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고위당정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한 김근태 의원.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는 ‘특사’를 통해 북측에 남북 보건분야 장관급 회담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한 김 장관은 정부 주요 부처가 참여하고 있는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도 복지부가 들어가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 최근 이해찬 총리의 결재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 교류를 전담하는 인력도 배치할 예정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런 김 장관의 ‘대북 행보’에 뭔가 다른 배경이 있지 않느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전격 면담을 통해 대권주자로서 상종가를 치자, 그에 ‘대응’하기 위해 부랴부랴 대북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김 장관측은 “최근 남북간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 문제가 커지면서 복지부도 적극적으로 당국간 협상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김 장관의 적극적인 대북 행보 속뜻을 짚어봤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최근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남북 교류 협력 문제에 부쩍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김 장관은 지난 6월7일부터 10일까지 복지부 고위관계자 A씨를 북한에 ‘특사’로 보내 남북 보건협력 문제를 논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 B씨는 이에 대해 “A씨가 지난 달 초 북한을 방문해 보건분야 장관급 회담을 제의했던 것으로 안다. 그는 ‘앞으로 복지부가 보건분야와 관련해 적극적인 지원을 하겠으니 보건분야 당국자 장관 회담을 열자’고 했던 것으로 들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의 대북 ‘특사’로 지목된 보건복지부 고위관계자 A씨는 자신의 방북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 6월7일부터 10일까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등이 지원한 정성수액(링거) 공장 준공식 참석차 평양을 방문한 바 있다. 준공식에 참석했을 때 마침 그곳에 보건 보건부 차관이 나와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보건의료 분야에서 협력을 좀 더 돈독히 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북측에 장관급 회담을 제의한 사실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굳이 확인해줄 필요가 있겠느냐”며 제의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또한 “현재 경제 농수산업 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통일부 주도가 아닌, 남북 당국간 직접 회담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이에 맞추어 보건협력 분야도 지금까지의 NGO(비정부기구) 차원에서 벗어나, 복지부와 북한 보건 당국이 큰 차원에서 돈독하게 협력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통일부가 어디까지나 주무 부서이기 때문에 우리가 독자적인 협력사업을 하진 않을 것이다. 확대 해석을 말아 달라”며 선을 그었다.
특히 A씨는 자신이 ‘특사’로 북한을 방문한 것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민간단체 회원들과 같이 공개적으로 방북했기 때문에 특사 차원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부 소식통 B씨는 이에 대해 “남북정상회담의 특사처럼 특수한 경우에는 신분을 철저하게 비밀로 부친다. 하지만 그 외에는 반 공개적인 특사 형태로 간다. 복지부 등은 NGO를 통해서만 북한에 갈 수 있다. 정부 ‘특사’들이 민간단체 회원들과 같이 민간협력 사업에 참석하지만 실제로는 특사 활동을 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국정원의 비밀 특사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이번 A씨의 방북 배경은 대외비로 분류된 기밀 사항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지난 국민의 정부 때도 김화중 장관이 민간단체 굿네이버스를 통해 특사를 파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근태 장관이 최근 들어 남북 교류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정황은 또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89년부터 남북 교류 협력에 관한 심의 의결기구로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남북 교류협력추진협의회는 위원장인 통일부 장관을 포함, 15인 내외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주요 위원은 재경부 외교부 법무부 산자부 차관 등과 NSC 사무차장, 국정원 3차장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 기구는 대북 지원을 심의 의결하는 중요한 조직이다. 그런데 이 기구의 멤버에 복지부는 빠져 있었다고 한다.
