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20일 박근혜 대표(왼쪽)와 이명박 시장이 복원된 청계천을 시찰하기 전에 서울시청에 마련된 만찬장에서 건배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실제로 피감기관의 ‘수장’으로 의원들의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야 하는 대선주자가 있는가 하면, 여러 상임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집중공세를 받으며 동정을 사고 있는 케이스, 그다지 국감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부러움을 사는 경우 등 유형도 가지가지여서 눈길을 끈다.
여권에서 국감이 가장 괴로운 ‘잠룡’(潛龍)은 이해찬 총리다. 이 총리는 국감 직전인 9월 중순 KBS 보도 등을 통해 자신이 소유한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소재 땅을 놓고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야당으로부터 연일 맹타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총리를 둘러싼 땅 투기 의혹은 국감 첫날(9월22일) 정무위의 총리비서실 감사에서부터 핵심 이슈로 등장했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이 총리는 대부도 땅을 취득하면서 영농경력이 15년이고 직접 영농을 하겠다는 등 총 세 가지 거짓말을 했다. 영농경력 허위기재는 농지법 제10조 1항 6호를 위반한 것이다”고 지적했다.
남 의원은 또 부동산 투기를 ‘사회적 암(癌)’이라고 한 이 총리의 발언을 겨냥, “남이 하면 ‘사회적 암’이고 총리 자신이 하면 ‘정당한 투자’인가. 이 총리 자신이 부동산 투기를 암이라고 했는데 이 총리 본인이 암을 퍼뜨리고 있다면 문제다”라며 극언에 가까운 말로 공세를 폈다.
이 총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부동산 수난’이 본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가족들에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 당장 행정자치위의 행정자치부 감사(9월23일)에서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은 정부의 송파 신도시 조성계획과 해당 지역에 존재하는 이 총리 형 소유의 부동산을 연관 지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 의원은 “이 총리가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인 95년 총리의 형이 송파구에 7억8천만원의 건물을 구입한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라며 “이 총리의 아이디어로 송파 신도시 개발 계획이 입안된 것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충분히 의혹을 가질 만하다고 보느냐”고 날을 세웠다.
물론 이 총리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국감에 뒤이은 대정부 질문(10월24~31일)에서도 ‘이해찬 때리기’를 계속 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이 총리의 수난은 10월 하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반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6월17일)과 6자 회담 공동성명 합의(9월19일) 등 잇단 ‘호재’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한결 여유가 있는 편이다. 정 장관은 통일부 1차 감사에서 “6자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북한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옵서버로 참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원국의 의사를 타진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남북관계의 향후 전망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여 눈길을 모았다.
여권 주변에서는 당 복귀 시점에 대해 그동안 언급을 자제하던 정 장관이 추석 연휴기간인 9월18일 SBS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이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작은 역할이나마 보탤 각오”라고 밝힌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 장관이 이례적으로 당 복귀 시기가 임박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1년3개월에 걸친 통일부 장관 재임 기간이 ‘성공작’으로 평가받을 것이란 자신감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초보 장관’으로 치렀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국감은 퇴임을 앞두고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감사인 만큼 정 장관에게 부담될 것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 정 통일장관과 ‘동시 당 복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올해 국감에서 호재는 별로 없고 ‘악재’가 널려 있어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에다 별반 진전이 없는 국민연금 개편작업, 대한적십자사의 부실한 혈액관리 논란 등 ‘매 맞을’ 거리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김 장관측은 퇴임 시점이 공론화된 가운데 이렇다 할 업적 없이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 대해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특히 김 장관이 각별한 노력을 경주해온 국민연금법 개정 작업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조차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는 터에 매듭을 짓지 못하고 물러날 경우 “‘대권 수업’을 위해 들어온 내각에서 별다른 업적 없이 나간다”란 평가가 나올까 우려하는 기색이다.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대표가 열린우리당의 집중적인 공세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회 주변에선 박 대표가 여당의 공격 타깃이 되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집중타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 9월20일 국무회의에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왼쪽)과 이해찬 총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국방부 감사(9월22일)에서 “해방 후 60년 만에 친일 진상규명법에 따라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국방부도 친일문제에 정면 대응하라”고 운을 뗀 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성토발언을 이어갔다. 임 의원이 “친일 군인인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18년을 집권하면서 군은 물론 정·관계 요직에 친일 군인을 두루 중용, ‘친일천하’를 만들고 이후 친일청산은 계속 봉쇄됐다”고 말하자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던 박 대표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고, 감사장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나라당 소속 한 국방위원은 “임 의원이 언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회 본회의장 마이크를 잡고는 ‘제가 같은 국방위에 있는 박 대표에게 얼마나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는 줄 아는가.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대표니까 10m 앞에서 인사한다’고 하더니, 오늘에야 본래의 ‘흑심’을 그대로 드러낸 것 아니겠느냐”며 “상대하기조차 싫은 양반”이라고 말하기도. 이 의원은 “임 의원이 문제의 발언을 할 당시 박 대표의 표정은 차마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라고 전했다.
