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일 김승규 국정원장이 안기부의 불법도청 사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런 가운데 전직 국정원 요원들로부터 “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 시절, 안기부가 사회 지도층의 은밀한 사생활을 촬영했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을 대상으로 한 ‘몰래 카메라’(몰카)가 촬영됐다는 것.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단언컨대 비디오를 촬영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해명처럼 <일요신문>이 접했던 증언은 낭설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몰카 촬영이 자행됐던 것일까. 만약 이러한 증언이 사실이라면 몰카 테이프에 담겨 있을 지도층 인사들의 ‘은밀한 사생활’은 어떤 그림일까. 그리고 이 몰카는 어떤 용도로 활용됐을까. 기자회견을 통해 각종 의혹을 지우려 안간힘을 썼던 국정원으로 또다시 세인들의 시선이 몰릴 것으로 보인다.
미림팀이 암약했던 지난 90년대 안기부에 근무했던 복수의 요원들에 따르면, 문민정부 시절 안기부에선 정·관·재계 등의 주요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비디오를 촬영했다고 한다. 과거 군사정권에서도 간혹 비디오테이프가 촬영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90년대 문민정부에 들어와서 비디오 촬영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안기부가 도청 테이프만이 아니라 불법으로 비디오테이프를 제작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안기부는 김대중 정부 이전에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촬영했다. 몰래카메라에는 주요 인사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지도층 인사가 이성(異性)과 함께 호텔 등을 출입하는 장면도 촬영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도청 테이프가 당시 정국과 재계 흐름을 파악하는데 활용됐다면, 몰카는 해당 인사의 ‘약점’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들의 증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도청테이프 사건에 이은 ‘제2의 테이프’ 파문이 일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물증을 확보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증언에 따르면, 안기부가 몰카를 촬영했던 시점은 90년대. 따라서 실제 촬영됐다면, 문제의 테이프가 현재도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국정원이 이미 폐기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압류 물품 가운데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도청 테이프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공씨의 집을 압수수색할 때, 도청 테이프 등과 유사한 비디오테이프도 동시에 압수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안기부가 몰래 촬영한 비디오테이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이 공씨에게서 몰카 테이프를 확보했다면, 공개했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 검찰이 이를 굳이 감출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소식통도 “미림팀에서 몰카를 촬영했는지, 별도의 비밀 조직이 따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정원 내에서도 미림팀 같은 비밀조직은 극소수만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몰카 촬영팀이 있었다 해도 실체에 접근하기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은 다르지만 그동안 녹취나 비디오테이프 등으로 인해 정치인 등이 치명상을 입은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지난 92년 12월 대선 직전. 부산 초원복집에서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 등이 부산지역 관계기관장과 김영삼 후보 지원 대책회의를 가졌다가 도청테이프가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특히 지난 97년엔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전화통화 녹음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로 구속되기도 했다. 97년 3월 현철씨는 YTN 사장 선임과 관련해서 당시 대통령정무수석이었던 이원종씨와 나눴던 전화통화 녹음테이프가 공개돼 파장이 일었다. 이후 전화 녹음테이프를 공개했던 비뇨기과 의사 박경식씨가 전화통화하는 장면을 담은 폐쇄회로 TV의 비디오테이프를 추가로 공개, 결국 현철씨가 구속됐던 것.
비교적 최근인 지난 2002년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 비리 의혹사건에도 녹음 테이프가 등장했다. 당시 미래도시환경 대표였던 최규선씨는 정관계 인사들과 전화통화하면서 이를 녹음해뒀다. 그런데 이 녹취록을 최씨의 운전기사였던 천호영씨가 공개했던 것. 최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고, 홍걸씨에게 돈이 전달됐다는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안기부와 현 국정원 등에서 몰카를 촬영했다는 증언이 나온 적은 없었다. 따라서 몰카 촬영 여부에 대한 진위 파악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서 국정원의 관계자는 “군사정권에서도 비디오를 촬영하지 않았는데, 문민정부에서 그렇게 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예를 들어 간첩 혐의자의 사진을 한 장 찍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비디오 촬영과 같은 위험한 일을 했겠느냐. 단언컨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비디오 촬영을 강하게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