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1인시위에 참여하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 와있는 안성기를 만났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대책위) 공동위원장. 이것에 요즘 안성기의 직함이다. 제일 먼저 ‘1인시위’에 나섰고 지난 8일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한 영화인대회’(영화인대회)에선 무대 위에 올라 힘차게 구호를 선창하며 영화인의 투쟁을 이끌었다.
“배우로 남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질 않는다”는 안성기는 이렇게 앞장서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이끌고 있다. 계속되는 ‘1인시위’와 ‘영화인대회’ 현장을 취재하며 기자는 틈틈이 안성기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흔히 인터뷰가 이뤄지는 카페나 스튜디오가 아닌 시민들과 부대끼는 시위현장에서 나눈 며칠간의 길거리 인터뷰를 모아 지면에 소개한다.
─가장 먼저, 그것도 가장 추운 날 ‘1인시위’에 나섰는데 어떤 의미인가.
▲지난 2004년 7월 ‘영화진흥법 개정 촉구 및 한미투자협정 저지를 위한 대국민 보고대회’ 당시 내가 처음으로 1인시위를 제안했다. 1년 동안 장기적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365명의 영화인이 시민을 직접 만나 스크린쿼터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런 내 제안이 이번 정부의 기습 발표로 현실화됐다. 시민들에게 스크린쿼터의 중요성을 직접 알릴 방법을 논의하던 2월3일 ‘1인시위’가 결정돼 바로 다음날 내가 먼저 나섰다.
─‘1인시위’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지.
▲8일 가진 ‘영화인 대회’와 같이 대규모 장외 집회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그런데 대규모 장외 집회는 교통 체증 유발 등 시민 불편을 초래하고 자칫 영화인의 모습이 과격하게 보일 수 있다. 반면 1인시위는 다르다. 영화인이 시민을 직접 만나 함께 호흡하며 대화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스크린쿼터의 중요성을 알리면 작지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거라 생각한다.
─시민들 반응은 어땠는지.
▲시민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함께 찍으며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좋았고 그때 받은 따스한 기운을 잊을 수 없다. 시민들이 권하는 따뜻한 음료수의 고마움이 마음을 뜨겁게 했다. 우리 영화인이 외롭지 않구나 하는 생각, 시민들이 얼마나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본인의 1인시위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1인시위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다.
▲후배들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나와 고생하고 있어 가능하면 현장에서 나와 격려해주려 한다. 추운 날씨가 걱정돼 후배들에게 장갑이라도 끼라고 얘기하는데 다들 괜찮다며 맨손으로 거리에 나선다. 스크린쿼터를 사수하려는 열정, 영화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너무 고맙다.
─영화 촬영 때문에 최민식의 1인시위 현장에 나오지 못했다고 들었다. 영화 촬영에 대책위 공동위원장까지 병행하는 게 어렵지 않나.
▲그날은 진해에서 영화 <한반도>의 촬영이 있어 와보지 못했다. 혼자서 잘 할 수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민식이의 말에 믿음이 갔다. 다행히 영화 <한반도>의 촬영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4~5회 분량이 남았는데 일정이 띄엄띄엄 잡혀 문제되지 않을 것 같다. 영화배우로서 촬영 현장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크린쿼터 사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해당된다.
─영화인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특히 1인시위가 외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 지난 17일 오후 6시 광화문에 영화인과 농민들이 모여 ‘FTA 반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연대 집회를 가졌다. 정진영(맨 왼쪽) 안성기(가운데) 최민식(오른쪽 끝) 등 영화인들도 연단에 올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모든 영화인, 특히 동료 배우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부의 축소 방침을 저지해낸 98~99년 스크린쿼터 투쟁 당시보다 후배들의 열기가 더욱 뜨겁다. 대규모 장외 집회에 참여한 배우들의 수도 이번이 훨씬 많았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1인시위에 나서고 있다. 얼마 전에는 (문)근영이도 1인시위에 나서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하지만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근영이를 거리에 내세우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해 말리고 있다. 영화배우들은 이런 시위 경험이 거의 없어 매우 낯설어하는 편이다. 하지만 스크린쿼터의 중요성을 모두가 실감하고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번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통해 평소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투사적인 이미지로 변하는 것 같아 부담도 클 것 같다.
▲당연히 부담스럽다. 배우로 남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질 않는다. 지금의 투사적인 모습이 스스로 어색하기도 하지만 본래의 부드러운 이미지는 비슷한 것 같다. 소란스러운 것보다는 조용하면서도 그 느낌이 약하지 않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작지만 큰 울림을 전달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안성기라면 신호 위반도 한번 안하고 길거리에 쓰레기도 절대 안 버릴 것’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이미지가 부담스러울 때로 있을 것 같다. 국민배우라는 타이틀도 그렇고.
▲평소 성격이랄까, 인생관이 조금 지루한 편이다. 배우인 까닭에 작품을 통해 ‘파격’을 시도할 수 있는 만큼 일상은 착실하고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 물론 주변 환경도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평소 만나는 사람도 그렇고 내 위치도 위치인지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발표를 처음 접했을 당시 심정이 어땠는지.
▲정부에서 수순을 밟아 영화계를 안심시키면서 와해하려는 것 같다. 언론과 여론까지 정부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해가며.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이 스크린쿼터 현행 유지 방침을 밝힌바 있다. 지난해 10월 문화다양성협약이 유네스코 총회를 통과할 당시만 해도 문화산업이 통상협정의 예외 조항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문화다양성협약의 국회 비준만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정부는 이렇게 영화인을 안심시켜 놓고 기습적으로 스크린쿼터 76일 축소 방침을 발표했다. 그리곤 한미 FTA만이 한국의 살 길이라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영화인의 집단 이기주의라 몰아붙이고 있다. 한동안 정신을 잃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당할 수는 없다. 가만있으면 정부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정부는 계속해서 한미 FTA 체결이 국익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며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만약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어쩔 수 없이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했다면 이를 중요한 순간에 협상 카드로 사용했어야 한다. 진정 국가 발전을 위해 한미 FTA를 체결해야 하고 스크린쿼터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영화인이 양보할 수 있다. 그런데 한미 FTA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아직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안이 아니다. 또한 협상을 채 시작도 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핵심 사안을 전제 조전으로 그냥 내주는 정부의 협상 태도를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
─정부 입장이 굳건해 보인다. 이런 이유로 스크린쿼터 사수가 어려울 것이라 보는 시각도 많다. 대책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 방침이 확정될 경우 어떤 대안을 갖고 있나.
▲생각 안하고 있다. 지금은 오직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막는 데 온 힘을 집중하고 싶다. 그 다음의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불행히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때가서 다시 생각할 것이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