등에서 연이은 성공을 거두며 영화에만 주로 출연해오던 그는 간간이 드라마와 시트콤에도 발을 들였다. 특히 윤다훈 정웅인과 트리오로 함께 출연했던 시트콤 ‘세친구’2000)는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세 사람은 당시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절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알고 보니 윤다훈은 박상면이 결혼에 골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라고. 박상면이 친형의 결혼식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여인에게 반했을 때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바로 윤다훈이었다. 박상면은 “서로 바빠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꼭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연예계 마당발’인 박상면의 주위엔 언제나 사람이 많다. 영화배우, 개그맨들은 물론 운동을 좋아하는 그는 장재근 전 육상대표팀 감독과 농구코치 강동희, 야구코치 이강철 등과도 친분을 맺고 있다. 촬영장에서도 고참급인 그는 언제나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자처한다.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다 싶으면 대사를 슬쩍 바꾸어 일부러 NG를 내거나, 대본 연습할 때 누군가가 참석하지 못하면 그가 나서서 그 배역의 대사를 대신 읽기도 한다. 그의 지론은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야 시청률 대박이 터진다”는 것.
“천성이 떠드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어디 가면 제 주위에 항상 사람들이 몰려있죠. (이)훈이가 저랑 성격이 비슷해요. 애드리브도 딴 거 없어요. 평소에 많이 생각하고 그런 건 있지만 그때 순간적으로 생각나야 하는 거죠(웃음).”
대화 도중 그에게 외모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 “보기 좋은 주름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배우로서 그런 편한 이미지는 장점일 수 있는데 자신의 외모가 어떤 것 같나.”
역시 그의 대답은 ‘진지’보단 ‘코믹’쪽에 가까웠다. “상당히 고차원적인 질문을 하시네, 하하. 제 얼굴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때 왜 나는 이렇게 뚱뚱할까 하고 생각했던 적은 있어요. 하지만 불만을 가진 적은 없어요.”
자신의 연기력에 대해 (이것도 후하다며) 80점의 점수를 준 박상면은 장담하건대 이제부터 물이 오를 것이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자신이 “40대가 내 인생의 황금기다”라고 단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얘기하는 ‘연기의 맛’은 또 이랬다.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떨려요. 긴장돼서 화장실 가고 싶고 그래요. 그래서 그 맛에 하는가 봐요.”
[프로필]
1968년 1월27일 출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1980년 극단 <광장>으로 연극배우 시작.
드라마 <그 여자네 집> <왕초> <별을 쏘다> <꽃보다 아름다워> <그린로즈> <서울1945> 시트콤 <세친구>
영화 <넘버3> <투캅스3> <신장개업> <반칙왕> <달마야 놀자> <조폭 마누라> 외 다수.
조성아 기자 zzang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