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임하룡. 이제는 그를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던 ‘젊은 오빠’로 기억하지 말자. 그는 관객을 울릴 준비가 된 ‘프로 배우’이므로.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임하룡을 만난 지난 6월 6일, 그는 하루 종일 영화 녹음 작업으로 정신이 없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녹음실에서 나온 임하룡은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웃는 낯으로 기자를 맞이해 주었다.
“어젯밤 잠이 안 와서 꼬박 밤을 새웠다”는 말에 제대로 대화가 진행될까 걱정스러웠지만 임하룡은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답해 주었다. 어린 시절 그의 ‘다이아몬드 스텝’을 즐겨보던 기자는 그의 손에 들려진 ‘레이밴’ 스타일의 선글라스가 임하룡과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수리 종합촬영소 안에 위치한 녹음실 안에서 임하룡과 나눈 영화 그리고 인생 이야기.
“요즘 많이 바쁘시죠?”
기자의 첫 마디에 임하룡은 “사실 바쁜 시기는 이제 다 지나갔다”며 말문을 연다. 임하룡은 5월엔 <맨발의 기봉이> 홍보로 바빴고 6월 중순부터는 <원탁의 천사> 홍보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7월부터는 드라마 출연이 예정돼 있다고 한다. 이 정도 스케줄이면 웬만한 배우 못지않음에도 ‘일을 즐기는’ 임하룡은 줄줄이 이어진 일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한다.
아무래도 요즘 그의 활약을 보면 영화 얘기부터 꺼내야 할 듯싶었다. 임하룡이 근래 출연했던 <맨발의 기봉이>뿐 아니라 <웰컴 투 동막골> <아는 여자> <범죄의 재구성> <아라한 장풍대작전> <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 출연작들마다 흥행을 거듭했던 터다.
“다작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 쉬엄쉬엄 해왔어요(웃음). 시간 날 때마다 고민하고 신중하게 작품을 정하는 편이에요. 워낙 짧게짧게 등장한 영화가 많아서 그렇지 사실 다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웃음)”
▲ 인민군 하사관으로 출연했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위)과 백 이장으로 분했던 <맨발의 기봉이>. | ||
“영화 쪽 일을 하면서 초반엔 어려움도 많았어요. 제의가 들어와도 성에 안 차서 힘들었죠. 그런데 별 도리가 없으니까 그냥 참는 수밖에는 없죠.(웃음) 이 시기가 지나면 또 좋은 때가 올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간혹은 하고 싶어도 그 역을 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좋은 기회도 와요. <웰컴 투 동막골>도 사실은 장진 감독이 다른 배역을 제의했었는데 제가 장영희 역을 하고 싶어서 그거 하겠다고 했어요. 그 작품이 오래도 찍었고 흥행도 하고 제가 상도 받고 해서 가장 기억에 남죠.(웃음)”
<웰컴 투 동막골>은 그에게 정말 남다른 감회가 있는 작품인 것 같았다. 임하룡은 당시 받은 상금 300만 원을 불우이웃돕기 상금으로 기탁하기도 했다. 그 때의 기억을 다시금 물어보니 임하룡은 웃음을 보이며 말을 잇는다.
“사실은 내가 상을 하나 받고 싶긴 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으로 상을 하나 받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냥 장난 삼아 ‘신인상 하나 받겠지’ 그랬는데, 막상 내 이름이 불리니 기분이 참 묘하더라구요. 받을 때마다 좋은 게 상인 것 같아요.(웃음)”
코미디언으로서 코믹 연기를 하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임하룡은 이것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혀 강점일 수가 없는 게 점잖으신 분이 웃기면 더 웃기잖아요. 시트콤에서 신구, 오지명, 노주현 씨 같은 분들이 웃음을 줄 수 있는 게 바로 그 점 때문이거든요. 우리는 웃길 거라는 기대를 하고 보기 때문에 웬만하게 웃기면 웃지도 않아요.(웃음) 반대로 우리가 슬프고 애잔한 연기를 하면 더 눈물이 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최근엔 그런 진지한 연기를 해보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임하룡이 활동하던 70~80년대와 요즘과는 방송국 분위기도 많이 다를 텐데, 격세지감을 느낄 때도 많을 듯 했다. 그런데 임하룡은 전혀 세대 차이를 느끼거나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이는 두루두루 여러 사람들과도 어울릴 수 있는 그의 친화력 때문 아닐까. 임하룡은 “지방 촬영가서 짬이 나면 다른 애들은 PC방 가는데 난 당구장 가는 정도랄까”라며 웃음을 보였다. 임하룡은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도 먼저 말 걸고 장난치는 선배로 통한다. 그가 ‘은근한 마당발’로 통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내가 갑갑해서 먼저 가서 어울리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 ‘추억의 책가방’코너에서 다이아몬드 스텝을 밟는 임하룡. | ||
코미디언 임하룡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80년대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헐랭이, 쉰 옥수수, 젊은 오빠 등 유행시킨 별명도 다양했다. 특히 ‘추억의 책가방’이라는 코너에서 선보인 다이아몬드 스텝은 지금까지도 개그계의 전설이 되고 있다.
