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중앙언론사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 ||
“내가 갖고 있는 생각 한 가지 먼저 말씀드리겠다. 위기감이란 말을 하고 싶다. 문제의식이 어느 정도 서로 공통돼 있고 공감대가 있을 때 비로소 대화도 토론도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서 다소 초점이 안 맞는다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여러분(언론)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내 쪽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내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내가 보기에 심각한 문제, 이대로 방치하면 장차 위기로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은 문제제기를 하면 대체로 언론도 냉담하고 국민도 냉담한 것 같다.”
1. 첫번째 위기-여소야대
노 대통령은 ‘연정론’ 제기의 배경을 정치적 위기에서 찾고 있다. 그는 여소야대가 정치적 위기를 심화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연정론을 필생의 작업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이 부분에 관해서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지도력의 위기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금 정치지도력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와 같은 세계적인 지도력의 위기상황을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우리는 뭐 대화 자체가 안 되는,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운영 자체가 계속 잘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쯤 되면 정치상황과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 극단적인 불신을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지도력의 위기를 겪고 있는데, 한국의 위기는 그와는 차원이 다른, 정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위기이며, 그 원인은 여소야대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려면 연정론을 통하든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선거제도를 뒤바꿔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고 있다.
“우리가 현재의 선거제도로 계속 선거를 했을 때 항상 여소야대가 나올 것 아니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 항상 야대가 되는 선거구조를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 ‘이대로 계속 갈 것이냐’라는 데 대해서 문제를 던진 것이다. 연정 얘기를 하면 정치구조 얘기가 나오는데 정치구조 얘기를 하면 지역구도 문제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지역구도 때문에 더욱더 이 위기는 심화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를 위기로 느끼지 않거나 정치하는 사람들도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데에 오히려 위기가 있다.”
노 대통령이 강조하는 것은 대연정이 꼭 될 것이라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문제를 한번 해결해 보자고 화두를 던진 것이라는 말이고, 이 화두를 중심으로 한번 고민해봐 달라는 것이었다는 뜻이다.
2. 두번째 위기-과거사
“우리의 과거사도 제대로 정리를 못 해 놨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우리가 일본을 상대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국민이나 단체가 일본을 상대로 해서 소송 걸고 있는 것이 대부분 시효에 다 걸린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내부의 문제는 똑같은 재판의 논리를 갖고 시효에 다 걸어서 국민들한테 정리해 놓지도 않고, 그러니까 우리 스스로의 과거사도 다 정리도 안해 놓고 일본한테 무슨 자꾸 얘기를 하는 것이 조금은, 조금은 장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과거사는 그를 위기로 몰아넣는 또 하나의 테마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를 갖고 누구를 지금 감옥에 다시 넣자는 것도 아니고, 누구 재산을 다 뺏자는 것도 아니다”라면서도 “최소한의 정리는 해야 된다”고 재차 강조한다. 사회 정의가 살아있다면, 사회가 앞으로 올바른, 국민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도록 뭔가 희망하는 사회라면, 과거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정리는 해 둬야 된다는 논리다. 노 대통령의 표현에 따르면 이런 것을 갖고 정쟁으로 삼는 게 이상한 일이다. 정쟁으로 삼는 것에 대한 불만은 야당뿐 아니라 언론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더 다른 대안이 없거나 아닌 것을 갖고, 또 나와 있는 대안을 갖고 열심히 해 가면, 시간이 가면 길이 나오게 되어 있는데, (언론이) 그냥 비판(만) 하니 죽겠다. 그래서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들한테 좀 기사를 ‘이제는 대안 경쟁으로 해 달라.’ 그렇게 부탁을 드리고 싶다. 대안이 아닌 기사에 대해서는 일일이 우리도 이제 대응을 하려고 한다. 과감하게 이의를 제기하려 한다.”
3. 위기극복의 청사진
노 대통령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상하는 그림은 간단하다. ‘경제는 이해찬 총리,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는 정동영 통일 장관에게 일임하고, 대통령 자신은 정치를 챙긴다’는 것이다. 정치부장단 오찬간담회에서 나온 향후 위기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은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이렇게 정리된다.
“지금 정책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긴 있지만 어떻든 나는 열심히 했다. ‘경제 안하고 이제부터는 정치만 하느냐’ 이러는데, 사실 솔직히 보면, 이해찬 총리, 일상 경제 운용에 관해서 이해찬 총리가 나보다 더 유능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또 외교안보 부분에 있어서, 특히 대북 정책 부분에 있어서 정동영 장관도 잘 보좌해 가고 있다. …(나는) 다시 한번 (연정과 과거사 문제를 위한) 정치협상을 제안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던진 화두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함께 고민할 때까지 여러 방법으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일련의 논의들을 통해 어떤 정치구조나 과거사의 장애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위기가 발생하고 깊어지는 일이 없도록 관리해 나갈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그는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