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장관 시절인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김승규 국정원장 내정자. 청와대사진기자단 | ||
하지만 김 내정자가 정치권과 인연이 그렇게 없는 것도 아니다. 먼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과는 서울 법대 64학번 동기다. 그의 둘째형 김명규 전 의원은 노 대통령과 함께 국민회의와 민주당을 거치며 같이 정치활동을 했던 인연이 있다. 또한 김 내정자는 천정배 의원 등 ‘천신정’ 그룹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법조계에서 손꼽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김원기 국회의장 등 기독교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있다. 2기 노무현 정권의 숨은 실력자 김승규 내정자의 ‘내공’을 추적해봤다.
“감찰부장은 정말 못할 자리야. 불평 없이 일만 해온 검사들이 불쌍해… 해당 검사들이 손이 떨려 제대로 쓰지 못할까봐 미리 사직서 양식을 만들어 서명만 하도록 했다. 여러분은 그 심정을 아느냐.”
지난 99년 1월30일, 김승규 대검 감찰부장은 기자간담회 도중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대전 이종기 변호사 수임비리사건의 수사 사령탑으로서 결과를 발표하던 중 자신이 자르게 될 ‘동료’ 검사들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독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는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징계위원회에 김태정 총장 대신 참석해 ‘(수뇌부 퇴진을 요구한) 심 고검장의 행위는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조직의 안위를 위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중징계 처분이 불가피하다’는 강경한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보인 상명하복에 충실한 부하의 모습이 오늘날 국정원장의 수장에까지 오르게 된 원동력임을 부인할 수 없다.
김 내정자의 조직 순응적 ‘장점’을 이번 국정원장 인사에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다. 사실 그동안 여당에서는 ‘정치력 있는’ 국정원장을 내심 바랐다.
하지만 청와대는 애초부터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의 뜻을 소리 없이 잘 따를 수 있는 탈 정치적인, 충직한 적임자를 선택하려 했던 것이다. 또한 대통령의 ‘코드’를 가장 잘 읽을 수 있고, 최근 비등해지고 있는 호남 소외론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전남 광양 출신인 김 내정자를 선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 내정자가 국정원장 자리로 오게 된 배경에는 그 자신의 개인적 ‘능력’도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심재륜 고검장의 중징계를 강하게 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불행한’ 사실에 대해 눈물을 흘린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이는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생활해온 데서 유래한다.
▲ 노 대통령과 환담하는 김 내정자.(위), 국정원 청사 | ||
그는 전남 광양에서 5남 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이 대가족이 모두 장로나 권사 같은 직함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다. 특히 이 가운데 넷째형 김명규씨는 국민회의 민주당을 거치면서 14~15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다. 그는 국가조찬기도회 부회장과 국민회의 기독신우회 회장을 지냈던 대표적 기독교 정치인이었다. 김 전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97년 국민회의 부총재를 역임할 때 의원 활동을 하며 서로 친분을 나누던 사이였다. 형인 김명규 전 의원이 김 내정자와 정치권과의 ‘다리’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또한 열린우리당의 ‘천신정’ 그룹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겨레>는 지난 2004년 7월 강금실 장관이 전격 경질된 배경을 다룬 기사에서 한 검찰 간부의 말을 인용해 “김승규 신임 법무부 장관은 송광수 검찰총장의 사시 1년 선배다. 이번 인사는 검찰의 조직안정을 기하면서 조용한 가운데 합리적인 개혁을 하겠다는 뜻이 담긴 것 같다. 김 장관은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도 잘 안다. 한마디로 ‘천신정’(열린우리당의 핵심인물로 불렸던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을 지칭) 라인과 잘 지내는 사이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한편 김승규 국정원장 내정자는 직책을 권유받은 뒤 ‘고사’하는 것과 인연이 깊은 편이다. 한번은 좋은 뜻으로, 또 한번은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고사를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먼저 그는 지난 2000년 7월 검찰 정기인사에서 비교적 한직인 대검 공판송무부장으로 발령이 난 적이 있었다. 그는 수원지검장으로 재직하면서 서울지검장 1순위로 유력했었다. 그런데 그는 검찰의 꽃인 서울지검장 자리를 고사했다고 한다.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검찰 건강진단에서 몸에 일부 이상징후가 있다는 잠정 판정을 받았지만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수술만 하면 간단하게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그 같은 건강진단 결과를 통보 받고 인사권자를 찾아가 “건강이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나 업무를 수행하다 검찰에 누를 끼칠 수 있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 뒤 청와대 민정수석 자리를 또 다시 고사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그 이유가 조금 달랐다. 김대중 정권은 지난 2002년 1·29 개각에서 김승규 법무 차관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하지만 김 차관은 민정수석 자리를 끝까지 고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검찰 주변에서는 “김 차관이 ‘청와대 행’보다는 대검 차장을 선호했기 때문에 청와대 제의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개각 당일 법무부는 아침 일찍부터 이임을 기정사실화하고 퇴임식과 취임인사 준비를 했지만 결국 김 차관은 유임되었다. 김 내정자는 당시 ‘정권 말기에 청와대에 들어가면 나중에 돌아갈 자리가 없게 된다는 이유도 있었다’는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김 내정자가 이번 국정원장 인선 과정에서도 청와대의 제의를 여러 차례 고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내정자는 지난 6월6일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국정원장직을 제의 받았으나 즉각 고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인 14일 김 실장이 김 내정자를 직접 만나 국정원장 기용 방침을 다시 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건강이 썩 좋지 않아 새로운 분야의 일을 맡기는 벅차다”며 한사코 거부했다고 한다. 김 내정자는 그날 오후 또 다시 김우식 실장에게 “나보다 훨씬 유능한 분이 있다”며 고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과도한’ 겸손을 두고 법조계에서 한때 구구한 억측이 나돌기도 했다. 김 장관이 아직 사법 개혁 등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또 다시 새로운 일을 맡기를 꺼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김 내정자는 ‘수사통’으로서 공안 업무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국정원 업무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