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명 개편을 추진하는 새정치연합과 신당 추진 세력이 민주당 간판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사진은 최근 창당된 원외 민주당 건물.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지난 2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당대회를 열어 창당 60주년을 기념해 기념사업을 추진한다고 결의했다. 새정치연합은 사업 추진을 위해 ‘민주당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1955년 해공 신익희 선생 주도로 탄생된 민주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미다.
그러자 원외정당인 ‘신생 민주당’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중앙당 운영위원회를 열어 “민주당이 아닌 당이 무슨 자격으로 민주당을 기념한다는 건지 부끄럽지도 않은가”라며 해당 기구의 해체와 사과를 요구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버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기념한다는 게 한 편의 코미디 같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은 “제1야당이 언제 원외 정당인 적이 있었느냐. 민주당의 ‘적통’은 우리”라고 일축했다.
당시 새정치연합과 신생 민주당의 ‘간판’ 갈등은 크게 이슈화되지는 않았다. 기념사업을 둘러싼 일종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4·29 재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당시 사건이 재조명되는 양상을 띠었다. 호남 중진인 천정배 의원이 야당의 텃밭인 광주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야권 내에서 ‘신당 창당’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신당 명칭으로 전통성을 지닌 ‘민주당’이 급부상했다. 이 과정에서 최근 새정치연합 당직자들이 대거 탈당해 민주당으로 입당하면서 신당과 새정치연합 탈당파, 신생 민주당 간 연대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당으로 입당한 한 새정치연합 탈당파는 “더 이상 새정치연합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정통 민주당 깃발로 다시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그러자 새정치연합도 가만있지 않았다. 지난 7월 새정치연합에 전격 영입된 ‘브랜드 전문가’ 손혜원 홍보위원장을 중심으로 ‘당명 개정’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손 위원장은 지난 7월 28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브랜드 가치 면에서 부정적”이라며 “사람들이 읽기 불편하다는 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 역시 “당명이 조금 불편한 건 사실”이라며 당명 개정에 힘을 실었다. 여기에 새정치연합 당명에 최대 지분을 가진 김한길, 안철수 의원마저도 당명 개정 검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사실상 새정치연합이라는 당명은 순식간에 ‘미운 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하고 있는 분위기다.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내년 총선에 대비해 연내에는 당명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제는 ‘어떻게’ 바꿀지인데, 어찌됐건 대표성을 띤 ‘민주당 간판’을 걸기 어렵다는 것에 자조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현행 정당법 상에는 유사명칭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생 민주당이 있는 한, 약칭이든 정식 명칭이든 ‘민주당’ 이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쉽게 버린 것부터가 우스운 일이다. 이제 와서 쉽게 되찾을 수 있겠느냐. 결국 합당밖에 답이 없을 것 같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신생 민주당이 당명 쟁탈전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만 그동안 다른 한켠에선 ‘당명 사용’을 둘러싸고 법정 다툼을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신생 민주당의 주인 다툼은 새정치연합이 창당되면서 민주당이 소멸된 지난해 3월 27일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주당 창당을 위해 두 개의 ‘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를 했는데 시간은 단 ‘1분차’였다. 선관위가 문을 연 동시에 김명숙 씨(열린우리당 당원 출신)가 대표인 창준위가 오전 9시 1분에, 강신성 씨(현 민주당 대표)가 대표인 창준위가 오전 9시 2분에 등록증을 접수한 것이다. 김 씨 측이 간발의 차로 빨랐지만, 강 씨 측은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소멸된 시각은 오전 9시 10분이므로 그 전에 접수는 무효”라는 웃지 못할 주장을 폈다. 실제로 당시 새정치연합 합당 신고가 조금 늦게 선관위에 수리되면서 민주당 소멸이 약간 늦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결국 선관위는 강 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인 후 “추첨으로 당명을 뽑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당명을 추첨으로 뽑는 경우는 정당 등록 역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추첨 결과 강 씨가 최종 당선이 됐지만, 김 씨 측은 여전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 측은 “선관위와 강 씨 측이 야권 A 의원의 전화를 받은 후 강 씨 측에 유리하게 모든 일이 진행됐다”라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을 차지한 강신성 대표는 “아직 무슨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조만간 인터뷰를 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지리한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지난 2월경 김 씨 측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민주당 당명과 관련한 총 4개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강신성 대표의 민주당 창준위에 대한 당명사용금지 가처분, 선관위를 상대로 정당명칭사용지위존재 소송 및 정당등록처분무효확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등”이라며 “강 씨 측의 억지 주장을 선관위가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추첨 역시 양측이 모두 참여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관위 직원이 그대로 진행을 했다. 창당 과정 모두가 위법성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씨 측은 이에 반발해 또 다시 항소를 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선관위를 상대로 한 정당명칭사용지위존재 및 정당등록처분무효확인 소송이다. 김 씨 측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항소를 한 상태고 아직 법적으로 끝났다고는 볼 수 없다”라고 전했다. 향후 법적 결론에 따라 민주당이 또 다시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결국 민주당 간판을 놓고 새정치연합과 신당 창당 세력이 물밑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법적 다툼도 이어지고 있어 민주당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민주당 강신성 대표는 천정배 의원 등 신당 창당 세력을 자주 사적으로 접촉하며 향후 행보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소송은 이미 마무리가 된 상황이라 별다른 할 말이 없다. 새정치연합과의 합당이나 신당 세력과의 연대설 등은 아직 정해진 바 없지만 폭 넓게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향후 야권 재편의 한 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