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재보선 압승을 발판 삼아 독주체제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재보선 전까지만 해도 당 혁신위원회-수투위(수도분할반대투쟁위원회)-수요모임 등 ‘반(反)박’ 삼각편대로부터 파상적으로 ‘리더십 부재’ 비판에 시달리던 박 대표였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올인’하면서 경북 영천 등 국회의원 재선거를 치른 6곳에서 ‘5승’이란 전과를 거둔 후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친박·중도파 진영의 “한마디로 박 대표에 의한, 박 대표를 위한 선거였다”는 찬사는 시작에 불과했다. 대권 라이벌인 이명박 서울시장마저 “지난해 총선에서와 같이 이번 재보선에서도 박 대표의 헌신적인 노력이 한나라당의 승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박 대표 측근그룹은 우선 2004년 4·15 총선 이후와는 달리 이번엔 자신에게 유리하게 형성된 환경을 마냥 흘려보내지는 않겠으며 당을 확고히 장악하는 지렛대로 삼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미 선거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시점에 “이번 재보선은 2007년 대선의 예비선거다. 선거의 결과가 2007년 대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던 박 대표는 압승이 확정된 직후엔 “선거 결과를 놓고 자만해서도 안되고, 또 자만하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러나 스스로 결과를 왜곡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경쟁관계에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반박 진영에서 선거승리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려는데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 실제 이 시장의 핵심측근으로 꼽히는 정두언 의원은 “큰 선거를 앞두고 하늘은 저 사람들에게는(열린우리당) 이렇게 크게 반성할 기회를 주는데, 반성에 반성을 해도 시원찮을 한나라당에게는 또다시 방심할 기회를 줬다. 한나라당은 정말 집권가능성이 없다. 재보선에서 이겼다고 또 희희낙락하면…”이라고 주장했다.
또 소장파 그룹인 수요모임 회장인 정병국 의원도 “한나라당이 잘했다기보다는, 여당의 연이은 패착으로 인한 반사이익이 더 컸다. 결국 정부 여당의 오만한 행태에, 국민이 심판을 내린 것이지, 한나라당이 미래지향적이고 잘해서 표를 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가세해 박 대표측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박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반박 진영에선 내심 6곳 국회의원 재선거 지역 중 2~3곳 승리하고 특히 경북 영천에서 졌을 경우 ‘박근혜 흔들기’의 빌미로 삼는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데 선거결과가 워낙 퍼펙트한 승리로 끝나 찍소리도 못할 처지가 되자 ‘재보선 승리=독약’이란 엉뚱한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박 진영은 그러나 재보선 압승을 통해 당내에서 반박 진영의 영향력은 크게 줄 수밖에 없으며, 대권 선두주자로서의 박 대표의 입지도 확고히 구축됐다고 자신하고 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대선은 대중적 인기, 지지도가 높은 사람이 제일 유력한 후보가 되는 것 아니냐. 이번 재보선을 통해 박 대표의 대중적 파괴력은 여실히 증명됐다”고 말했다, 전여옥 대변인도 “박 대표의 지금의 상승세가 대선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확신한다”고까지 밝혔다.
▲ 지난 2일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회에서 재보선 당선자들과 함께한 박 대표. | ||
박 대표는 우선 당 반박 진영의 핵심요구사항인 ‘당권·대권 분리’에 대해 내년 6월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보장하는 전제하에서 수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당권·대권 분리는 내가 제일 먼저 말한 것이다. 현행 당헌-당규에는 대선 6개월까지인데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다”고 말한 후 “그러나 갑자기 대선 전에 후보를 내놓기보다는 당 대표로서 차기 대선에서 신뢰받을 수 있는 후보를 내놓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하는 게 도리이고 이번 재보선도 한 단계”라고 못박았다. 측근들은 이에 대해 “제1 야당 대표로서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데 대권 주자라는 이유로 ‘당권·대권 분리’를 내세워 흔들려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당 혁신위가 의결제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추진키로 한데 대해서도 박 대표는 “(시대 추세에) 거꾸로 가자는 것”이라며 수용 불가를 분명히 했다. “모든 중요한 사안을 의원총회에서 결정하고 있는데, 현 체제를 ‘9인 최고위원회’로 돌린다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친박 진영에서는 이달 중 최종안이 발표되는 당 혁신안을 놓고 반박 세력들의 공세가 집중될 경우 “전면전을 펼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엔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돼 주목을 끌고 있다. 그동안 반박측의 집중적인 ‘박근혜 불가론’에 대해 당내 화합을 이유로 참아왔지만 혁신안에 대한 결론이 내려진 후에도 공세를 계속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흐름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박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운영위원회 논의를 통해 당 혁신위가 내놓은 안 중에 당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받아들이겠지만 집단지도체제 도입 등 전열을 흐트리는 결과를 초래할 사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게 박 대표의 확고한 입장이다. 다소 후유증이 있더라도 표결을 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정면돌파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측근은 또 “반박 진영이 끝까지 혁신을 내세워 발목을 잡는다면 결별도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선 수요모임 등 소장파들이 5·6공 세력 등 이른바 ‘보수 꼴통’들에 대해 인적 청산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상생’해온 측면이 큰 만큼 반박 진영을 ‘가지치기’ 하면 대척점에 섰던 극우세력들을 정리하기 한결 수월해질 것이고, 이를 통해 박 대표가 이니셔티브를 쥐고 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신당을 만들자는 주장도 적지 않다. 지금의 상승세가 계속돼 당 내부에서 동력을 확고하게 갖추면 향후 정계개편 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얘기다”고 덧붙였다.
당 대표 차원을 넘어 대권주자로서의 행보가 뚜렷해진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우선 재보선 기간 중 부쩍 2007년 대선을 자주 언급했던 박 대표는 선거가 끝난 후 더욱 이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그는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두 번 실패했는데, 세 번째 실패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하나하나 지켜가면 이번 분위기가 2007년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명했다.
차기 대선의 핵심 현안 중 하나인 개헌 문제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대표는 “당 차원에서 논의한 바는 없고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5년 단임제는 정책의 영속성 책임성 면에서나 충분히 문제가 드러났고 국가경쟁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4년 중임제의 개헌이 필요하고 그 시기는 차기 대통령 선거 이전에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해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개헌을 기정사실화했다.
국제사회에서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상을 인정받기 위한 움직임도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3월 중순 미국을 방문,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국 정부, 의회 핵심인사들과 면담을 통해 전향적인 대북관과 유연한 한미동맹의 자세를 보여줬던 박 대표는 이달 중하순 중국 공산당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 정관계 고위인사들과 만날 예정이며 성사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후진타오 국가주석과의 면담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방중 기간 중 당면 현안인 북핵 문제와 관련, 북한의 조속한 6자회담 복귀 유도를 촉구하고, 독도문제와 일본의 역사왜곡 등과 관련해 한중 양국 간 공동대응 문제를 협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베이징대 강연 등 중국 대학생들과의 만남과 중국 현지 한국기업인 등 현지교민과도 만날 계획이라고 측근들은 밝히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