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5 기념행사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왼쪽)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17일 평양 대동강 영빈관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찬을 함께하며 환담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통일부 | ||
첫째 북핵 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위원장이 전략적 결단을 굳혔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현재 중대국면에 처한 북핵 문제와 지난 1년여 동안 중단 상태에 있었던 남북 당국간 관계의 향방과 관련해서 김 위원장이 적극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의사를 전했다는 것이다.
둘째, 핵 포기 시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북ㆍ미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로 개선을 추진한다는 한미정상회담의 합의내용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 또 6자회담에 복귀할 경우 북핵문제 해결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제안’을 마련하겠다는 우리측 입장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나 제안이 오갔다.
셋째,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및 제2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이에 따라 오는 8월 광복절을 전후한 시점에 ‘노무현 대통령-김정일 위원장’ 간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 정부 사전에 면담 요청
방북하기 전부터 우리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을 희망했고 북이 이를 받아들였다. 물론 우리 정부가 아쉬웠다.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힘을 더하고 남북관계가 김대중 정부 시절보다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시점이어서 우리 정부의 필요성은 더욱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측에서도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게 사실인 것 같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북핵 상황을 적극적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줄 필요성이 있었다.
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정동영 장관을 통해 친서형태는 아니지만 구체적인 뜻이 담긴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장관은 김 위원장의 면담에 대비해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경우 획기적인 대북지원을 하겠다는 등 몇 가지 내용을 담은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갖고 평양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메시지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 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몇 가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단독면담 직전에 “지난해 6·15 행사 참석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리종혁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수첩에 적어온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를 낭독했던 적이 있다”며 “그와 비슷한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동영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보다 자세한 내용에 대해 언급을 삼갔다.
# 김정일 6자회담 결심
부시 미 행정부의 2기 출범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의 흐름을 예의주시해오던 김 위원장이 핵 포기 시 북-미간 `보다 정상적인 관계’를 맺어나간다는 한-미 정상 간 합의를 토대로 7월 6자회담 복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이번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정 장관을 통해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이 북한으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고 한미정상회담 이후 입장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정 장관을 만나 자신들의 입장을 나름대로 정하기 위한 장으로 삼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면담은 북한이 핵문제와 관련, 이제 큰 틀에서 한반도의 위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겠다는 신호로 보인다. 남북관계가 잘돼야 미국과의 문제해결에 힘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고 이런 측면에서 북한이 나름대로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다.
여권의 다른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의 일각에서 여전히 대북 강경책이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평화적 외교적 해결로 확실하게 가닥을 잡았을 뿐 아니라, 6자회담 재개시 실질적인 협상에 임할 자세가 되어 있다는 점을 역설하고 김 위원장의 결단을 진지하게 설득한 것으로 관측된다”고 밝혔다.
# 2차정상회담 보인다
이번 정 장관의 평양 방문은 단순히 통일부 장관의 방북이라기보다는, 우리 정부의 통일 외교 안보 분야를 총괄하는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 사실상 노 대통령의 특사 역할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에 따라 사전 조율에 따른 이번 방북에서 최대 성과는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답방을 할 것이고, 따라서 노무현-김정일 간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에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초청도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보 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과 정 장관의 면담은 무엇보다 5년 전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남과 북의 정상이 서명한 6·15공동선언의 의미를 되새기고, 지난 5년간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해 우여곡절을 겪었던 남북관계를 다시 정상궤도로 올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계속해 “참여정부가 제한된 범위 내에서나마 한미동맹 틀에서 남북관계를 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김 위원장이 읽고 어느 정도 화답을 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의 희망을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정보 당국자는 “6·15 5주년을 맞아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도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다른 관계자는 “특히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는 가운데 이번 면담으로 그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전망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따른 제2차 정상회담, 즉 노무현-김정일 회담은 오는 8월 광복절을 전후한 시점이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진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