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 광화문 거리집회에 참석한 영봐배우들. | ||
그런데 분위기는 다소 침울하다. 연초부터 계속된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으로 다소 지친 기색이 엿보이는가 하면 영화인들 사이에 비관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려올 정도다. 게다가 오랜 투쟁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쿼터 축소가 현실화되면서 영화인들 사이에 내분이 심각하다는 얘기까지 들려오고 있다.
지난 7월 31일 스크린쿼터사수영화인대책위(영화인대책위)는 기자회견을 갖고 후반기 투쟁 계획을 발표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현재의 투쟁 노선을 이어가돼 한미 FTA 저지의 큰 틀에서 투쟁을 연대한다는 것이다. 교보빌딩 앞에서 진행되던 1인 시위 장소를 청와대 앞으로 옮기는 등 투쟁 수위도 한층 강경해질 예정이다.
하반기 투쟁 방침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상당한 논쟁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내분으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라는 얘기도 들려왔지만 이런 논쟁 끝에 하반기 투쟁 방침이 결정된 만큼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영화인대책위 역시 “내분이라기보다는 논의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간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정부 측 중재안이 잠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기서 중재안이란 스크린쿼터를 영화인이 먼저 나서 100여일 정도로 축소하면 정부가 최선을 다해 더 이상의 축소는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당시 중재안을 받아들였다면 스크린쿼터가 74일까지 축소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영화인대책위는 스크린쿼터가 며칠이냐 하는 숫자가 사안의 본질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정부와 영화계의 중재를 맡은 이들이 명계남 문성근 이창동 등 영화계 친노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국무총리로 취임한 직후인 2004년 8월경 정부 측 인사들과 영화인들이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당시 정부가 중재안을 내놓았지만 영화인들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당시 정황에 대해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에 있었던 일로 중재안을 놓고 논의를 했다기보다는 양측의 입장을 주고받은 자리였다”고 얘기한다. 그동안 이들 세 명은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에 전혀 동참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만 이창동 감독의 경우 문화관광부 장관 재임 시절 스크린쿼터 축소의 불가피성을 얘기해 영화계의 반발을 샀을 뿐이다.
그 이후 이들 세 명은 스크린쿼터 축소투쟁에 참여하지 않았고 또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지하는 일체의 발언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명계남과 문성근이 영화계로 돌아와 연기 활동을 재개했지만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에선 늘 한 걸음 물러서 있었던 것.
▲ (왼쪽부터) 명계남, 문성근, 이창동 | ||
그러나 이 이사장의 얘기와 달리 현장에서 만난 영화인들은 이들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토로했다. 투쟁 현장에서 만난 영화인들은 그들의 98~99년 당시 활약에 대해서도 스크린쿼터 사수를 위해서가 아닌 정치 지향적인 인물들이 그들의 성향을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명계남과 문성근이 영화계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데 대해서도 “직업적인 문제를 뭐라 할 순 없지만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에는 동참하지 않길 바란다”라고 얘기할 정도다. 영화인대책위 집행부를 비롯한 영화계 주요 인사들만 이들에 대한 언급을 자재하고 있을 뿐 투쟁 현장의 목소리는 상당히 격앙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영화계 내부의 보수층 인사들은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이 들려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이들에 대해 강하게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앞장선 만큼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을 정도다. 대부분 영화계 원로들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인데 최근 그들도 투쟁 노선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영화계 어른들 가운데 보수주의 색채를 지닌 분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철회 움직임에는 동의하나 한미 FTA 저지 투쟁으로 확대되는 데 반감을 보이고 있다”는 이 이사장은 “내분이라기보다는 보수와 진보의 마찰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실제 분위기는 이보다 조금 더 심각해 보인다. 영화계 원로들로 구성된 몇몇 영화 관련 단체들이 한미 FTA 저지라는 큰 틀의 투쟁을 거부하며 단체 차원에서 이탈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행여 정부가 이런 몇몇 단체의 이탈을 스크린쿼터 축소 및 한미 FTA 체결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부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접할 수 있었다.
투쟁 현장에서 만난 한 영화인은 “한미 FTA 저지를 반미로 규정하고 이에 동참하는 것을 친북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분열 내분 이탈이 아닌 진정한 투쟁을 향해 가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이번 투쟁 과정에서 영화배우들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적극적으로 동참한 영화배우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생겼다는 것. 이런 시선에 대해 김경형 감독은 배우들의 경우 매니지먼트사라는 산업적인 구조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스케줄 조정이 어려울 뿐이고 그 부분은 서로가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영화계가 멈추지 않고 제작 활동이 계속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는 김 감독은 “촬영을 위해 현장으로 떠나는 동료들을 ‘빨리 끝내고 돌아오라’며 격려해주고 있다”고 얘기한다.
주목할 부분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톱스타로 대접받는 한 배우는 지금껏 대부분의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를 영화 촬영 때문이라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와 같은 영화에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은 대부분 투쟁에 빠짐없이 동참해왔다. 물론 이는 몇몇 배우의 개인적인 특성일 뿐 전체적인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의 구도로 설명할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모를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