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3년 7월 청계천복원공사 기공식에서 연설하는 이명박 서울시장. | ||
청계천 비리 사건이 이 시장에게 더욱 뼈아픈 것은 자신의 최 측근 양윤재 행정부시장이 수뢰혐의로 전격 구속된 것이다. 이 시장은 양 부시장을 임명할 때 시민단체 등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청계천 개발의 전권을 부여했다. 결국 이것이 이 시장을 옭아매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검찰은 지난해 초부터 청계천 개발 비리와 관련하여 양 부시장을 적극적으로 ‘스크린’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 시장이 측근들의 비리 연루 ‘빨간불‘이 깜빡거릴 때 집안단속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계천 맑은 물 위에 대권으로 가는 배를 띄우려했던 이명박 시장. 청계천 비리라는 큰 파도를 만난 ‘이명박호’를 긴급 점검해본다. [관련기사 4·5·6면]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청계천 복원 사업은 양날의 칼이었다. 청계천 개발은 대권을 쟁취하기 위해 서울 시내에 맑은 강물을 흐르게 하는 ‘번듯한’ 사업이기도 했지만 수천억원의 개발 이익을 쫓아 몰려들 수많은 ‘업자’들에게 비리의 온상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칼의 양날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청계천 개발 사업은 시행 초기부터 검찰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검찰은 지난 2004년 2월경부터 이미 청계천 개발과 관련한 여러 가지 비리 사건을 ‘스크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검찰 주변의 1등 감시대상이 바로 양윤재 행정2부시장이었다. 그와 관련한 여러 추문이 계속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청계천 개발 비리 사건은 양윤재 부시장의 구속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부동산 개발업체 M사 대표 길아무개씨로부터 고도제한 해제 청탁을 받고 2억원 등을 수수한 혐의로 전격 구속되었다. 하지만 양 부시장은 구속수감 되기 직전까지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시장은 청계천 개발의 ‘오른팔’이었던 양 부시장의 구속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그 불행은 이 시장이 양윤재씨를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서울시 기술직 공무원의 수장인 행정2부시장(차관급)에 임명할 때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고 주변에서도 보고 있다. 이 시장은 지난해 7월 양씨를 부시장으로 임명할 때 그가 2003년 ‘파크뷰 게이트’ 때 아파트를 특혜 분양받는 등 비리에 연루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부시장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물리치고 임명을 강행했다.
여기에다 양 부시장이 문화재 복원 등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개발 추진에만 매달려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양 부시장을 전격 발탁해 그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인사권자’ 이 시장이 아랫사람을 충분하게 검증하지 못한 귀책사유도 이번 사건의 이유가 되었던 셈이다.
양 부시장의 구속과 관련해 이 시장을 더욱 당혹하게 만드는 부분은 60억원설이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양 부시장이 이명박 서울시장 선거캠프에 합류하면서 이 시장후보로부터 청계천복원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한 대가로 60억원을 받거나 부시장직을 보장받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진술을 업자가 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난해 7월 이 시장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굳이 양씨를 부시장으로 임명하려 한 그 ‘배경’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다. 이 시장과 양 부시장간에 직위를 매개로 한 ‘이면계약’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장이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양 부시장 임명을 관철시켰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장측은 “양 부시장의 진술이 아니라 업자의 주장 아니냐. 해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앞으로 60억원 부분은 이 시장이 청계천 비리와 관련하여 넘어야할 첫 번째 산으로 보인다.
양 부시장의 구속과 함께 김일주 한나라당 성남중원위원장의 구속도 이 시장에게는 날카로운 칼이다. 김씨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한성대 교수 등을 거쳐 지난 93년 11월 민자당 안양을 지구당 개편대회에서 신인 지구당위원장으로 선출돼 정치권에 입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에서는 김씨가 지난 96년 통합 민주당 이기택 총재 밑에서 성남 중원 지구당을 맡으면서 정치에 입문했다고 알려지는데 이보다 3년 이상 빨리 노태우 정권 때 정치권에 발을 들여 논 셈이다. 이명박 시장은 김씨보다 1년 앞선 92년 10월 민자당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노태우 정권 때 같이 민자당 지구당위원장을 맡았던 공통점이 있는 셈이다.
또한 김일주씨는 교회 집사로서 30여 년 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충현교회를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시장도 강남 소망교회의 장로로 활동중이다. 이 시장은 고려대 기독교우회가 주최하는 연말 성탄모임에도 자주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 시장과 김일주씨 모두 고대 출신에 기독교인 생활을 30년 이상 해온 독실한 신자다. 이를 보면 두 사람이 다른 종교 모임에서 ‘조우’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시장이 김씨와의 개인적 친분을 극구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씨가 종교를 매개로 이 시장과의 친분을 얘기하고 다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대 기독교우회측은 “김일주라는 이름이 전체 회원 명부에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입 때 지원서를 내지 않았을 경우 명부에는 없고 실제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앞서의 M사 대표 길아무개씨는 양 부시장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김일주씨를 통해 이명박 시장에게 직접 ‘로비’를 할 계획이었다. 김씨는 당시 한나라당 원외 지구당위원장에 불과했음에도 길씨는 김씨에게 ‘이 시장 면담비’로만 무려 14억원을 건넸다. 청계천 복원 프로젝트의 추진 실세인 양 부시장에게는 ‘불과’ 2억여원을 건넨 것과 비교하면 김씨에게 너무 거액을 건넨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로비스트 길씨가 그런 거액을 줄 정도로 김씨가 중요인사였다면 최소한 김씨가 어떤 인맥을 가졌고, 이 시장과의 개인적 친분 정도는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한 뒤에야 14억원을 건넸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시장이 김씨와 친분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런 거액이 김씨에게 건네졌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먼저 길씨가 돈을 건넸던 최종 도착점이 김씨가 아닌 제3의 인물이 있을 가능성이 그 첫 번째. 이럴 경우 제3의 인물은 길씨와 이 시장과의 직접 면담을 주선할 정도의 실세 로비스트일 것이다. 김씨는 단순한 ‘중간다리’일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시장과 김일주씨가 그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사이일 가능성이 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두 사람이 기독교 생활을 30년 이상 같이 해 왔고, 민자당 시절 같이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동선이 일치하는 경우가 더 발견되기 때문에 두 사람 관계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친밀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김씨에 대해 “수많은 사기행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김일주는 감히 그런 부탁을 할 위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으로 매우 곤혹스런 상황에 빠지게 됐다. ‘청와대까지 번지고 있는 유전 게이트 불꽃을 청계천 물로 물타기 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곱지 않은 시선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 그래서 이 시장 직접 소환 조사도 매우 조심스런 입장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는 생물이라서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고 전제하면서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미뤄볼 때 이 시장까지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정치적 부담도 있다. 검찰이 ‘야당 대권주자 죽이기’라는 여론의 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시장을 소환 조사한 뒤 특별한 혐의점이 나오지 않을 경우 오히려 ‘정치 검찰’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시장 소환은 그리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명박 시장은 현재 60억원설, 14억원 면담 비용설 등만으로도 적잖은 타격을 입고 있다. 과연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개발 비리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신화의 사나이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