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영화 <미스터 아이돌>의 한 장면.
가요계 ‘빅3’라 불리는 SM-YG-JYP와 쥬얼리, 제국의아이들 등을 배출한 스타제국이 2013년 사재기 브로커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음원 사재기 이야기가 불거질 때마다 많은 한류스타를 보유한 자사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이렇듯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음원 사재기가 가요계를 좀먹고 있다고 외친다. 이 의견에는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실체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이번에도 변죽만 울리다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사재기와 ‘팬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팬질’은 팬들이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단체행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대규모 행사나 선물, 도시락 등을 준비하는 것이 팬질에 해당된다.
하지만 더 큰 팬질은 ‘1등 만들기’다. 좋아하는 스타가 신곡을 발표하면 음원 순위와 방송 차트에서 정상을 밟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음원과 음반을 구매하고 SNS 추천, 방송 점수 등을 높이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톱 아이돌 그룹 A와 B가 맞붙은 지난여름, 신곡 발표 후 몇 주가 지나고 또 다른 가수들의 음원이 발표되자 두 그룹의 순위가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낮 동안에는 밀리던 순위가 다음 날 새벽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두 그룹의 음원 순위가 1, 2위로 치고 올라왔다.
A 그룹의 관계자는 “두 그룹의 팬들은 대리전처럼 자존심 싸움을 한다”며 “다른 가수들의 팬들의 활동이 뜸한 새벽 시간에 좋아하는 그룹의 음원을 집중적으로 구매해 실시간 순위를 올리곤 한다”고 말했다.
얼핏 이런 순위 뒤바뀜이 사재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팬들의 중복 구매를 통한 엄연한 공정 경쟁이다. 더 팬덤이 크고, 더 충성도가 높은 팬을 확보한 가수들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혜택인 셈이다. 이러한 팬질은 회사 차원에서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적인 조치는 아니기 때문에 사재기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가수 박진영(위)과 이승환이 음원 사재기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모습.
문제는 팬층도 얇고, 일반 대중도 모르는 가수나 그룹의 곡이다. 한 가수의 매니저는 “1분이라도 1위를 하면 된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는 실시간 차트의 맹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집중적으로 특정 음원을 사들이는 사재기로 1위에 올랐을 때 이를 캡처한 화면을 바탕으로 ‘음원 1위’라는 제목을 붙여 홍보하는 식이다.
이 매니저는 “가요계에서 배포되는 보도 자료를 보면 저마다 1위를 자처한다. 하지만 그들을 1위로 기억하는 이들은 없다”며 “실시간으로 바뀌는 순위 차트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무리하게 사재기를 통해서라도 1위에 오르겠다는 잘못된 판단이 가요계를 멍들게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사재기가 가요계의 병폐라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다음 행보는 ‘과연 뿌리 뽑을 수 있느냐’다. 이에 대해 가요계 관계자들은 “모두가 안 하면 된다”고 말한다.
박진영은 <뉴스룸>에서 “남들은 하는데 넌 왜 안 하냐고 말한다”고 털어 놓았다. 선량한 이들은 가만히 있다 보면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만연되면 사재기의 유혹을 뿌리치던 이들도 괜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사재기에 동참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제도적으로 음원 사재기 논란을 뿌리 뽑기 위해 지난 5일 (사)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음콘협) 측은 제도적, 정책적, 기술적 조치가 동시에, 지속적으로 수반되도록 4가지 대책을 수립해 실행하겠다고 밝혔다.
음콘협 측은 사재기 행위 처벌을 위한 법안 마련, 음원차트 정책위원회를 통한 사재기 방지의 정책적·기술적 가이드 공유 및 사재기 패턴 연구 및 억제책 마련, 사재기 패턴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사재기 신문고 운영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하나의 대책이 나오면 이를 피해가는 또 다른 사재기 패턴이 나올 것”이라며 “가요를 만들고 유통하는 이들이 ‘네가 하면 나도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안 하니 너도 하지 말라’는 자발적인 견제와 시장 정화를 위한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