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시장(왼쪽)과 박근혜 대표 | ||
당내 현안에 대해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최근 인적 청산와 ‘당의 발전적 해체’, 당권·대권 분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연이어 문제제기를 하면서 박근혜 대표 등 지도부와 다시 대립각을 분명히 하면서다.
특히 4·30 재보선이 끝나고, 5월 중 당 혁신안 발표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구체화되고 있는 남원정의 ‘반박’ 행보를 놓고 특정 대권주자 진영과의 연계설이 나돌아 주목을 끌고 있다.
남원정은 우선 당 개혁을 재론하고 나선 배경을 “현재로서는 정당으로서의 존재이유, 집권가능성이 희박하다”(원희룡 의원)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원 의원은 최근 한 모임에서 “당 소속원 모두가 ‘내가 지켜야 할 보수적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기업인들조차 ‘한나라당은 변화를 거부하고, 집권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한나라당에 기대하느니, 차라리 열린우리당을 학습시켜 같이 가는 게 낫다’고 말한다”고 말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지금의 인적구성과 운영구조, 정강·정책을 갖고서는 ‘불임정당’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로 사실상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라 하겠다.
남경필 의원은 당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관련해 박 대표를 보다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나섰다. 남 의원은 당내에 ‘2007년 대선 무망론’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것과 관련, “박 대표뿐만 아니라 현재 한나라당 내에서 짭짤하게 재미를 보고 있는 기득권층이 현재 구도를 깨고 싶어하지 않고 있는 반면 자기 모든 것을 걸고 새로운 틀을 만들려고 하는 세력은 부족한 점이 많아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남 의원은 특히 당내에서 이른바 ‘보수꼴통’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는 정형근 김용갑 의원의 ‘용퇴’를 촉구하고 나서 당 혁신의 한 축으로 인적 청산 문제를 제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분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역할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국민은 새로운 보수세력의 탄생을 바란다. 집권을 위해 걸림돌이 뭔가를 성찰할 수 있다면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병국 의원도 당 지도부가 추진중인 ‘책임당원제’ 도입에 대해 박 대표측과 날카롭게 맞서며 ‘반박’ 행보에 나섰다.
▲ 남경필 의원(왼쪽) 원희룡 의원(중앙) 정병국 의원 | ||
정 의원은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노동당보다 진성당원 모집이 어려운 한나라당에서, 책임당원을 모집하게 되면 당비 대납이나 ‘동원 당원’으로 넘쳐나 구태정치를 재현하게 될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이 예견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똑같은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동안의 패배주의, ‘타당 개혁추수주의’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당내에서는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박 대표에 이어 당당히 2위를 차지하며 최고위원에 당선된 원 의원과 올해 3월 중순까지만 해도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았던 남 의원, 당내 대표적인 소장파 조직인 ‘수요모임’ 회장인 정 의원이 ‘입을 맞춘 듯’ 당의 ‘존재 이유’까지 거론하며 지도부 당내 보수세력과 대립각을 형성하고 나서자 “당내 권력투쟁이 본격화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영남권의 한 3선 중진은 “남원정의 최근 당내 행보는 2001년 말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그룹이 당시 민주당 내에서 벌인 ‘정풍운동’을 연상케 한다. 당시 천신정이 당을 좌지우지하던 권노갑 최고위원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당내 중추세력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남원정도 ‘당권·대권 분리’를 내세워 박 대표를 2선으로 물러나게 해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당 운영구조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중진은 또 “눈여겨 볼 대목은 천신정이 타깃으로 삼았던 권 위원이 정풍운동을 계기로 몰락하면서 당시 가장 유력한 당내 대권후보였던 이인제 의원도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으며, 대신 노무현 대통령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 한나라당에 당시 상황을 적용시켜 보면 대권경쟁에서 가장 앞서 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박 대표가 왜 남원정의 행보를 ‘박근혜 흔들기’로 받아들이는지 이유가 명확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박 대표 주변에서는 남원정 그룹의 ‘반박’ 색채를 강화하고 나선 배경을 이명박 서울시장과의 ‘교감’에서 찾는 시각이 적지않다. 남원정이 ‘당의 영남화’에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데다, 모두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어 행정도시 문제로 박 대표와 맞서 있는 이 시장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지점이 넓다는 점에서다.
박 대표측은 특히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에 이 시장의 최측근 인사로 통하는 정두언 의원이 4월 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한나라당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기득권에 절어있기 때문이다. 공멸은 해도 기득권은 못 버린다는 식”이라고 비판한 것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있다. 남원정이 ‘기득권 안주 세력 축출’을 주장하고 나선 것에 대해 이 시장 진영에서 적극 호응하고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실제 남원정이 중추를 이루고 있는 수요모임 내에서는 최근 들어 박 대표 대신 이 시장을 차기 대권후보로 선호하는 기류가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의원은 “이 시장의 정치력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비전과 통찰력에서는 박 대표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가 많다”며 “특히 행정도시법을 놓고 당이 양분된 뒤로는 영남권 내에서도 박 대표에 대한 실망감의 반사작용으로 이 시장을 새롭게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남원정과 또다른 ‘반박’ 진영인 당 혁신위, 수투위(수도분할반대투쟁위원회)의 연대 가능성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당 혁신위의 경우 ‘반박’·‘친 이명박’ 성향의 홍준표 위원장을 중심으로 당 개혁과 관련해 남원정의 핵심 요구사항인 ▲당권·대권 분리 ▲집단지도체제 도입 ▲임시전당대회 개최 등을 수용했고, 사실상 이 시장의 당내 세력기반인 수투위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남원정 본인들도 당 혁신위와 수투위와의 제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특히 남 의원은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수투위 핵심들에 대해 “서로 순수성과 정치적 동기를 의심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세력”이라고 평가해 주목을 끈 바 있다.
남원정이 이처럼 당 개혁을 내세워 ‘반박’ 행보를 강화하고 나선 데 대한 박 대표측과 당내 보수세력들의 반응은 의외로 “그럴 줄 알았다”며 냉랭하다.
박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애시당초 애당심이라는 전혀 없이 자신들의 권력욕 실현에 혈안이 돼온 인물들이라 최근 상황이 별반 새롭다 여길 것이 없다”고 했고, 남원정으로 부터 용퇴 요구를 받은 김용갑 의원은 “남을 희생시켜 자신의 입지를 높이는 것은 정치꾼들이나 쓰는 수법이다. (남원정은) 당내 보수세력을 공격해 온 세력이며 언제 자기를 희생하는 실천적 모습을 보인 적이 있느냐”고 꼬집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