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측의 이번 명예훼손 소송은 신동주 회장이 제기한 3가지 소송에 대한 맞불작전으로 해석된다. 일요신문 DB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형제전쟁 1라운드에서 의외로 가볍게 승리를 따냈다. 지난 8월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임시주주총회에서 신동빈 회장이 신동주 회장을 밀어내며 원톱체제를 구축했다. 9월 10일 신동빈 회장은 호텔롯데 비공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신동주 회장을 등기이사에서 해임했다. 이 조치로 신동주 회장은 한국롯데 계열사 모든 등기이사직에서 배제됐다.
신동빈 회장은 이어 9월 17일 국회 정무위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한국어로 경영권 다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신동주 회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10월 1일 신동주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SDJ코퍼레이션을 설립하면서 반격에 나선 것이다.
지난 10월 8일 신동주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면서 2라운드는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신동주 회장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친필 서명 위임장을 공개하며 “신 총괄회장으로부터 법적 권한을 위임받았다”며 “한국과 일본에서 롯데홀딩스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14일 신동주 회장은 롯데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알려진 일본 광윤사의 주주총회를 열고 신동빈 회장의 광윤사 이사직 해임안, 신동주 회장의 광윤사 대표이사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신동주 회장, 민유성 고문.
또한 신동주 회장은 신동빈 회장 측을 향해 3가지 소송을 제기했다. 첫 번째는 지난 28일 첫 심리에 들어간 롯데쇼핑 회계장부 열람 등사 가처분 신청이다. 신동주 회장 측에서는 신동빈 회장이 신격호 총괄회장에게 1조 원 이상 손실을 끼쳤음에도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신동주 회장이 롯데쇼핑 회계장부를 열람하고 직접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신동주 회장 측은 호텔롯데와 롯데호텔 부산의 신동주 이사 해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신격호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해임에 대한 무효소송도 제기했다. 이 중에서 일본 법원에서 진행될 신격호 총괄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해임에 대한 무효소송이 롯데 경영권의 분쟁의 핵심으로 전망된다.
신동주 회장의 공세가 1라운드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매서워진 데는 SDJ코퍼레이션 소속 두 인물의 공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 명은 민유성 SDJ코퍼레이션 고문이고 또 한 명이 정혜원 홍보담당 상무다. 이 중에서 민 고문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산은지주 회장을 역임한 만큼 재무, 금융, 홍보 등 기업·금융 전반에 걸쳐 최적화된 인재인 까닭에서다.
민 고문은 신동주 회장과 61세 동갑내기 친구다. 그는 고문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SDJ코퍼레이션의 구성을 봐도 그의 역할이 막강한 것으로 추측된다. SDJ코퍼레이션의 변호를 맡은 조문현, 김수창 변호사가 민 고문의 경기고 동창이다. 또한 정 상무도 민 고문과 산업은행에서 같이 일한 사이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에서 신동주 회장이 패한 뒤 민 고문의 합류가 이뤄졌고 판세가 크게 변한 점도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싣는다.
신동빈 회장 측도 가만있을 수 없을 터. 이에 맞설 카드가 바로 명예훼손 고소인 셈이다. 고소인은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이사가 나섰다. 호텔롯데는 민 고문과 정 상무가 10월 중순의 언론 인터뷰들을 문제 삼았다. 신동주 회장과 민 고문은 여러 언론사들을 돌며 인터뷰를 자청했다. 편집국장 등을 만나 자신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지지를 부탁했다.
호텔롯데는 이 인터뷰에서 민 고문 등이 ‘신격호 총괄회장이 연금당한 상태나 다름없다’, ‘신동빈 회장이 집무실을 통제하고 있다. 집무실에는 CCTV가 설치됐다. 이는 감금에 준하는 수준에 달한다’는 등 11회에 걸쳐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기자회견 등을 했다는 점을 들어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민 고문 등이 지난 10월 중순 신동빈 회장 측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마련했을 때 방해했다는 점도 업무방해 혐의로 걸었다.
또한 지난 10월 16일 정 상무 등이 롯데쇼핑 건물에서 신동빈 회장실이 있는 26층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롯데쇼핑의 출입관리 업무를 방해했기 때문에 건조물 침입 및 업무방해 혐의를 추가했다. 또한 같은 날 롯데호텔 34층 신격호 총괄회장실의 집무실에서 신동주 회장이 70여 명의 기자를 대동하고 야심차게 진행했던 기자회견도 고소 항목에 추가했다. 민 고문 등이 신격호 총괄회장의 집무실에 무단으로 진입한 후 기자 등 외부인을 상주시키면서 퇴거 요구에 응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건조물 침입 및 퇴거불응 업무방해 혐의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소송은 (신동빈 회장 측이) 민 고문과 정 상무에게 보내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더 이상 나서지 말라는 시그널을 보내서 압박함과 동시에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라고 평했다. 한편 지난 30일 <일요신문>의 사실 확인 요청에 롯데그룹 측은 “아직 고소 내용에 대해 확인하지 못했다”고만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