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이 무리한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까닭은 뭘까. 사진은 지난 2003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노 대통령이 부시 미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 | ||
‘28시간 비행에 달랑 30분의 단독회담’이 될 한미정상회담, 고영구 국정원장의 전격적인 사퇴, 외교안보라인 및 권력의 핵인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에 대한 교체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당 복귀 움직임….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권력의 심부에서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쪽으로 정통한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외교안보라인에 ‘대대적인’ 인적쇄신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다. 인적쇄신의 목적은 한마디로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한미동맹관계에 대한 근본적 변화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6월11일 새벽(한국 시간) 워싱턴에서 한·미정상회담을 갖는다. 표면적인 이유는 북핵 해법을 위한 양국 정상 간 협의다.
실제로 정상회담은 지난해 제3차 6자회담이 열린 지 꼭 1년이 되는 날(6월26일)을 코앞에 두고 열린다. 6월이 6자회담 재개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란 인식은 널리 퍼져 있던 바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선 ‘북한에 무엇을 줄 것인가’를 논의할 수도 있고 반대로 ‘북한을 어떻게 압박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한국으로서도 미국의 압박 요구를 더 이상 물리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0분짜리 단독정상회담을 위해, 확대정상과 오찬까지 모두 포함해도 3시간이 넘지 않는 만남을 위해 2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1박3일 간의 일정을 무리하게 소화해야 하는 데는 말 못할 사정이 있어 보인다.
우리 정상의 외국 방문에 필수 코스처럼 돼 있는 미 의회 관계자 면담이나 동포간담회도 없다. 미국이 방문국 정상에 대한 우의 또는 호의의 상징으로 베풀어오던 크로포드 목장 회동은 애초부터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한일 간에 일년에 두 차례 열리는 1박2일짜리 셔틀회담에서도 최소한의 의전과 정상끼리의 산책 등 우호적 제스처가 포함되는 것에 비춰볼 때 이번 한미 정상회담 일정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이같이 짧은 일정의 회담이 잡힌 데 대해 최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동북아시아의 한국의 균형자 역할 등을 놓고 조성된 한·미간 이상기류를 반영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 (왼쪽부터) 정동영 통일부 장관, 고영구 국정원장,이종석 NSC 사무차장 | ||
노 대통령의 급박한 방미가 한미관계 회복과 북핵 해결을 위한 대외적 행보라면, 대내적 행보는 외교안보팀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외교안보라인 개편은 특히 노무현 대통령 집권 3년차를 맞아 북핵문제, 한미동맹관계 등 외교안보현안이 전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라인을 재정비할 때가 됐다는 필요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이에 따라 고영구 국정원장 교체를 계기로 7월 중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진용을 교체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시기가 7월인 이유는 6월에 한미, 한일정상회담이 잡혀있기 때문이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은 현 외교안보팀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고, 새로 판을 짤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장 교체는 그 시발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외교안보 진용 개편의 하이라이트는 그동안 외교안보팀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이종석 NSC 사무차장 교체가 될 것 같다. 현재 관계 및 학계 인물 3~4명이 구체적으로 거론된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의 열린우리당 조기 복귀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경우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인 NSC는 큰 폭의 인적, 체제적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고영구 국정원장 후임에는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이 등용될 것이 확실시된다. 국가안보보좌관에는 이종석 차장이 승진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차장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의 승진 기용 문제에 대해 “최근 청와대가 이 차장의 대미협상 과정에 대한 조사를 했던 것처럼 이 차장에 대한 노 대통령의 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차제에 ‘모양 좋게’ 이 차장이 실무에서 손을 떼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차장이 ‘자주외교파’에 속하고 ‘작계 5029’,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으로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빚어온 만큼 형식적으로는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승진을 시키면서 실질적으로는 NSC 사무차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곧 형식은 승진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좌천이라는 해석이다.
가장 큰 관심은 이종석 차장을 실무에서 손을 떼게 할 경우 누구에게 NSC 사무차장이란 임무를 맡기느냐 하는 것. 이와 관련해서는 P교수의 이름이 거론된다. P교수는 최근 정치권의 한 지인에게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안보라인을 총괄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다면 내가 NSC 사무차장 자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거취 문제. 이에 대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노 대통령은 정 장관이 전략적 유연성 문제, 작계 5029 파문 등을 사전에 걸러주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갖고 있고 ‘리더십 부족으로 흔들리는 당의 중심을 잡기 위해 정 장관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경청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