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회생법원은 지난 5월 29일 에버코스에 대해 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내렸다. 법원 공고에 따르면 에버코스의 법률상 관리인은 전태영 대표로 회생채권·회생담보권 신고 기간은 6월 20일부터 7월 10일까지다. 에버코스와 거래하던 원부자재 업체들은 회생절차 안에서 미수금을 신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에버코스 회생 여파가 원부자재 업체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버코스가 LG생활건강 생활용품·화장품 물량을 맡아온 협력사였던 만큼 납품 차질은 LG생활건강 공급망 문제로도 번지고 있다.
LG생활건강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에버코스는 LG생활건강 OEM 물량을 많이 맡아온 곳이라 문제가 적지 않다”며 “아직 제대로 납품받지 못한 상품들도 있고 SKU(품목 단위)도 많아 생산이 원활하지 않다고 다른 제조사로 바로 옮기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에 그 정도 생산 여력이 있으면서 LG생활건강 품질 기준과 가격 조건을 맞출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괜찮은 곳들은 이미 대기 물량도 상당하다”고도 했다.
전자공시에서도 에버코스는 LG생활건강 생활용품 부문 주요 매입처로 확인된다. LG생활건강 2025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HDB(생활용품) 부문에서 ‘칫솔 등 상품 판매’ 항목 매입액은 4467억 원으로 HDB 총 매입액 7983억 원의 56.0%를 차지했다. 주요 매입처에는 에버코스와 럭키산업 등이 기재됐다. 올해 1분기 보고서에서도 같은 항목 매입액은 1243억 원, 비중은 57.4%였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대체 제조사를 찾는 일은 처방과 원료, 용기, 품질 기준을 다시 맞춰야 하는 문제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며 “LG생활건강이 처방을 갖고 있는 OEM 제품이면 대체 제조사를 찾는 속도가 빠를 수 있지만 에버코스 쪽 기술이나 생산 노하우가 들어간 품목이면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제품별로 독보적인 원료나 용기, 생산 공정이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원부자재 업체들의 불만도 LG생활건강 쪽으로 번지고 있다. 앞서의 LG생활건강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원부자재 업체들이 에버코스에서 받을 돈이 묶였다며 LG생활건강 쪽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LG생활건강을 믿고 에버코스와 거래를 텄는데 대금을 못 받았다는 취지다. LG생활건강 입장에서는 모든 대금을 정상적으로 정산했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으로서는 시점도 좋지 않다. 회사는 올해 1분기 연결 매출 1조 5766억, 영업이익 1078억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1%, 24.3%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면세 물량 조절, 해외 마케팅비 확대, 중동 이슈 등을 이유로 2분기 실적 확인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커버 중인 증권사들의 투자의견도 대체로 보유(HOLD)에 머물러 있다.
이와 관련, LG생활건강에 입장을 문의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에버코스는 1995년 설립된 화장품·생활용품 제조업체다. 회사 소개자료에는 화장품, 의약외품, 방향제, 생활용품 등을 생산하고 OEM·ODM 방식으로 사업을 한다고 기재돼 있다. 2001년 LG생활건강 액체세제 OEM 계약을 시작했고 현재는 청주공장에 생활용품과 화장품 생산설비, R&D센터와 품질관리 조직을 갖춘 중견 제조사다.
업계에서는 에버코스의 회생 배경을 두고 대형 고객사 물량 이탈 등으로 인한 실적 하락, 품질 관련 비용 부담, 납품단가 압박 등이 겹쳤다는 말이 나온다. CE평가정보 기준 에버코스 매출은 2022년 872억 원, 2023년 1007억 원까지 늘었다. 그러나 2024년 895억 원, 2025년 818억 원으로 줄었다. 영업손실도 2022년 46억 원, 2023년 7억 원, 2024년 23억 원, 2025년 27억 원으로 이어졌다. 매출 1000억을 넘겼던 해에도 영업흑자를 내지 못한 셈이다.
에버코스 사태는 K-뷰티 호황과 제조 현장의 온도 차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5년 한국 화장품 수출은 114억 달러로 전년보다 12.3%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스맥스는 올해 1분기 연결 매출 6820억, 영업이익 530억 원을 기록했고 한국콜마는 1분기 매출 7280억, 영업이익 789억으로 양사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다.
최근 K-뷰티 성장은 마케팅 등에 강한 인디 브랜드가 제품 개발·처방·품질관리·글로벌 규제 대응까지 가능한 대형 ODM사와 결합하면서 성장한 측면이 크다. 브랜드사가 콘셉트와 판매를 맡고 대형 ODM사가 처방 개발과 생산을 통합 제공하는 구조다. 이 경우 ODM사는 단순 생산업체보다 높은 단가와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에버코스처럼 대형 종합화장품·생활용품 회사의 외주 생산을 주로 맡아온 OEM 성격의 제조사는 수익 구조가 다르다. LG생활건강 같은 브랜드사는 자체 연구개발과 품질 기준을 갖고 있어 제조사에 개발 전반을 맡기기보다 정해진 처방과 사양에 맞춰 생산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제조사는 대량 생산 물량을 확보할 수 있지만 단가 협상력은 약해지고 원부자재 가격 상승이나 재고 부담을 흡수하기 어렵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OEM은 브랜드사가 처방을 개발하고 제조사는 생산을 맡는 방식이고 ODM은 개발까지 해주는 방식이라 단가와 수익성이 다르다”며 “에버코스처럼 생산 중심으로 움직이는 회사는 매출이 커도 이익이 많이 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화장품 포장에는 제조업자와 책임판매업자를 표시해야 하다 보니 해외 바이어와 브랜드사들이 이름 있는 대형 제조사로 몰리는 경향도 있다”며 “그 과정에서 중소 제조사는 낮은 단가로라도 주문을 따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화장품 제조업계의 회생 사례는 이어지고 있다. 마스크팩 브랜드 메디힐 제조사로 알려진 이시스코스메틱은 2024년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인천 소재 화장품 OEM·ODM 업체 비씨엘도 지난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뒤 매각 절차를 밟고 있다. K-뷰티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는 동안 일부 중소·중견 제조사는 유동성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화장품은 레시피와 콘셉트가 핵심이기 때문에 제조사를 옮길 때 내부 정보와 판매 정보가 공유될 수밖에 없다”며 “여러 곳에 함부로 분산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파이는 커지고 있지만 성공하는 브랜드와 제조사에 물량이 몰리는 구조라 유동성 위기로 신음 중인 회사도 많다. K-뷰티 호황이라는 말만으로 제조 생태계 전체가 좋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