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군호 코넥스협회 회장, 정구용 상장회사협의회 회장,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 박종수 금융투자협회 회장, 정지완 코스닥협회 회장(왼쪽부터)이 지난 1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15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개장을 알리는 타종을 울리고 있다. 일요신문 DB
정부가 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는 가장 큰 목적은 경쟁력 제고다. 거래소는 그동안 준공공기관으로서 ‘신의 직장’, ‘철밥통’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며 공기업 방만 경영의 상징으로 통했다. 이번 정부 계획의 골자는 거래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 거래소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미꾸라지를 건강하게 할 메기 역할은 누가 할 것이냐다. 금융위원회는 ‘장내 시장 간 경쟁 강화’를 이루겠다며 코스피의 경쟁 상대로 코스닥을 꼽았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서로 간에 경쟁을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상장한다면 코스닥보다는 코스피를 선호할 것이고 투자 메리트 역시 코스피가 강고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코스닥이 경쟁 상대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지금도 개별 시장으로 존재하는 두 조직을 계열 분리만으로 라이벌 구도를 만들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코스닥의 경쟁력을 키워, 코스피의 대항마로 키운다는 생각은 1차원적인 발상”이라며 “투자자 입장에서도 시가총액 1000억 원 미만의 코스닥 기업보다는 수조 원짜리 코스피 기업에 투자하기를 희망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자본시장에 경쟁 구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대체거래소(ATS) 등 민간의 참여가 불가피하지만 이와 관련한 대책도 미진하다. 정부가 ATS를 활성화하겠다며 내놓은 정책은 기존에 시장전체 5%, 개별종목 10%이던 주식 거래량 한도를 2배로 확대하고, 장외시장에 펀드 지분 거래 게시판을 신설해 사모펀드 지분을 매매할 수 있게 한 것 정도가 전부다. 사실 ATS 설립은 지난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거래소의 독점적 지위가 워낙 단단한 탓에 여태까지 단 한 곳도 설립되지 않았다.
“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는 ATS 활성화 제도다. ATS가 있다고 해도 거래소의 독점적 지위가 유지되면 이익 극대화를 위한 독점 이윤 추구 등으로 거래소의 경쟁력 제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또 거래소에 대한 시장감시기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도 논란거리다. 금융당국은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시장감시본부는 별도의 비영리법인(시장감시법인)으로 전환시킨다는 계획이다. 시장감시법인은 현행 시장감시위원회와 동일한 수준의 공적 통제권을 갖게 되며 매매체결·상장·공시 등과 관련한 감시 업무를 맡는다.
문제는 상장법인인 한국거래소지주(가칭)나 코스피, 코스닥이 공시위반 및 자본거래와 관련한 부정행위를 감시하고 적발할 수 있느냐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거래소의 공적 기능인 시장감시위원회의 기능 분리가 명확하지 않으면, 감시조직이 민간기업에 예속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며 “기존 시장감시위원회 기능을 담당할 조직은 재편되는 한국거래소지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경수 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성장성과 기술력이 뒷받침되면 지금 당장 수익성이 떨어지는 적자기업도 국내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상장 문호를 넓히겠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적자 기업은 자기자본이 1000억 원이 넘거나 시가총액 2000억 원 이상인 경우를 제외하고 코스닥 상장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거래소가 이 규제를 풀어 상장 기업을 받아주는 파격 제안을 한 것이다.
다만 코스피와 코스닥을 분리하는 것이 오히려 코스닥 시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금력이나 투자금 유치 가능성 등 대부분 측면에서 코스피가 코스닥에 비해 경쟁력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결국 상장 요건을 갖춘 중소 우량 기업이라면 코스닥보다는 코스피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또 거래소가 무리하게 상장 요건을 낮췄다가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1996년 코스닥시장 개설 후 현재까지 494개사가 상장 폐지됐는데 이 중 392개(79.4%)가 IT 버블로 ‘묻지마 상장’ 열풍이 일던 1996~2002년 사이에 사라졌다. 이에 따른 피해 규모는 약 24조 7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벤처 버블 때 자격이 부족한 코스닥 기업들에 당한 개인투자자들이 한둘이었느냐”며 “상장 요건을 낮추는 것은 부정적인 효과만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금융위는 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로 국회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금융위는 9월 정기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년에 각 분할 법인을 출범하고 거래소 IPO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국회에서 거래소의 본사 및 계열사를 어디에 둘 것이냐를 두고 다툼이 한창이라 국회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자본시장법 377조는 파생상품시장은 부산에,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서울에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을 앞두고 새누리당 김정훈 의원 등 부산 지역 의원들이 코스닥의 부산 유치를 강력히 주장하며 377조 개정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코스닥을 부산으로 옮기는 것은 거래소의 경쟁력 강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맞서고 있어 국회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조합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전국사무금융노조와 거래소 노조는 “금융위가 거래소 지주회사화를 관철하기 위해 IPO라는 미끼를 던졌다. 이 안을 저지하기 위해 전면파업을 불사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통합 이전 코스닥은 거래소와는 다른 회사였고 통합 이후에도 거래소가 적자를 메우며 끌어왔다는 점에서 코스닥에 대한 거래소 직원들의 불만은 과거부터 높았다.
김서광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