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의 1심 무죄 판결로 방산비리 합수단이 충격에 휩싸였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합수단 출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고검 산하 국정감사장.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질의 도중 김 단장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선 “주변에서 유능한 검사란 얘기 많이 들었다. 우리 지역 쪽에서도 단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서 방산비리 합수단 수사에 대한 질의를 시작했다.
김기동 단장
그로부터 4일 뒤 통영함 장비 납품비리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황 전 총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법원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통영함에 장착할 선체고정 음파탐지기 구매사업과 관련해 미국 하켄코에 이익을 주고 대한민국에 손해를 가하려는 배임의 범위를 가지고 임무위배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할 수 없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합수단은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역력했다. 김기동 단장은 법원 선고 후 곧바로 자료를 정리해서 합수단의 입장을 내겠다는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고, 평소 보안카드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했던 합수단 사무실도 “언제든지 와서 물어보라”며 개방했다. 이어 몇 시간 뒤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법원이 무죄를 판단하게 된 근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자료에서 합수단은 “이번 판결은 방위사업관리규정 등 제반 법령의 기본 취지와 절차를 지키지 않아 국방력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한 방위사업비리 주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결과를 초래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며 “법정에서 드러난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많은 물적 증거와 증언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피고인들의 변명만을 취사한 판결로 판단되므로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지난 7일 항소했다.
통영함이 수사 대상에 오른 이유는 핵심 장비인 음파탐지기가 ‘먹통’인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면서 세월호 구조 작업에 동원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통영함 문제를 계기로 지난해 11월 합수단을 출범시키고 대대적인 방산비리 사정에 나섰다. 합수단은 황 전 총장이 통영함 비리의 정점이라고 보고 그를 현직에서 끌어내려 구속기소 했다.
그랬던 만큼 황 전 총장에 대한 무죄 선고는 김 단장에게는 사실상 굴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서울중앙지검 3차장 산하에서 경남기업을 수사하던 중 성완종 전 회장이 자살하고, 포스코 비리 수사 과정에서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배성로 전 동양종합건설 대표 등 포스코 비리의 정점에 있는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번번이 기각될 때마다 합수단은 종종 비교대상이 됐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검찰 관계자는 “합수단은 별다른 잡음 없이 조용히 수사를 잘하고 있다는 게 그동안 검찰 안팎의 평가였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그래서 사람이 죽고 표적 수사라는 비판을 받아온 3차장 산하 수사와 자주 비교됐는데 결국 무죄가 나오면서 좀 굴욕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무죄 선고 후 검찰 안팎에서 무리한 기소 논란이 재연되고 있는 것도 김 단장으로선 썩 기분 좋지 않은 대목이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김 단장은 프라이드가 강한 사람인 데다, 실제로 원전비리 수사를 할 때 보더라도 수사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라며 “그런 만큼 황 전 총장에 대한 수사가 무리했다고 비판 받는 것은 아마도 뼈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단장은 합수단 출범 7개월째던 지난 7월 황 전 총장뿐만 아니라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과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63명(구속 47명, 불구속 16명)을 기소했다. 사건 수로는 총 12건에 거의 1조 원에 가까운 규모의 비리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산비리 척결을 지시한 데다, 사회 전반적으로 방산비리가 심각하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수사에 힘이 실린 결과였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합수단 수사 당시 현직이었던 황 전 총장을 구속시키면서 주로 전직들만 대상으로 했던 방산비리 수사에 활기가 찼다”며 “따라서 김 단장 등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보강 증거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무죄를 뒤집고 이 수사의 명분을 찾으려고 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김근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