앞서의 소식통 B씨는 이에 대해 “복지부는 그동안 이러한 남북교류협의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김근태 장관이 남북 교류에 높은 관심을 보이자 뒤늦게 이런 중요한 기구가 있는 것을 알고, 복지부도 여기에 끼워달라고 통일부에 협조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통일부 실무담당자는 이에 대해 “복지부에서 약 한 달 전에 복지부도 남북교류협력위원회에 넣어달라고 공문을 보내왔다. 아마 조만간 총리 결재가 나면 복지부도 이 기구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그동안 대북 협력 사업을 국제협력담당관실에서 해외 업무와 함께 처리해왔다. 북한 문제는 통일부 주관이기 때문에 담당자도 따로 없이 통일부를 측면 지원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김 장관의 ‘특별 지시’로 인사 직제 개편 때 국제담당관실에 남북 보건협력 사업만을 전담할 사무관 1명을 배치하기로 했다고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앞으로 복지부 차원에서 보건 협력 분야를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복지부 자체 인력 중 사무관 한 명을 대북 문제 전담으로 배치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왜 김근태 복지부 장관이 최근 들어 부쩍 남북 교류 협력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 지난 6월17일 방북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건배하고 있다. | ||
통일부는 남북 관계와 북한 핵문제 등 굵직한 사안들이 많아 차기를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자리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문제 등 골치 아픈 문제는 많고 일을 해도 티는 잘 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 큰 꿈을 꾸고 있는 차기 주자의 자리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결국 정동영-통일, 김근태-복지로 교통정리가 됐지만, 양측이 대권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관계를 유지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다가 최근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계기로 일약 국제적인 위상을 가진 정치인으로 발돋움하면서 대권 경쟁에서 한 발짝 앞서나가자, 김근태 장관측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정치적’ 배경 때문에, 김근태 장관이 최근 들어 부쩍 남북 보건협력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복지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 B씨는 이에 대해 “김 장관은 30여 년 동안 재야에서 통일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통일문제에 관한 한 정동영 장관보다 한 수 위다. 하지만 지난해 개각 때 자신의 전공이던 통일부에 입성하지 못해 굉장히 아쉬워했다. 그런 이유에다 최근에는 정동영 장관이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며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자 대권주자로서 더욱 위기의식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아랫사람들에게 남북 관계와 관련해 복지부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파악해보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한편 대북 사업을 두고 두 대권 주자 간의 미묘한 신경전도 펼쳐지고 있다. 최근 안명옥 한나라당 의원은 ‘남북보건의료의 교류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한 바 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복지부 장관이 남북 보건협력 문제의 주체가 되어 적극적인 정책 수립을 주문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 보건협력 문제도 전담해온 통일부로서는 당연히 난색을 표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공청회를 담당했던 안명옥 의원실 관계자는 “통일부에서는 ‘모든 통일정책을 관장하는데 이렇게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남북교류 사업에 나선다면 대북 정책에 혼란이 온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 법은 시기상조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복지부로서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김근태 장관의 대북 행동 반경이 공식적으로 넓어지기 때문에 매우 환영할 만한 것이다. 결국 통일부 반대로 이 법 제정은 무산됐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라이벌’ 김근태 장관의 대북 교류 사업 참여에 부담을 느끼고 법 제정을 강하게 막았다는 ‘정치적’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통일부 관계자는 “한마디로 난센스다. 남북관계는 통일부가 주무부처로서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보건협력 분야는 정부가 전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민간차원에서도 같이 한다. 그래서 복지부와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권을 구실로 남북 협력 문제를 왜곡시키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복지부측에서도 자신들의 독자적인 대북 채널 가동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염려해서인지 통일부와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최만영 복지부 정책보좌관은 이에 대해 “김 장관이 최근 대북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 보건분야에 대한 협력 필요성이 커지면서 복지부의 역할도 커지는 것뿐이다. 하지만 통일부의 대북 정책 큰 그림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 보좌관은 “앞으로 통일부에서 미처 관심을 두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의도 하고 계속 문제제기를 할 생각이다”고 밝혀 복지부가 대북 활동 영역을 넓힐 계획을 가지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과연 김근태 장관의 남북 보건협력 드라이브 정책이 뒤처진 정동영 장관과의 대권 레이스에서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