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선거운동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는 과거 선거 때와 다른 몇 가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여론조사기관, 조사시점 등에 따라 편차가 심하다는 것과 대선 막판으로 갈수록 무응답층이 더 늘고 있다는 점.
조사전문가들조차 일정한 여론추이를 읽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양자구도가 유권자들에게 익숙지 않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 또 부동층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30%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이들의 지지성향에 따라 조사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이들 중에는 하루, 이틀 만에 지지후보를 바꾸는 유권자들도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결국 이번 대선은 오차범위 내에서 승패가 갈릴 것이라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유권자 2~3%가 청와대의 ‘주인’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초박빙 상황에서 대세를 가를 최후의 변수는 과연 무엇일까.
▲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지난 11월27일 종묘공원 에서 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채 연단으로 오르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번 선거의 특징은 보혁구도라는 점과 함께 세대간 대결이라는 점이다. 20∼30대가 노무현 후보를, 50대 이상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결과적으로 40대의 표심이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40대의 특징은 부동층이 많다는 점이다. 안정과 개혁 양면을 동시에 추구하는 세대적 특징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45세를 전후해 전반부는 노 후보를, 후반부는 이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20대가 중요한 것은 바로 투표율 때문이다. 이 세대는 노 후보 지지층이 상당히 많다. 따라서 이들의 투표율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지난 97년 대선 당시 20대의 투표율은 전체 투표율 80.7%를 크게 밑도는 68.2%에 불과했다. 16대 총선 때는 37.1%, 2002년 지방선거 당시는 31.2%라는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다.
물론 이번 대선에서는 이들의 투표율이 높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례로 서울대, 연대, 대구대 등 대학캠퍼스에 부재자투표소가 설치되는가 하면 대학별로 투표참가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후보 진영은 20대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 정몽준•이인제 변수
단일화의 패자였던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을 맡은 이인제 의원의 행보가 막판 대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가 노 후보를 적극 지지하며 유세를 도울 경우 노 후보는 부동층의 상당수를 흡수,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반대로 충청권 표심에 여전히 호소력이 있는 김종필 총재와 이인제 의원이 이 후보를 지지할 경우 이 후보가 유리해진다. 일단 상황은 노 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선거공조를 뜸들여왔던 정 대표는 지난 7일 “5년 동안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노무현 후보와 정치를 하겠다”며 “정책조율이 거의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나라당과 대선협력을 모색해오던 자민련이 돌연 이 후보를 비난하고 나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실 노 후보를 원색적으로 공격한 이인제 의원이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을 맡으면서 한나라당-자민련 공조설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자민련이 한나라당과의 협력에서 발을 빼고 대선중립 쪽으로 기수를 갑자기 돌린 것. 더군다나 같은 날 정몽준 대표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도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데 도와줄 것으로 믿는다”면서 “곧 만나겠다”고까지 말했다. 이들의 움직임을 끝까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 지난 6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부산 자갈치 시 장 유세 도중 청중 한 명이 노 후보를 지지하는 문구를 꺼내들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번 선거의 또 다른 특징은 지역간 대립이 역대 선거에 비해 다소 완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선거 막판에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 부산의 경우 이 후보가 60%, 노 후보가 30% 전후의 지지도를 각각 확보하고 있다.
과거 한나라당의 안방처럼 여겨졌던 부산에서 나타나는 이 같은 현상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충청지역은 현재 노 후보가 이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가 단일화 효과를 가장 많이 본 지역이 바로 충청권이다.
하지만 실제 투표결과는 이 후보가 앞설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충남 예산에 선산을 두고 있는 이 후보를 비롯해 서청원 대표, 김용환, 강창희 의원 등 한나라당 실세들이 모두 이 지역 사람들이다. 충청권에 일정 지지표를 가지고 있는 박근혜 의원도 무시할 수 없다.
■부동표 좌우하는 미디어정치
16대 대선은 이른바 ‘미디어 선거전’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군중 유세와 같은 20세기형 선거운동이 사라지고 TV,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매체를 통한 미디어 선거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TV토론과 광고홍보, 찬조연설 등이 중요한 선거운동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미디어선거전은 정치무관심층인 부동층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감성정치에 호소하는 선거전략이 대세를 가를 것이라는 판단이 이 때문에 나온다. TV광고의 경우 이회창 후보는 ‘안전한 버스운전사와 비행기조종사론’을, 노무현 후보는 ‘눈물 흘리는 노무현과 서민대표론’을 각각 홍보의 주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조직’이 강한 이 후보와 ‘바람’에 호소하는 노 후보. 감성정치 시대에 조직과 바람 어느 쪽이 유리한지 귀추가 주목된다.
■반미현상
대선을 앞두고 점증되고 있는 반미 현상도 대선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국 병사 무죄평결로 일기 시작한 반미 기류. 선거 초반 이회창-노무현 후보진영은 이 사안에 대해 중요한 대선 변수로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대규모 촛불시위와 백악관 앞 단식농성 등 국내외에서 항의집회가 잇따르자 이 문제는 정치권에 쟁점사안으로 떠올랐다. 이회창-노무현 두 후보는 즉각 대응했다. 이들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과 미국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이 문제로 득표전략에 차질을 빚지 않겠다는 발빠른 계산이다.
이 후보는 사망 여학생의 유족들을 만나 위로까지 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반미 기류는 특정 후보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중요시해온 한나라당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 군소후보 득표율
이른바 군소후보들의 득표율도 양자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나로국민연합 이한동 후보와 무소속 장세동 후보는 보수 우익 성향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진보개혁 성향이다. 결국 이•장 두 후보는 한나라당 지지표를, 권 후보는 민주당 지지표를 잠식하게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대선후보 TV토론 이후 권 후보의 지지세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이•장 후보도 전국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어 이회창-노무현 두 진영을 바짝 긴장케 하고 있다.
■기타 변수들
마지막으로 여론조사에 반영되지 않은 잠재적 지지자의 표심이 또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공식선거기간 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7일 현재까지 조사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볼 때 노 후보가 이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사 결과가 꼭 투표 결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숨어 있는 지지자들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빙싸움을 보이고 있는 대선의 결과에 대해 단순한 예측은 의미가 없는 셈이다.
한편 원로정치인들의 특정 후보 지지도 또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서 노 후보측도 고건, 조순, 이수성 전 총리를 영입키로 하는 등 막판 지지층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