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대출갤러리’에는 소액의 돈을 걸고 엽기적 행동들은 시키고 거기에 응해 인증샷까지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작은 사진들은 해당 커뮤니티 캡처.
“올해 나이가 마흔셋입니다. 결혼도 못하고 부모님과 월세에 살고 있습니다. 월세조차 밀려 조만간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막노동이라도 하고 싶지만 말초척추관절염 때문에 그마저도 불가능합니다.”
앵벌이들의 쪽지에 담겼을 법한 내용이다. 그런데 한 파워블로거는 얼마 전 이런 내용이 담긴 쪽지를 온라인을 통해 받았다. 쪽지를 보낸 이는 사연과 함께 계좌번호를 남기며 “1만 원이라도, 2000원이라도 부탁합니다”고 덧붙였다. 이 블로거는 “처음에는 딱한 사연에 돈을 보내줄까 고심했지만, ‘집에서 쫓겨나게 생긴 판에 인터넷 요금 낼 돈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무엇보다 이런 방식으로 구걸을 할 생각을 한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온라인 구걸이 다양한 방법으로 유행하고 있다. 온라인 기사 댓글에 다짜고짜 계좌번호를 적어 두고, “한푼만 도와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이들이 많다. 쪽지로 자신의 사연을 보내 구걸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구걸을 하진 않더라도 게시판에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올리는 방식도 있다. 오프라인 속 구걸 방식이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온 셈이다.
구걸을 하는 ‘구걸러’와 돈을 주는 ‘구제러(돈을 줘 구제하는 사람)’가 모인 커뮤니티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대출갤러리(게시판)다. 대출에 대한 정보와 대출 상환 팁을 나누는 공간인 ‘대출갤’은 언젠가부터 쉽게 돈을 끌어다 쓰는 법을 공유하거나, 구걸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 돼 버렸다.
대출갤에는 돈만 준다면 못할 게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이용해 소액의 돈을 주며 엽기적인 행동을 시키는 ‘구제러’의 행태도 문제다. 자신의 통장 잔고를 인증하며 구제 금액을 제시한다. 간혹 수억 원의 통장 잔고와 슈퍼카,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등을 인증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글에는 구걸하는 이들이 댓글을 수십 개씩 남긴다. 문제는 이곳에서 공유되는 정보와 구걸 방법이 탈선을 부추기거나 심각한 범죄로 연결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이용자가 ‘손목론’을 제안해 게시판이 들끓기도 했다. 손목을 칼로 그으면 돈을 주겠다는 글이 올라왔고, 한 구걸러가 실제로 손목에 상처를 내 돈을 받았다는 사연이다. 이밖에 간단하게 퀴즈를 올려 먼저 맞히는 사람에게 돈을 주기도 하고, 변기 물에 머리 감기, 성기에 치약 바르기, 여자친구 신체 부위 찍어 올리기 등의 미션을 제시하기도 한다. 인증샷은 닉네임을 적은 쪽지를 손에 들고 찍는다. 실제 5000원을 받겠다고 변기에 머리를 담그는 사진을 올린 구걸러도 있었다.
<일요신문>은 대출갤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정말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 구제를 해주겠다는 글을 올려봤다. 자신이 얼마나 생활하기 어려운지 상세하게 적어 이메일로 보내주면 선착순 3명에게 1만~3만 원을 주겠다고 적었다.
글을 올리자 1분도 안 돼 바로 이메일이 왔다. 발신인은 “토토 경력은 5년째 돼 간다. 처음엔 용돈벌이 겸 했지만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다 토토로 탕진해버렸다”며 “부모님이 내 월급만 기다린다. 다음달부터 토토 안 하고 열심히 살겠다”며 공손한 말투로 이메일을 보내왔다. 사실 확인을 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질문을 하자 답은 오지 않았다. 이후 수차례 구제해주겠다는 글을 올렸지만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공개한 사람은 없었다.
‘인생 막장’이 모이다보니, 사기 수법 공유로 대화 주제가 이어지기도 한다. 대출갤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기 수법이 횡행해 얼마 전 금융사기 피해 예방 앱 ‘경찰청 사이버캅’에는 주의를 당부하는 글이 올라왔다. ‘중고나라론’이라고 불리는 수법으로, 국내 최대 규모 중고 물품 거래 카페 중고나라를 이용해 도박자금을 만드는 방법이다. 수법은 이렇다.
노트북, 휴대폰 등의 고가 제품을 허위매물로 올리고, 거래 제의가 들어오면 무조건 선입금 거래를 한다. 받은 돈을 종잣돈으로 스포츠 토토나 온라인 도박을 한다. 돈을 불리면 차액을 벌고 잃으면 사기범이 된다. 아무 생각 없이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는 방법을 공유하는 셈이다.
엄연한 범죄지만 대출갤에는 위험천만한 후기를 수십 건 찾아볼 수 있다. 한 이용자는 “중고나라론 성공해 상대방 입금 해주고도 120만 원 남았다”며 “내 이름으로 삼행시 잘 쓴 사람한테 15만 원을 주겠다”고 썼다. 또 다른 이용자는 “실패해서 가진 돈 다 잃고 다시 빚을 졌다. 한강 가야 하나, 자수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는 실패담을 올리기도 했다.
중고나라론 외에도 ‘편의점론’, ‘고소론’ 등 기상천외한 방법도 공유되고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금고에 있는 돈을 일단 빼서 도박 자금으로 쓰고, 돈을 잃으면 ‘계산이 잘 안 맞았다’며 추후에 채워 넣는 방식이다. 한 이용자는 ‘편의점론 후기’라는 제목으로 “편의점 돈 39만 원으로 온라인 도박을 했다. 결국 돈을 잃었고, 합의금 두 배로 주고 알바비도 요구할 수 없었다”고 경험담을 올렸다. 고소론은 온라인에서 상대방의 욕설을 끌어내 고소를 한 다음 합의금을 얻어내는 방식이다. 대출갤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방식이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론’을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문의가 꾸준히 올라온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다양한 사기 수법이 온라인상에서 공유되고 있지만, 모두 모니터링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사기수법 공유, 돈을 주겠다며 자해를 종용하는 글들은 범죄로 연결될 소지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경찰은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사이트와 공조해 글을 삭제하는 식으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