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에 출연한 루나(왼쪽)와 정은지는 각각 ‘황금락카 두 통 썼네’와 ‘어머니는 자외선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닉네임으로 활약했다.
이런 이유로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일밤> ‘복면가왕’의 제작진 사무실에는 아이돌 가수를 보유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노래 실력이 출중한 멤버를 출연시켜 가창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다.
<복면가왕>은 1, 2대 가왕을 지낸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루나를 비롯해, 비투비의 육성재, 에이핑크의 정은지 등의 가창력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루나와 정은지는 웬만한 솔로 여가수를 뛰어 넘는다는 평가를 받았고, 의외의 노래 실력을 자랑한 육성재는 “난 비투비의 서브 보컬”이라고 말해 비투비 전체의 위상을 높였다.
육성재
하지만 <복면가왕>은 복면을 쓰고 등장함으로써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오직 가창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판정단과 관객들은 엉뚱한 추리를 거듭하다가 자신들의 극찬했던 가수가 아이돌이란 사실을 알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이는 TV를 통해 추리에 동참했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대중은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스타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 의미”라며 “하지만 <복면가왕>은 그들의 틀렸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스스로 선입견을 깨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창력 뛰어난 보컬을 보유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목을 매는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이유로 아이돌들이 열심히 러브콜을 외치는 대상은 힙합 래퍼들이다. 퍼포먼스보다는 음악 자체와 래핑으로 평가받는 래퍼들은 인지도보다는 실력으로 먼저다. 외모가 뛰어나고 대중적 인기가 높아야 무대에 설 때 가운데 자리를 얻게 되는 아이돌 가수와 달리 외모가 출중하지 않아도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는다.
최근 아이돌 가수들이 래퍼를 포함해 힙합 가수들과 손잡는 빈도가 많이 늘었다. 샤이니의 종현은 솔로 앨범을 내며 자이언티, 아이언 등과 컬래버레이션 곡을 발표했고, 씨엔블루의 정용화는 양동근와 함께 ‘마일리지’를 발표했다.
지난 3월 발매됐던 JYJ 준수의 정규 3집 <플라워(FLOWER)>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인 ‘꽃’과 ‘X Song’에서는 각각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도끼가 참여했다.
걸그룹에 속한 여성 래퍼들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AOA의 지민은 Mnet <언프리티 랩스타>에 출연해 의외의 실력을 선보였고, ‘차트 역주행’으로 화제를 모은 걸그룹 EXID의 래퍼 LE 역시 선배 가수 임창정의 신곡에 참여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아이돌 보컬과 실력파 래퍼의 결합은 하나의 흥행 코드가 됐다”며 “실력 있는 힙합 가수들과 손잡으면서 이미지를 쇄신하고 힙합팬들에게도 어필하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도전하는 가장 큰 영역은 ‘연기’다. ‘연기돌(연기+아이돌)’은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로 불릴 정도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아이돌의 경우 그들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도 해외 시장에 해당 드라마를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기 때문에 방송사나 제작사들이 선호한다. 물론 인기와 연기력은 절대 비례하지 않는다. 충분히 훈련되지 않고 지나치게 큰 배역을 맡은 아이돌 가수들은 ‘발연기’ 논란에 휩싸이며 대중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의식 있는 연기돌들은 드라마보다 영화를 선호한다. 쪽대본이 난무하고 실시간 촬영 때문에 자기 연기를 모니터할 수 없는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충분한 사전 준비 기간을 갖고 촬영하며 자기 연기를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 인물은 JYJ의 박유천과 미쓰에이의 수지다. 박유천은 영화 <해무>에서 막내 선원 역을 맡아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을 과시하며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었다. 수지 역시 <건축학개론>에서 청순한 여대생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국민 여동생’ 대열에 합류했다. 이 외에도 2PM의 준호, 엑소의 디오, B1A4의 진영 등이 각각 영화 <감시자들>과 <카트>, <수상한 그녀> 등에 출연해 크지 않은 배역이지만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주목받았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