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내‘박근혜 대세론’이 힘을 받는 가운데 ‘반박’ 진영에는 균열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표가 한국국제학교에서 학생들의 사인요청에 응하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기자단 | ||
반박 그룹이 ‘반격’에 나서는 주요 계기가 되리라 예상됐던 당 혁신안이 확정, 발표(6월21일)됐지만 친박 그룹과 제대로 한판 붙기는커녕 핵심인사들이 너나없이 박 대표측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반박 그룹 내 이 같은 동향은 얼마전까지 이들과 전략적 연대를 맺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차기 대권주자들의 입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향후 대권 레이스에 판도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박 그룹 내 ‘이상기류’는 양축인 수도분할반대투쟁위원회(수투위)와 새정치수요모임(수요모임) 핵심들의 행보에서 뚜렷히 감지되고 있다. 수투위의 경우 이 시장 계열 인사들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고, 수요모임은 노선상 손 지사와 친화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당내의 일반적인 평가다.
우선 수투위의 경우 ‘반박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의원의 ‘각개 약진’이 구체화되면서 전열이 흐트러지고 있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그동안 “박 대표는 유신 독재시절 사실상의 퍼스트레이디로서 권력의 핵심에서 적극적 정치행위를 했으므로 정치적 원죄가 있다”(이재오), “박 대표의 리더십은 박정희 전 대통령 후광일 뿐이다. 당 운영을 보면 대표 자질은 없다”(김문수)며 박 대표를 맹공했던 이·김 의원은 최근 기존의 ‘반박 브랜드’를 지우려는 듯한 언행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기자들과 만나 당 혁신위(위원장 홍준표 의원)가 제시한 내년 1~2월 조기 전당대회 개최에 반대하며 “박 대표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해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혁신위안에 보면 당권과 대권 분리시기는 대선 1년 6개월 전인 만큼 전대는 박 대표의 임기가 끝나고 지방선거를 치른 뒤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한나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박근혜 간판’으로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었던 탓에 친박·반박 양 진영 모두 이 의원의 발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을 만들었다.
반박 진영, 특히 이 시장측에선 이 의원의 돌연한 ‘변신’에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다. 수투위 소속 한 의원은 “차기 서울시장 도전 의사를 갖고 있는 이 의원이 당내 역학구도상 이 시장의 지원보다는 후보 공천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박 대표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며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시장의 등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은 발언을 할 수가 있겠느냐.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쟁관계인 홍준표 의원이 주도한 혁신안에 태클을 걸고 나온 것도 다 같은 맥락이다”고 분석했다.
반면 친박 그룹에선 이 의원의 발언에 “당내외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것”이라며 반기는 기운이 역력하다. 박 대표 측근인 한 핵심당직자는 “애시당초 당권·대권 분리를 위해 내년 1~2월에 조기 전대를 열자는 혁신위측 주장은 대권주자들간 형평은 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방선거 승리에는 역행하는 제안이다. 이 의원도 그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이 의원이 필요 이상의 ‘인신공격’성 비판으로 박 대표를 괴롭혔던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당내외 현안에 대해 건설적인 제안을 해 온다면 굳이 관계개선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덧붙여 주목을 끌었다.
김문수 의원과 박 대표와의 관계도 갈수록 ‘온기’가 돌고 있다. 4·30 재보선에서 박 대표와 함께 최대 접전지였던 경북 영천에서 지원유세에 나서 ‘데탕트’를 시도했던 김 의원은 이재오 의원과 마찬가지로 조기 전대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의 지도부, 국회의원 등 구성원이 하나도 변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당명을 바꾸기 위해 전대를 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실적으로 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 당내에 박 대표 말고 누가 있으냐. 이는 현장을 통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 의원이 관계개선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자 박 대표측도 최근 국회 윤리특위 징계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김 의원을 적극 엄호하고 나섰다. 김 의원이 윤리특위로부터 ‘5일간 출석정지’란 중징계를 받은 데 대해 박 대표가 “여당이 숫자가 많다고 동료의원들에게 폭거를 자행했다. 징계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강력대응하겠다”며 ‘보호막’을 자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내에선 차기 경기지사 출마를 적극 검토중인 김 의원 역시 이재오 의원과 마찬가지로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받기 위해선 ‘친(親) 이명박’보다 박 대표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반박 그룹의 또다른 축인 수요모임 내서도 수투위 못지않게 내부 기류가 급격히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수요모임은 6월 초 그동안 모임을 주도하며 반박 노선을 이끌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이 2선으로 후퇴하면서 “수요모임은 박 대표에 대립각을 세우는 모임이 아니다”(2기 대표 박형준 의원)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최근에는 경기도당 위원장 경선에서 1기 대표였던 정 의원이 원외인 홍문종 현 위원장에 패배하는 ‘충격적 사태’가 발생하자 공개적인 자기반성을 토대로 노선 수정 방침을 천명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6월28일 당 홈페이지 실은 칼럼을 통해 “소장파는 그동안 우리 길을 막는 것은 모두 수구-보수-꼴통으로 몰았고, 비전이 없다는 비판은 우리 주장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강변했으며, 기회주의라는 비판은 당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선거가 ‘남·원·정’이라는 소장파 그룹이 ‘우리가 옳다’는 오만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했으며, 이제 당 안팎의 여러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남 의원도 이틀 전(6월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흔히 남원정으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소장파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분석은 이제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한다”며 이제까지 잘못된 노선을 걸어 왔음을 시인한 후 “스스로 변화하지 못하고 변화의 대상이 되어갔고, 공허한 구호뿐 구체적인 실천이 없었다”고 자아비판했다.
원 의원은 보다 직접적으로 박 대표에 대한 찬사로 화해 제스처를 취하고 나섰다. 6·15남북공동선언 5주년 축하행사 참석차 북한을 다녀온 원 의원은 “박 대표가 미국 방문기간 중에 미국이 대북지원, 북미국교정상화 등 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제시하면서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던 부분,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적으로 북핵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한 부분 등에 대해서 북측 인사들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면서 유의하고 있다”며 박 대표에 대한 북한의 최근 시각을 장황하게 소개해,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을 낳았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