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대선 후보감 1위’로 꼽히는 고건 전 총리(왼쪽)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 ||
박근혜 고건 등 웬만한 대권주자들은 모두 미니 홈피를 운영중이다. 의원들은 홈페이지에 일기나 그림 등을 올려 여론을 끌어들이고 있다. 기자들은 정치인들의 홈페이지를 검색하는 것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가 되어 가고 있다.
인터넷은 또한 정치 권력이 충돌하는 거대한 전쟁터이기도 하다. 열린우리당은 1백40여 명의 ‘당게파’들이 지도부를 흔들고 있다며 대책마련에 부산하다. 한나라당은 박사모와 ‘남원정’ 개혁파 간의 인터넷 논쟁이 도를 넘고 있다. 어느새 한국 정치판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버린 인터넷 정치, 그 앞과 뒤를 클릭해 봤다.
“여당 의원 1백46명이 ‘당게파’ 1백40여 명을 당하지 못하고 끌려가서야 되겠는가.”
요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이른바 ‘당게파’(당원게시판에 글을 주기적으로 올려 당론에 배치되는 주장을 일삼는 열성당원들) 때문에 머리를 싸잡고 고민하고 있다. ‘당게파’들이 사사건건 당론에 위배되는 주장을 하며 지도부에 딴죽을 걸고 있기 때문에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이 점차 정쟁의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실용파와 개혁파간의 갈등도 인터넷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난닝구’, ‘빽바지’ 같은 비어들을 통해 그 갈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욕설 등 악의적인 내용이 담긴 글은 휴지통 역할을 하는 ‘해우소‘로 보내지게 된다. 이마저도 지난해 3월부터 1년 간 75건에 불과했다가 전당대회 레이스가 본격화한 올해 3월 이후는 벌써 2백여 건을 훨씬 넘고 있어 통제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한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게시판이 특정인들을 비방하는 글들로 넘쳐나면서 “당심의 왜곡이 심각하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지만 대책이 마땅치 않아 뒷짐만 지고 있는 상태다. 열린우리당은 당게파들의 ‘이미지 투쟁’(민병두 의원)에 맞서기 위해 중진과 소장파 등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결성할 것이라고 전해진다.
한나라당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박사모와 ‘남원정’ 개혁파가 막말 논쟁을 일으킨 것은 인터넷 공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인터넷 팬클럽인 ‘박사모’는 일부 소장파 의원들에게 “이×들이 있는 한 결코 집권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이에 해당 의원들은 “박사모가 아니라 당을 박살내는 박살모”라고 반박하는 등 논쟁을 거듭했다.
그런데 이러한 양측 간 정쟁에도 인터넷이 그 ‘무기’가 되고 있다. 당내 ‘남원정’ 개혁파들은 박사모들이 자신들을 공격한 것에 대해 그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의원들은 “박사모가 조직적으로 의원 홈페이지 및 각종 게시판에 허위사실들을 유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박 대표의 돌격대인 박사모가 인터넷을 이용해 자신들을 ‘박살’내려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인터넷은 이제 정치권의 주요한 ‘배틀 그라운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는 고유의 영역 외에 ‘홍보의 바다’로서도 그 영향력을 크게 키워나가고 있다. 특히 대권 주자들은 벌써부터 대선 전초전을 벌인다는 오해를 받을 만큼 인터넷에 홍보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 자신이 지난 대선에서 네티즌들의 적극적인 ‘클릭’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인터넷의 장·단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한 그것을 국정 운영에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다.
최근 노 대통령의 인터넷 정치 히트작은 바로 ‘대통령과 함께 읽은 보고서’. 노 대통령은 ‘혼자 읽기가 아까워’ 그에게 올라오는 보고서를 인터넷에 올려 국민들과 공유하도록 지시했는데 평균 조회수가 7천 회에 이른다고 한다.
노 대통령뿐만 아니라 차기 대권 주자들도 앞다투어 ‘홈피 정치’에 뛰어들어 마치 예비 대선전을 보는 듯하다.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바로 고건 전 총리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항상 차기 대통령 후보감 1위로 나온다. 그래서 고 전 총리가 최근 미니홈피 ‘렛츠고’를 만든 것을 두고 ‘그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고희를 앞둔 고건 전 총리가 의미심장하게 첫 화두로 던진 것은 ‘청춘’이었다. 이는 다른 젊은 대권 주자들을 의식한 행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렛츠고’는 개설 하루 만에 방문자 수가 1만 명을 넘어서는 초 스피드 인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오래 전부터 ‘인터넷 여전사’로 통한다. 그는 지난해 2월 대권주자들 중 가장 먼저 미니홈피를 열었다. 미혼인 박 대표의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도 클릭수를 늘이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방문자 수가 2백8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집으로 가면 1~2시간 정도 직접 미니홈피를 관리한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홈피 정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인터넷에서 복지정책 등 현안과 교육 문제 등 광폭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김 장관의 ‘일요편지’는 관심이 집중되는 주말 칼럼이다. 그는 최근 고교생 두발 자유화 거리집회를 보고 “꼰대가 아니라 친구가 되고 싶다”는 ‘채팅 용어’를 사용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해찬 총리의 홈페이지는 ‘개점휴업’ 상태다. 공무원 신분으로 사적인 행보를 자제하겠다는 판단 때문. 정 장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조회수는 2만여 회에 불과하다. 그런데 최근 정 장관은 최근 모친상을 당한 뒤 자신의 홈피에 ‘사모곡’을 올려 잔잔한 감동을 준 바 있다.
한나라당의 ‘빅3’ 중 이명박 서울시장도 온라인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 않다. 이 시장은 지난해 5월 미니홈피를 개설했는데 주로 청계천 복원사업 등 시정 홍보의 장으로 활용한다.
손학규 경기지사도 홈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경기도청 홈페이지에 ‘늘푸른 지사실’ 코너를 통해 자신의 행보를 알리는 정도다. 하지만 개인사가 너무 없다는 지적에 따라 곧 미니홈피를 열 계획이라고.
이들에 반해 유시민 의원은 인터넷 마니아에 속한다. 그는 당 공식 일정 중에도 틈만 나면 인터넷 서핑을 한다. 유 의원은 국회 회기중에도 본회의장 로비에 설치된 컴퓨터를 이용하고, 의원회관 지하 사우나를 찾았을 때에도 그곳에 있는 컴퓨터로 인터넷 삼매경에 빠지곤 한단다. 요즘에는 상임중앙위원을 맡아 온라인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다.
홈피 정치가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거리감을 줄이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이버 공간으로 정치인들의 진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정책에 대한 생산적인 소통보다는 표를 의식한 나머지 선정적인 홈피 꾸미기가 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기자들의 취재 패턴도 인터넷 중심으로 옮겨오고 있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에서 국정원 간부들의 사진들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는데 이 ‘특종’은 일간지 모 기자가 정기적으로 주요 언론사 및 정치인들의 홈페이지를 체크하다가 이를 보도한 경우에 속한다.
인터넷 매체는 이제 한국 여론 매체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지난 04년 10월 <시사저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 6위에 오마이뉴스가 올랐고, 인터넷 포털 업체 다음이 9위, 프레시안이 10위였다.
지금 가상의 세계 인터넷이 정치권의 시스템 전반을 다시 ‘포맷’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그것 열심히 해야되는데…”라고만 할 뿐 정작 마우스에는 손도 대지 않는 게 2005년 한국 인터넷 정치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