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오늘이 있기까지 시련도 많았다. 지난해 여름 장관에 오른 이후 정 장관은 협상파트너인 북한으로부터 변변한 대접 한번 못 받은 채 시련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지난해 말 개성공단을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정 장관에 대한 북측의 홀대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정 장관의 개성 방문 자체가 미지수였고 방문한 뒤에도 북한이 책임 있는 당국자를 보내지 않아 통일부는 자못 당황하기도 했다.
지난해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파동이 발생한 직후인 7월13일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인 ‘한민전’은 대변인 논평에서 정 장관에 대해 “항간에서는 벌써부터 경거망동하는 그의 행실로 보아 통일부 장관직에 얼마 배겨있지 못할 것이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고 공격했고 8월20일자 <로동신문>은 “6·15 공동선언 채택 이후 지금까지 잘나가던 북남관계가 정동영이 통일부 장관 자리에 올라앉은 후 전례 없는 도전에 부닥치고 있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며 “명색이 통일부 장관이라는 정동영은 사태의 본질과 책임을 뒤집고 상대방을 모독하는 경망스러운 말을 함부로 해댐으로써 제 낯을 깎고 북남관계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였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가볍게 멋없이 놀다가는 신세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정동영은 새겨둘 필요가 있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정 장관을 대하는 북한의 변화된 태도는 <로동신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8일자 <로동신문>은 머릿기사를 통해 “김정일 동지께서 남측 대통령특사를 접견하시였다”며 정 장관을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로 치켜세워 놀라움을 자아냈다.
정 장관 일행에 대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로동신문>의 보도는 며칠에 걸쳐 아주 이례적일 만큼 파격적이었다. 정 장관을 포함한 우리측 대표단의 일정을 체류기간 동안 상세히 보도한 <로동신문>은 정 장관에 대한 호칭에서도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보도할 때를 제외하고는 ‘남측당국대표단 단장’ 혹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으로 깍듯한 예의를 갖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대표단의 북한에서의 활동을 담은 사진은 매일 2~3장 이상 실렸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있었던 17일의 경우 북한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우리 대표단의 만남 사진, 평양지하철도 참관 사진이 각각 2, 3면에 걸쳐 3장이나 실릴 정도였다. 16일에도 남북 공동사진전시회에 참석한 정 장관 일행의 사진이 3명의 중앙을 차지했다. 통상적으로 <로동신문>의 2~3면은 ‘국내 소식’이나 ‘고위 간부들의 동향’을 다루는 면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기사와 함께 게재된 사진들의 중심이 모두 정 장관이었다는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6·15 남북정상회담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를 앞둔 김 위원장의 달라진 모습도 <로동신문>을 통해 일부 확인됐다. 행사를 앞둔 한 달여 동안 ‘은둔 지도자’ 김 위원장의 바깥 출입이 부쩍 늘어났던 것이다.
행사를 보름여 앞둔 5월29일부터 6월2일까지 김 위원장은 5일 연속 군부대를 시찰, 격려해 1면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물론 ‘선군정치’를 주장하는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이 이례적인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같은 시기 이렇듯 집중적으로 군부대를 시찰하는 경우는 아주 드문 경우에 속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같은 달 27일에는 원산청년발전소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한 것을 비롯, 25일 군부대 시찰, 19·21·23일에는 군부대를 방문해 인민군이 준비한 공연을 관람한 것으로 <로동신문>은 대서특필했다. 같은 기간 김 위원장의 외부활동은 총 10여 회가 넘었다. 남북공동행사를 앞두고 체제의 안정을 위해 분주히 움직인 김 위원장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한편 행사를 불과 10일 남겨놓은 6월4일 <로동신문>은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국회에서 “한미공조에 의거한 북핵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극단적인 용어를 써가며 비난을 퍼부었던 것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남한 소식을 주로 다루는 5면에서 <로동신문>은 “김용갑은 사람의 입을 가졌다고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7천만겨레와 이남 민중의 생존을 쥐락펴락하려는 미국에 추종하면서 민족의 통일운동에 훼방을 놓으려는 김용갑의 행위는 짐승만도 못한 추악한 짓이다. 김용갑은 더러운 입을 다물고 자기를 반성하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