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열린 한나라당 소속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표가 건배제의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행정도시법 갈등과 지도체제 개편, 임시전당대회 소집 등을 고리로 한 ‘반박’ 진영의 파상공세로 코너에 몰리는 듯했던 박 대표가 4·30 재보선 공간을 맞아 당내 상황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면서다.
“현재의 당을 이끌어 가는 것은 박 대표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후광”(김문수 의원)이란 ‘반박’ 진영의 조롱 섞인 비판과 여성 야당 대표가 갖는 원초적 핸디캡이라 할 수 있는 ‘유약하다’는 평가를 불식시키려는 듯 언행에서 ‘공주’라는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파격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달라진’ 박 대표의 행보는 최근 당내 인사들과의 연쇄 회동 과정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소속 의원들과의 스킨십이 부족하다” “어렵사리 만나도 뭔가 끌리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던 박 대표는 4월 들어 4·30 재보선 공식선거전 시작(17일) 이전까지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소속 광역지방자치단체장과의 만찬(8일) ▲초선(12일) 재선(13일) 3선(14일) 등 선수별 오찬 ▲당 혁신위원회 위원들과의 만찬(14일) 등의 일정을 소화해냈다.
15일에는 당 대표직을 맡은 이후 처음으로 90여 명의 소속 의원 부인들과의 상견례를 가져 자신은 미혼인 처지에 ‘내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특히 두 차례 만찬에선 “술을 잘 못한다”는 항간의 평가를 뒤엎기라도 하듯 직접 폭탄주를 제조해 돌리는가 하면, 이른바 ‘흑기사’의 도움없이 폭탄주를 직접 마셔 배석한 당내 인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동안 박 대표는 당내외 인사들을 만날 때 술을 대신 마셔주고 술자리 분위기를 돕는 ‘흑기사’들의 도움을 받아왔다. 박 대표 본인은 “예전에 폭탄주를 한 잔 마셔봤는데 힘들더라. 안되겠더라”고 ‘과거’를 털어놓은 바 있고, 지난해 10월 하순 출입기자들과의 만찬에선 “친한 사람 만나면 폭탄주 4~5잔을 마신다는 얘기가 있다”는 물음에 “들리는 얘기 다 믿지 마라. 4~5잔을 만들어줬다는 얘기겠지”라고 밝힌 바 있다. 측근인사들은 “박 대표는 폭탄주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은 백세주 등도 입만 적시는 정도일 뿐 잔을 돌리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그런 박 대표가 대권가도의 라이벌인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박근혜 흔들기’의 원천이란 평가를 받았던 홍준표 당 혁신위원장 등 껄끄러운 사이일 수밖에 없는 인사들과의 만찬에서 폭탄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 당 안팎에선 배경을 놓고 설왕설래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한 핵심 당직자는 “박 대표가 수투위와 혁신위, 수요모임 등 ‘반박’ 진영의 집중공세로 3월 한달 내내 어려운 상황을 겪으면서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단단히 느낀 것 같다”며 “이달 들어 박 대표가 보여준 리더십의 변화는 첫째, 자신을 흔드는 ‘반박’ 진영의 공세에 맞서 정면돌파하겠다는 것, 둘째, 당내에 자신에게 우호적이지만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이른바 ‘친박’ 그룹과의 결속력을 높이겠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의 변신은 지금까지는 비교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지도체제 개편, 임시 전대 요구에 박 대표가 일찌감치 “내 사전에 재신임은 없다. 전대가 열리면 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마지노선을 긋자 당황한 수투위와 혁신위, 수요모임 등 ‘반박 삼각편대’가 일제히 “박 대표를 흔들려는 것은 아니며 지금으로선 박 대표 이외의 대안은 없다”며 사태 진화에 나선 것이 단적인 예다.
‘계엄 사령관’을 자임하며 박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던 홍준표 혁신위원장이 14일 만찬 직후 “박 대표는 가식이 없으며 진솔한 사람이다”며 ‘이례적으로’ 칭찬하고 나선 배경도 따지고 보면 박 대표와 계속 맞섰다간 곧 자신들이 내놓을 당 혁신안이 ‘비토’(veto)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적지않다.
이와 관련, 당내에서는 반박 진영이 요구해 온 지도체제 개편, 임시 전대 개최는 사실상 물건너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혁신위의 한 의원은 “논리와 명분상으론 당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당헌·당규가 마련되면 이를 승인하고 새로운 절차에 따라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대 소집이 당연하지만 박 대표의 ‘몽니’가 워낙 거세 사정이 여의치 않다”며 “지금 추세대로라면 지도체제 개편과 전대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말했다.
실제 혁신위는 21일 전체회의에서 지도체제 개편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나 현행 대표-원내대표의 ‘투톱’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친박 성향 인사들을 중심으로 제기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
4·30 재보선이 당면 현안으로 부각되면서 당내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대중적 인기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된 것도 박 대표의 당내 입지를 강화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6곳의 국회의원 재보선 지역 중 영남권 두 곳(경북 영천, 경남 김해 갑)에서 박 대표의 지원유세가 당락을 가를 핵심요소로 부각되면서 당내외적으로 ‘박근혜 효과’에 대한 기대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표 본인도 4·30 재보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적극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북 영천이 위험하다는 분석이 대두되자 “우리가 입만 가지고는 안된고 몸으로 뛰는 자세를 보여야 2007년에 수권정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하며 본인도 22~23일 1박2일 일정으로 영천에 지원유세를 펼치는 등 열세를 뒤집는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반박’ 진영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지지도가 상승세를 계속 그리고 있는 것도 박 대표의 당 운영에 대한 자신감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리서치&리서치의 4월13일자 조사에 따르면 박 대표에 직무수행에 대해 ‘잘 하고 있다’는 응답이 48.8%를 기록해 전달(3월)의 45.8% 보다 3%포인트 상승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