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대 총선에서 당선된 원로 배우 이순재가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펼치는 모습(왼쪽), 고 정주일 의원의 국회 연설 모습. | ||
TBC 동양방송 출신 탤런트 홍성우는 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서울 도봉구에서 당선돼 ‘최초의 연예인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11,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민정당 소속으로 연이어 당선됐지만 88년 초 재산 관련 불미스런 소문에 휘말려 정계 은퇴를 선언했고 92년 국민당 소속으로 14대 총선에 출마했지만 낙마했다. 홍성우가 다시 화제가 된 것은 지난 96년으로 그가 제주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생활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다. ‘슈퍼마켓 주인이 된 인기 연예인 출신 3선 의원’이 당시 상당한 화제였는데 이로 인해 그를 둘러싼 재산 관련 의혹이 상당 부분 불식되기도 했다. 현재는 제주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범하게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홍성우의 뒤를 이어 국회의원이 된 연예인은 이대엽 성남시장. 1950년대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영화계 액션스타였던 이 시장은 지난 81년 신정당 소속으로 성남 광주에서 출마해 제 11대 국회의원이 됐다. 거대 정당의 공천에 연예인의 인기라는 프리미엄을 더하는 방식이 아닌 소수 정당인 신정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게 눈길을 끄는데 이는 그가 연예계를 떠나 10여 년 동안 철저하게 정치 입문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후 국민당과 공화당 후보로 12대,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4, 15, 16대 총선에선 이윤수 전 의원에게 연패했다. 2002년 한나라당 소속으로 성남시장이 된 이 시장은 2006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본인은 “영화는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의 고향”이라 얘기하지만 ‘3선 의원’에 ‘2선 시장’인 그는 정치인으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2002년과 2006년 시장 선거에서 연이어 선거법 위반혐의로 80만 원과 70만 원 벌금형을 받았는데 1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라 ‘당선 무효’는 면했다.
이대엽 시장과 함께 11대 국회에 입성한 고 이낙훈은 연기자협회 회장을 지낸 서울대 출신 탤런트다. 81년 11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의 전국구로 당선됐는데 정당이 문화예술계 인사를 전국구로 공천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11대 국회 임기를 마치고 연예계로 돌아왔지만 당적을 계속 유지해온 이낙훈은 92년 민자당을 탈당해 정계를 떠났다. 이는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과의 친분 때문으로 97년 박 전 회장이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포항 북구)에 출마하자 이낙훈은 당시 포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휘향의 남편 고 김두조 씨를 직접 만나 박 전 회장 지지를 부탁하기도 했었다.
역시 서울대 출신 탤런트로 연기자협회장을 지난 이순재는 절친한 친구인 이낙훈의 권유로 13대 총선에 출마(민정당 소속, 중랑갑구)했지만 이상수 노동부 장관(당시 평민당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4대 총선에선 이순재가 이 장관을 누르고 당선의 영예를 누렸고 이순재가 불출마한 15대 총선에선 다시 이 장관이 당선됐다. 두 번의 선거전에서 깨끗한 경쟁을 펼친 인연으로 이순재는 이 장관의 후원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4대 총선에선 이순재 외에도 최불암 강부자 등의 중견 탤런트가 국회에 입성했고 고 이주일은 코미디언 최초로 국회의원이 됐다. 이들은 모두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친분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 92년 정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 소속으로 14대 총선에 나란히 입후보해 최불암과 강부자는 전국구, 이주일은 경기도 구리에서 당선됐다.
정 명예회장이 가장 어렵게 영입한 이는 이주일이었다. 이주일은 회고록 <인생은 코미디가 아닙니다>에서 “당시 나를 출마시키려는 국민당과 이를 방해하려는 여당의 신경전이 대단했는데 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반강제로 홍콩 외유길에 올랐을 정도”라고 얘기한다.
92년 대선 패배 이후 국민당이 와해되면서 최불암과 이주일은 민자당, 강부자는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겨 임기를 채웠다. 이런 부침과 연예인이라는 편견으로 이주일이 의정활동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 14대 국회에서 문화체육공보위원회 소속 의원 보좌관을 지낸 칼럼니스트 김석수 씨는 “편견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이주일 씨는 그 누구보다 성실한 의정활동을 펼쳤다”고 얘기한다.
15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이주일은 불출마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고록에서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치는 코미디다’ ‘4년간 코미디 공부 많이 했다’ 등의 얘기를 했다”며 “적과 동지의 구분조차 모호한 정치판에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강부자 역시 불출마해 최불암만 15대 총선에 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영등포 을구)했지만 국민회의 김민석 전 의원에게 패해 브라운관으로 돌아왔다.
15대 총선에선 국민회의 소속의 최희준과 정한용이 의원 배지를 달았다.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야당 지지 연예인의 국회 진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서슬 퍼런 군사 정권에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96년 15대 총선에서 최초의 가수 출신 국회의원(안양 동안갑)이 된 최희준은 출마 이유를 “국민의 힘, 투표의 힘으로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뤄야겠다는 일념에서 국민회의 창당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해 출마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가수 출신 의원답게 라이브 클럽 합법화와 같은 문화계 현안 위주의 의정 활동을 펼친 최희준은 16대 총선에서 지역구 통합으로 공천에 탈락하자 정계를 떠났다.
92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정한용 역시 15대 총선에서 국민회의 소속으로 출마(서울 구로갑)해 당선됐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해 출마한 정한용은 결국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 유정현 | ||
60~70년대 최고의 인기 영화배우 신성일은 신한국당에 입당해 15대 총선 당시 대구 동갑 지구에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낙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신성일’이 아닌 본명 ‘강신영’으로 출마한 것도 주요 원인인 터라 본명을 ‘강신성일’로 바꾸고 16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임기가 끝난 뒤인 2005년 2월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지난봄에 가석방된 강신성일은 ‘최고의 연예인’과 ‘추락한 정치인’을 동시에 경험한 불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방송인 유정현의 총선 출마 선언으로 또 어떤 연예인이 18대 총선에 출마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이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한 유인촌으로 총선 출마설은 물론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를 지원한 뒤 15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한 이덕화 역시 이번 대선 이후 또 다시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덕화 측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경호 한국대중문화예술인복지회 이사장(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위원장 겸임)의 행보도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이사장은 연예인 35명의 이명박 후보 공식 지지 가지회견을 주도했지만 다소 무리한 행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한 노림수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 김영선 수석부위원장은 “한나라당과 총선 출마와 관련해 어떤 얘기도 오가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이 후보를 지지했다는 건 오해”라며 “대중문화예술인 복지 관련 정책을 이명박 후보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해 지지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항간에는 이순재가 <이산>에서 중도하차하고 총선에 출마한다는 소문도 있다. 이에 대해 이순재는 “15대 총선에서 불출마 선언했을 때 다시는 (정치를) 안 하겠다는 뜻이었다. 정치와 상관없이 영원히 연기자로 살 것이다”라고 말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