문화관광(문광)-교육-과학기술정보통신(과기정) 위원회 감사에선 열린우리당이 정수장학회와 손기정옹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훼손 의혹을 소재로 박 대표와 동생 근령씨를 물고 늘어졌다. 문광위의 문화관광부 국감에서 박 대표를 국감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비판에 밀려 취소했던 민병두 의원은 “<경향신문> 강탈 사건과 손기정옹 금메달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입장을 밝혀줄 사람은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뿐”이라고 주장하며 증인채택을 신청했다. 또 김재윤 김재홍 노웅래 의원 등도 사유재산권을 침해하고 언론을 장악하려 했다며 ‘정수장학회 사회 환원’ 주장에 공조하고 나서 박 대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밖에 교육위의 교육부와 서울교육청 국감에서는 백원우 의원 등이 “2000년 선거가 있던 해에 박근혜 당시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2억3천5백만원의 판공비를 사용했다”며 “그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과기정위에선 유승희 김낙순 의원 등이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의 이사진 선정의 문제점을 지적해 국감장 주변에선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겐 박 대표의 ‘과거’말고는 감사할 거리가 없는 모양”이란 야당 의원들의 비아냥까지 나올 정도였다.
박 대표측 기류가 ‘매우 흐림’인데 반해 경쟁관계인 이명박 서울시장은 올해는 적어도 국감과 관련해서는 부담이 한결 덜하다는 평가다. 2004년 국감에선 열린우리당측이 청계천 사업 기공(2003년 7월1일)과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2004년 8월1일)을 소재로 ‘마마 보이’, ‘전시행정의 화신’이란 거친 표현을 사용하며 이 시장을 몰아붙였으나 올해는 주요 상임위에서 서울시에 대한 감사 일정을 특별히 잡은 것이 없어 ‘조용히’ 넘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은 “여당에서 집중적으로 문제 삼았던 청계천 사업이 10월1일 노무현 대통령까지 참석하는 가운데 성대한 개통식을 갖는 데다 대중교통체계 개편도 시행 초반 빚어졌던 문제가 말끔히 해결돼 (여당에서) 별로 문제 삼을 것이 없었을 것”이라며 “2004년에 워낙 국감을 세게 치른 터라 올해는 좀 쉬어가도 되지 않겠느냐”며 여유를 보였다.
이 시장측은 그러나 문광위에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난지도 골프장 개장 지연과 관련해 이 시장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계속 벼르고 있는 점은 신경이 쓰이는 눈치. 하지만 이 문제로 갈등을 빚던 국민체육진흥공단측이 최근 골프장 운영에 대한 서울시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혀 원만한 타결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손학규 경기지사도 올해 국감은 수월하게 넘어가리란 평가다. 건설교통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 국감에서 경기도가 제외된 데다 외자유치 등에서 나름대로 업적을 쌓은 만큼 여권으로 부터 별로 시달릴 소재가 없다는 근거에서다. 그러나 한편에선 손 지사가 대권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는 만큼 여권에서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만큼 떨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국감을 빌어 호흡조절에 들어간 대권주자들과 같은 기간에 오히려 거친 ‘태클’을 받아야 하는 또 다른 대권주자들. 저마다 ‘다른’ 국감을 겪은 이들이 향후 어떤 엇갈린 행보를 펼칠지 주목된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