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아시아나 항공 소속 보잉 747화물기가 추락한 제주시 서쪽 약 107㎞ 해상에서 제주해경이 잔해를 인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7월 29일 오전 3시 5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991편 화물기(B747-400F)가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목적지는 중국 상하이 푸동국제공항. 예정 시간보다 20분 늦게 이륙한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이상 없이 순항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한 지 50분여가 지났을까. 갑자기 상하이 관제탑에 991편의 긴박한 메시지가 접수됐다. “화물실에 화재가 감지됐으니 제주공항으로 일단 회항을 하겠다”는 것. 이후 비행기는 제주 관제탑에 회항 의사를 전달한 후 제주공항으로 향했지만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였다. 오전 4시 10분. 991편 조종사는 “비행기 진동이 너무 심해서 고도 control이 안돼… 곧 ditching(비상착륙)할 것 같아… 아”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후 비행기는 레이더망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고 발생 2시간 뒤 해경은 제주시 서쪽 130㎞ 해상에서 비행기 잔해를 발견했다. 사고 사실이 확인된 것. 석 달 후에는 바다 밑바닥에서 극적으로 발견된 비행기 조종석에 기장 최 아무개 씨(52)와 부기장 이 아무개 씨(43) 시신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조종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한 상태였다.
사고의 파장은 컸다. 무엇보다 사고 원인에 관심이 쏠렸다. 국내에서 화재로 항공기가 추락한 경우는 해당 사고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장이 관제탑에 보고한 대로 ‘화물칸 화재 발생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비행기 화물칸에는 화물 58톤가량이 실려 있었다. 이중 리튬 이온 전지, 페인트, 아미노산 용액, 합성수지 등 인화성 물질은 0.4톤 정도였다. 결국 0.4톤가량의 화물 중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셈이다.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항공기 사고조사 보고서.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고 원인에 대한 각종 의혹은 여전히 제기되는 양상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원인이 제대로 나오기는커녕 두루뭉술한 분석만 나와 ‘대체 4년 동안 무엇을 했느냐’라는 비판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의문점만 여전히 남기지 않았느냐”라고 전했다.
실제로 당시 아시아나 제주 사고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갑작스런 사고에 ‘테러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기체 일부가 공중에서 분해돼 추락했다는 정황과 비행기 잔해가 바다 사방(가로 약 3㎞, 세로 약 4㎞ 범위)으로 흩어졌다는 점, 사고 당시 고도가 비정상적으로 급격하게 낮아졌다는 점(2만 2700피트에서 1만 3400피트로 하강) 등이 화약으로 인한 폭발 가능성을 제기하며 테러 의혹까지 연결된 것. 하지만 사조위 측은 이러한 의혹을 일축했다. 사조위 관계자는 “기체 일부를 국과수에 의뢰한 결과 폭약장치로 인한 폭발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일단 화약 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것이다. 인위적으로 비행기가 폭발했다기보다는 인화성 물질 확산이 빨리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화재로 심하게 손상된 동체 후방 부위 잔해(위)와 동체 연결부. 사진출처=항공기 사고조사 보고서
또 다른 일각에서는 ‘고의 추락’ 의혹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조종사 중 1명이 사고 발생 한 달 전 7개 보험에 가입했고, 사망 수령액이 30억 원대로 알려지면서 ‘보험사기’ 의혹 등 각종 억측이 제기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번 사조위 조사에서는 보험사기 의혹에 대한 조사는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조위 관계자는 “사조위 조사 직전 경찰에서 ‘무혐의’가 나온 사안이기에 조사할 필요가 없었다. 사조위에서 조사할 부분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바로도 ‘보험사기’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아시아나항공 한 관계자는 “사고기 기장이 사람도 좋고 마음도 약해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당시 친구 아들이 보험사에 다녔는데 실적이 좋지 않아 여러 보험을 들어줬는데 공교롭게도 시기가 그렇게 된 듯싶다. 기장 연봉이 상당한데 보험금을 타려고 비행기 사고까지 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다”라고 전했다.
사고 이후 발견된 조종사들의 시신에서도 이러한 정황은 포착된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당시 조종사들은 조종석에 안전벨트를 맨 채 발견됐다. 사고 조사 관계자는 “조종사들이 운항 중 안전벨트를 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추락 직전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락 직전까지 조종사들이 추락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였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사조위의 사고 조사 결과를 두고 여러 뒷말이 나도는 가운데, 이러한 의혹들을 모두 불식시킬 열쇠인 ‘블랙박스’는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다. 화재 원인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인 셈이다. 사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사조위는 블랙박스를 찾기 위해 약 ‘142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으나 결국 실패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문제는 예산 사용 내역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신문>이 335쪽에 달하는 사고 조사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142억 원으로 간략하게 언급만 되어 있을 뿐, 예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에 사조위 관계자는 “해양 전문가와 해군 등을 동원하는 데 예산이 많이 소요된 측면이 있다. 블랙박스 기체는 찾았으나 정작 내용물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여러 화재 가능성을 실험, 분석해 제시했기에 원인을 완전히 밝히지 못한 것은 아닌 것”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영구미제’로 남은 아시아나 제주 사고는 여러 의문점만 남긴 채 마무리를 짓게 됐다. 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이토록 많은 예산과 기간을 투입해 항공 사고를 조사하는 것은 국내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결국 원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것은 향후 두고두고 사조위의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