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년 대선정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9월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개관식에서 개관식 버튼을 누르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회사진기자단 | ||
그래서 DJ는 아직도 민주당의 실질적 오너이자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 있다. 그런 DJ가 지난 8월 병원에 입원하기 전 동교동계의 한 핵심 측근에게 그의 ‘복심’을 살짝 드러낸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모은다. DJ는 그 측근에게 “아직은 때가 아니니 좀 더 기다려 봐라. 내년에 어떤 결심을 하게 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측근은 얘기를 듣고 난 뒤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DJ도 ‘대권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과연 DJ는 아직도 정치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복심’은 무엇일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DJ의 정치 드라마 마지막장을 따라가봤다.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자 여당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는 국정원이 ‘국민의 정부 때 안기부가 도청을 했다’는 사실을 발표해 DJ와 노무현 정권 간에 갈등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DJ가 지병이 악화되었다며 전격 입원하자 노무현 정권은 호남 민심 악화를 우려하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DJ가 도청 수사에 대해 정면 반발하자 여권에 점차 등을 돌리고 있던 호남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에 이해찬 총리와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DJ를 방문해 ‘호남 민심 달래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DJ가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간에 그의 ‘병상정치’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퇴임 후 꺼진 듯했던 ‘DJ의 파워’가 건재함을 과시했던 셈이다.
이렇듯 DJ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 시나리오에서 ‘이회창 변수’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할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런 점을 ‘정치 9단’ DJ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그런 DJ의 ‘복심’을 한 동교동계 핵심인사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동교동계 핵심 멤버였던 A씨는 DJ가 입원하기 전이었던 지난 여름 그의 ‘주군’과 독대를 했다고 한다. A씨는 자주 DJ를 찾아 안부를 묻곤 하는데 하루는 DJ가 향후의 정치적 시나리오를 암시하는 말을 넌지시 해주었다는 것이다.
A씨는 이에 대해 “DJ는 지난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DJ는 ‘지금은 조용히 지내도록 해라. 하지만 앞으로 언젠가 한번 기회가 올 것이다. 내년에 어떤 결심을 하게 될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때까지 기다려라’라는 말씀을 해주었다”고 전했다.
A씨는 DJ의 ‘결심’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을 하면서 “DJ가 올해 어떤 일을 특별히 할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그동안 건강관리나 하고 독서를 하면서 소일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대권 정치’가 본격화되면 정치적 행보를 할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현재로선 그때까지 때를 보며 관망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또한 A씨는 지난 2003년 민주당 분당 과정에 대한 DJ의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DJ는 A씨에게 “왜 민주당이 깨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느냐. 그렇게까지 안 되도록 막았어야 했다. 그때 분당 과정에서 (민주당 동교동계의 활동에 대해)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며 분당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DJ가 자신이 직접 만든 민주당에 대해 여전히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런 DJ의 ‘복심’을 놓고 보면 그가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도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DJ는 과연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을까.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싱크탱크인 열린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신DJP연대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에 대해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영남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듯이 DJ도 호남에서는 여전히 그 영향력이 막강하다. 예전의 위력은 아니겠지만 지난 ‘병상정치’를 통해서 그 잠재력을 확인한 바 있지 않는가. 열린우리당이 호남에서 죽을 쑬수록 그 반사이익은 DJ의 몫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면서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DJ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 지난 9월6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 개관식에 앞서 기념식수와 표지석 제막식을 갖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 한화갑 민주당 대표 등 정치권 핵심인사들이 총출동했다. 광주전남사진기자단 | ||
정가 일각에선 현 정권도 DJ의 이러한 정치적 영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청 정국을 통해 ‘DJ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회의 한 전문위원은 노무현 정권이 최근 들어 더욱 거세게 ‘DJ 압박작전’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나름대로 그 배경을 짚었다.
“지난번 SBS에서 보도한 ‘DJ의 숨겨진 딸’ 사건 이후 현 정권의 DJ 압박이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도청 수사도 신건, 임동원 국정원장이 직접 연루되었다는 정도까지 진척된 상황임을 감안하면 DJ에 대한 서면조사도 예상해볼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이 ‘DJ 죽이기’를 통해 호남 사람들이 ‘절대선’으로 믿고 있던 DJ에 대한 환상을 깨는 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다음 대선에서 무조건 DJ의 편을 드는 유권자들이 줄어들 수도 있다.”
또한 그는 “문희상 의장 등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계속 민주당과의 합당을 주장하지만 민주당이 계속 거부하고 있다”면서 “여권은 합당의 길목에 DJ가 딱 버티고 있다고 보고 있다. DJ가 한마디만 하면 민주당도 열린우리당과의 합당에 적극 응할 것인데 DJ가 협조를 안해줘 합당이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합당의 압박 수단으로 DJ를 더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얘기 속엔 여권이 도청 정국을 통해 DJ를 압박하는 것은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에서 DJ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일종의 ‘힘빼기 작업’이라는 시각이 담겨 있다. 도청 정국에서 DJ가 심각한 도덕적 타격을 받는다면 앞으로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그의 목소리가 현저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DJ도 이러한 여권의 ‘의도’를 읽고 도청 정국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DJ가 향후 정계개편에 직접 발을 담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동교동계 출신 모임인 일오회(회장 최명헌·지난 2002년 대선 당시 ‘후단협’과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정통모임’에 참여한 인사들이 새로 만들어 매달 15일 만나는 모임으로 박상천 최명헌 유용태 김충조 장재식 전 의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전직의원 B씨는 DJ의 정계개편 역할론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DJ의 건강도 그렇고…, 앞으로 DJ가 다시 정계개편을 위해 뒤에서 조종한다든지 그런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개인적 의견으로는 그런 일은 우리 일오회 멤버가 중심이 되어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동교동계 비서 출신임에도 DJ의 향후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악화된 건강 때문에 그가 예전의 DJ로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이에 대해 “DJ가 움직일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 아직 그의 영향력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정권 바뀐 지가 3년이 다돼 가기 때문에 정계개편을 이끌 추동력이 없다. ‘현 정부의 DJ 죽이기’ 시각이나 ‘DJ 역할론’은 동교동계의 자가발전 성격이 강하다. 차라리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포스트 DJ’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현실적인 얘기다. 한 대표는 앞으로 정계개편을 잘 추진해나가면 다음 정권에서 총리나 부통령 정도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DJ가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의 보이지 않는 한 축으로 형성될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최근 들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까닭은 앞으로 전개될 정계개편 과정에 그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정계개편의 큰 그림을 그릴 만한 정치인으로 이 전 총재만 한 인물이 없다. 이런 점에서 DJ도 마찬가지다. 그도 분명히 내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본다. 지난 9월 DJ가 정치 불개입을 선언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가능성에 대한 역설적인 기대가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노정객’ DJ의 정치 드라마는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