“요즘 젊은 오빠라는 별명은 아무한테나 다 붙이지만 처음 만든 사람이 나죠.(웃음) 지금도 사람들이 쓰면 참 기분 좋아요. 속으로 ‘저 말은 내가 만든 말인데’ 그러죠.(웃음) 그 별명은 실제로는 할아버지 역을 하면서 ‘젊은 오빠라고 불러~’ 하면서 만든 거예요. 쉰 옥수수는 ‘도시의 천사들’ 하면서 만든 건데 다들 젖은 풀빵, 마른 장작, 밥풀떼기 이렇게 별명을 하나씩 만들었죠. 역할이 한 쉰 살 정도이고 옥수수가 쉬면 왠지 그 느낌이 강해서 ‘쉰 옥수수’라고 붙인 거예요.(웃음)”
그러나 전성기 이전 겪었던 고생담과 무명시절의 서러움도 있다. 정작 임하룡 본인은 고생이라고 표현하지 않지만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시절에 그는 결혼을 하고 아버님이 돌아가시는 아픔도 겪었다.
“대학 졸업하고 군대 갔다 와서 연극무대부터 시작했는데 생활이 기울어서 연극은 오래 하지 못했어요. 연극을 하다가 라디오 좀 출연하고 야간 업소 일도 많이 했죠. TV는 서른 살 되어서야 시작했어요. 무명시절이 길어서 아버지도 제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채 돌아가셨어요. 그땐 한창 젊은 나이니까 전 고생인 줄도 몰랐고 부모님이나 동생들이 고생했죠.”
임하룡은 젊은 시절 좋은 동료였던 고 김형곤 씨에 대한 기억 한 자락도 떠올렸다.
“한 20년가량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보고 지냈었죠. 그 친구는 정치 풍자 쪽에 관심이 많았고 나는 코믹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서로 관심 분야는 달랐지만 ‘코미디’라는 공통분모가 있었죠. 김형곤도 그랬고 양종철도 그랬고 참 일찍 운명을 달리해서 너무 안타깝죠.”
임하룡은 조만간 영화 <원탁의 천사>를 통해 진한 감동과 재미를 보여줄 예정이다. 극중 이민우의 아버지로 출연하는데, 아들 친구의 몸을 빌려 환생하는 연기를 선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 미니시리즈 <오버 더 레인보우>에서는 무명 가수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연기에서도, 사람관계에서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그의 인생지론이자 연기철학은 바로 이것 같았다. “한번 태어난 것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지. 꼭 내가 코미디만 하라는 법 있어요?(웃음)”
[임하룡 5문5답]
연기하고픈 여배우는? 같이 하면 고맙지 뭐
① 이럴 땐 내가 봐도 내가 어려 보인다-애들 좋아하는 의상 나도 쫓아가려고 할 때. 평소에도 옷을 애들처럼 입고 다녀.
② 이 여배우와 꼭 영화출연 해보고 싶다-요즘 후배들 다 이쁘지. 아무나 좋아.
③ 다시 태어나도 개그맨을 할까-꼭 개그맨이 아니어도 코미디 연기는 하고파.
④ 웃긴 사람이 악역 소화 가능할까-우리 주변에 웃기게 생겼는데 나쁜 사람 얼마나 많아. 내가 악역을 못할 거라는 편견을 버려.
⑤ 좌우명-내 거는 없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게 있는데 ‘자중자애’(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라). 굉장히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해서 위험한 건 절대 안 해. 앞으로 액션 연기 하게 되면 대역 시켜야지. 근데 나처럼 배 나온 대역이 있을까.
[프로필]
1952년 10월31일 출생.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KBS 코미디대상, 한국백상예술대상 코미디대상,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등 수상. <원탁의 천사> <맨발의 기봉이> <빨간 모자의 진실>(더빙) <웰컴 투 동막골> KBS <한바탕 웃음으로> <유머 1번지> SBS <기쁜 우리 토요일> <폭소 하이스쿨> MBC <오늘은 좋은 날> 등.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