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권력구조개편과 개헌론 등은 국가의 통치 시스템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중차대한 문제다. 여권의 핵심 실세들과 대통령까지 모여서 이런 민감한 문제를 논의하고 실행에까지 옮긴다면 그 자리는 이미 보통 토론의 장이 아니다. ‘11인회의’가 도대체 어떤 모임이기에 공공기관 지방이전 문제에서부터 북한 핵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일까. 그 모임의 문을 노크해봤다.
대한민국의 중요한 사안은 어디에서 결정되는 것일까. 행정부의 중요한 현안은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과 각 부 장관들이 참석하는 국무회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결정기구’가 있다. 여권 당·정·청 수뇌부들의 모임인 ‘11인회의’가 바로 그것. 당에서는 문희상 의장과 정세균 원내대표, 원혜영 정책위 의장이 참석하고 정부에서는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 김근태 정동채 장관이, 청와대에서는 김우식 비서실장과 문재인 민정수석, 김병준 정책실장, 조기숙 홍보수석이 참석한다. 일부에서는 국무회의를 능가하는 ‘옥상옥’ 정책 결정 기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숨겨진 최고의결기구요, ‘지분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11인회의’는 ‘8인회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당·정·청 ‘8인회의’ 모임이 있기 전에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는 당과 청와대 인사들만 정기적으로 ‘비공식’ 모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인회의’ 소식에 정통한 열린우리당 관계자 A씨는 이에 대해 “당시 당의 주요 당직자와 청와대 수석들이 매주 토요일에 한번씩 모여 의견 조율을 했던 것으로 안다. 물론 비공개 비밀 모임이었다. 그런데 이해찬 총리 체제가 들어서고, 정치인 출신 정동영 김근태 정동채 장관이 입각하면서 정부쪽 실세 정치인들도 모임에 들어오게 된 것으로 안다. 이때 이 총리가 적극적인 아이디어를 내 일주일에 한번씩 정례 모임을 가지게 된 것이다”라고 밝혔다.
8인회의가 만들어진 시기는 이해찬 총리가 출범했던 2004년 7월 초로 알려진다. 지난해 11월 이 모임의 존재를 최초 보도했던 한 기자는 이에 대해 “7월 여당 내에서 분양원가 공개를 두고 이견이 크게 불거진 게 결성 계기가 됐다. 당초 신기남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당·정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그 차선책으로 만들어진 게 이 모임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8인회의’의 멤버 구성을 보면 권력의 흐름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초기 8인 모임 멤버는 이부영 의장, 천정배 원내대표, 이해찬 총리,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근태 복지부 장관, 정동채 문화부 장관, 문재인 민정수석, 이병완 홍보수석(정찬용 인사수석도 주요 멤버였지만, 현안이 있을 때만 주로 참석했다) 등이었다. 모두 ‘친노직계’로 부를만한 인적 구성이다.
▲ ‘11인회의’ 멤버인 이해찬 총리, 정동영 김근태 장관(왼쪽부터). | ||
그런데 이 모임은 참여 인사들의 구성이 그동안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래서 그 흐름을 보면 노무현 정권의 권력 판도를 간접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먼저 이해찬 총리와 문재인 수석, 그리고 정동영 김근태 정동채 장관 등은 모임이 만들어지고 현재까지 계속 레귤러 멤버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국정에 대한 영향력과 대통령의 신뢰가 약화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반면 다른 인사들의 경우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그 입지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김우식 비서실장의 경우 그동안 계속 불참하다가 올해 들어 최근에서야 정규 멤버로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이부영 전 의장은 “김우식 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 등 청와대 일부 인사들의 경우, 노 대통령이 그들을 정치인들과 어울리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에 불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일부 정책수석들은 특별한 현안이 있을 때 한 두 번 끼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그러나 비서실장은 한번도 안나왔다”고 밝혔다. 김병준 정책실장도 처음에는 모임에 참석하다가 올해 초 빠진 뒤 최근에야 다시 김 비서실장과 함께 합류하게 됐다.
하지만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의 경우, 이병완 홍보수석이 나간 자리를 꿰차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 모임이 ‘11인회의’로 확대되면서 원혜영 정책위 의장, 조기숙 홍보수석 등이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들이 여권 내 ‘뉴 파워’로 부상할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차기 대권 주자로도 주목받고 있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도 이 모임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돼, ‘12인회의’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11인회의는 토요 휴무제 때문에 지난 6월17일부터 매주 금요일에 개최된다고 한다. 장소는 보통 총리공관. 오후 4시 정도에 모여 간단한 티타임을 가진 데 이어 약 2~3시간 정도 난상 토론이 벌어진다고 한다. 토론이 길어지면 방으로 간식이나 식사가 들어오기도 한다. 이때에는 각자가 꺼낸 의제를 가지고 ‘계급장 떼고’ 격렬한 의견 개진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통 이해찬 총리가 ‘화두’를 계속 던지고, 발언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11인회의의 시작 시간과 모임 장소는 그때그때 다르다. 이해찬 총리나 당 의장 일정을 우선 고려해, ‘번개’로 시간과 장소를 정한다고 한다. 총리실 한 관계자는 “총리공관에서 주로 열리지만 당 의장이나 다른 참석자들이 ‘오늘은 여기에서 하자’라고 하면 갑자기 장소가 변경되기도 한다. 시간도 참석자들끼리 서로 연락을 통해서 급하게 조정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배석자가 없다. 참석자들의 발언도 기록되지 않는다.
11인회의라는 모임이 빛을 발하는 것은 여기에서 이루어진 의제가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부영 전 의장은 이에 대해 “당시 4대 입법 문제로 참석자들끼리 의견이 많이 엇갈렸지만 그래도 조정이 잘 됐다. 연내에 처리하자는 입장과 경제 입법 처리를 위해 사학법, 신문법 등 야당과 절충 가능한 것만 하고 국가보안법은 보류하자는 의견이 맞섰다”고 전했다. 이때 모임에서 ‘속도조절의 필요성’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는데 실제로 과거사법 하나만 처리하게 되었다. 모임의 결론이 여당의 중요 입법 처리과정의 바로미터가 되었던 셈이다.
▲ 오른쪽부터 문희상 당의장, 정세균 원내대표, 문재인 수석. | ||
그런데 최근 11인회의는 그동안의 ‘음지’에서 벗어나 점차 당·정·청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여권의 컨트롤 타워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이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정책에 많이 반영되면서 그 중요성도 높아졌다. 그래서 문희상 의장이 ‘기록도 남겨야 집행에도 반영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기록에 남기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이 반대해서 기록에 남기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도 ‘실무기구는 만들자’는 쪽으로 정리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국무회의를 뛰어 넘는 이 모임의 ‘파워’를 두고 말들이 많다. 참석 멤버도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끼리만 참석하고, 여기에서 결정된 사안들이 각 부처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공식 채널을 제쳐둔 실세들의 초법적인 막후 모임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권 내에서도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조율할 수 있는데 굳이 참여정부 내에서 그런 모임을 가질 필요성이 있느냐. 자칫 과거정권의 관계기관대책회의와 같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의원도 있다.
하지만 이부영 전 의장은 이에 대해 “세계 어느 나라가 여당과 정부 사이의 현안들을 조정 안하는 나라가 있나.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라며 이 모임의 필요성을 강변한다. 열린우리당의 한 재선 의원도 이에 대해 “현 정부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책임 있게 현안을 논의해보자는 차원에서 이 모임을 이해하면 된다. 어떻게 운영되느냐의 문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